소아성애와 근친상간 금기 깨는 ‘위험한 논리’ 제공
버틀러의 비이성애 젠더와 젠더 수행성 개념 근거로
동성애·양성애, 다자성애, 소아성애, 수간 등 정당화
도덕·가족 옹호론자, 변화 두려워하는 혐오자 낙인

주디스 버틀러 바른인권여성연합 세미나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의 성별 해체, 성적 금기 허물기가 위대한 수업인가?’라는 주제의 긴급 세미나가 9월 29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목련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는 바른인권여성연합과 성차별교육페지시민연대(이하 성폐연)가 주최했고, 현숙경 교수(한국침신대)가 ‘주디스 버틀러 젠더 이론의 근원과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현숙경 교수는 “미국 철학자, 젠더 이론가, 레즈비언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 )는 1990년 <젠더 트러블>을 출간하면서 학계의 슈퍼스타로 급부상했다”며 “그녀의 젠더 이론은 기존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고, 그녀는 퀴어 이론의 선구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고 소개했다.

현 교수는 “그러나 남녀 자연 질서의 틀을 깨는 그녀의 급진적 젠더 이론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현재까지 사회에 물의를 빚고 있고, 버틀러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며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그녀의 젠더 이론이 기존 가족제도 해체를 조장할 뿐 아니라, 소아성애와 근친상간의 금기를 깰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버틀러의 젠더 개념은 객관적·보편적 진리(truth)를 철저히 부정하는 후기구조주의 및 포스트모더니즘에 근거한다. 그녀는 진리를 ‘담론의 권력’이라고 표현한다”며 “진리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서구 사회가 규정한 하나의 담론에 불과하고, 이것이 사회를 지배하는 억압적 성격을 띤다는 의미다. 이는 ‘광기나 성적 부도덕이라는 기준도 사회적·역사적 특성에 따라 바뀐다’는 대표적 후기구조주의자 미셸 푸코의 담론 개념을 접목시킨 것”이라고 소개했다.

현숙경 교수는 “버틀러는 문화적 구성물인 젠더 개념만이 의미 있고, 실제 존재하는 생물학적 성은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한다. 생물학적 성, 즉 물질화된 몸은 아무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버틀러는 기존 페미니즘이 의미하는 젠더 개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면서, ‘퀴어 이론’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버틀러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이다. 이는 ‘행위’에 더 중점을 두고, 생물학적 성은 철저히 배제된다”며 “반복적인 성적 수행과 표현 결과 ‘젠더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면, 이성애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성적 행위와 표현을 반복하면 젠더 정체성도 바뀔 수 있다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반복적 비이성애적 성적 표현 또는 행위를 통해 기존 이성애적 젠더 규범을 허물 수 있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버틀러가 주장하려는 바”라고 했다.

그는 “이성애 중심 규범을 해체하려는 버틀러의 퀴어 이론은 단순히 동성애적 성적 지향만을 포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든 형태의 비정상적 성적 지향을 용인할 수 있다. ‘퀴어’는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모든 행태를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동성애뿐 아니라 양성애, 다자성애, 근친상간, 소아성애, 수간, 시체성애 등 비정상적·불법적 행태를 정당화하는 논문들이 지속적으로 출판되고 있고, 이것들은 모두 버틀러의 비이성애적 젠더 혹은 젠더 수행성 개념을 근거로 제시한다”고 분석했다.

현숙경 교수는 “주디스 버틀러가 허물고 있는 경계는 ‘섹스와 젠더, 이성애와 비이성애, 남자와 여자, 정상과 비정상(퀴어), 남녀의 결합으로 이뤄진 가족 등”이라며 “이러한 경계 허물기는 동성애를 조장할 뿐 아니라 각종 성적 일탈 행위를 조장하고, 비정상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가족에 포함시켜 가족의 개념까지 완전히 왜곡시켰다”고 성토했다.

현 교수는 “버틀러도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젠더 이론이 논란의 중심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스트 겸 레즈비언 입장에서, 젠더 이론에 내포된 사회적 파괴력, 가족 파괴력을 우려하는 많은 도덕과 가족 옹호론자들을 시대 변화를 두려워하는 동성애 혐오자로 낙인찍었다”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 자연스러운 남녀의 생물학적 질서, 전통적 가족의 중요성 들을 수호하는 많은 사람들을 소수자를 억압하는 악의 세력으로 포장해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무질서 혹은 무정부주의 상태를 조장하는 버틀러의 젠더 이론은 결코 용인될 수 없고, 뿌리부터 근절시켜야 한다”며 “푸코와 버틀러는 때로는 그 선을 애매모호하게 만들거나, 재규정하거나, 허물어버리려 한다”며 “극소수에 해당하는 극단적 경우(intersex)와 예외적 경우를 예로 들면서, 그것을 빌미삼아 선을 허물어버리려 시도한다”고 전했다.

주디스 버틀러 바른인권여성연합 세미나
▲세미나 주요 관계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EBS “버틀러, 근친상간과 소아성애 지지한 적 없어”?

이후에는 강연을 강행한 EBS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EBS는 버틀러가 근친상간과 소아성애를 지지하거나 독려한 바 없다며 강연을 강행시켰다. 그러나 버틀러가 정말 근친상간과 소아성애를 옹호한 적이 없을까”라며 “EBS 측의 답변을 버틀러의 <젠더 허물기>에 나타난 주장을 기반으로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현숙경 교수는 “버틀러는 <젠더 허물기>에서 ‘근친상간 금기는 이성애적 족외혼(heterosexual exogamy)으로 이루어진 전통 가정을 공고히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라고 설명한다”며 “즉 근친상간을 금기시하게 된 이유가 이성 간 결합, 부부와 자식 관계, 양성 조합으로 인한 이성애 중심 가족 형성이라는 사회구조를 불변의 질서로서 묶어두기 위함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버틀러는 레즈비언의 입장에서 동성애를 ‘부도덕한’ 성적 행위로 몰아가는 가족제도의 틀을 공격한다. 나아가 이성애 중심 사회가 금기시하는 근친상간과 소아성애까지 건드린다”며 “그녀는 근친상간과 소아성애 행위를 ‘부도덕’으로 규정짓는 것을 넘어 ‘금기’시한 사회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는 ‘근친상간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비판하고, 근친상간이 위반일 때’라는 조건을 계속 붙인다. 이는 ‘근친상간이 위반이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EBS는 “비판 측은 프로이트의 학술 개념인 ‘근친애’와 범죄인 ‘근친상간’을 혼동해 버틀러가 근친상간을 지지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현 교수는 “이 반박의 문제점은 버틀러가 분명히 실제 벌어지는 ‘근친상간’을 지칭하고 있음을 간과했다는 것”이라며 “버틀러는 프로이트가 ‘근친애적 환상’만을 언급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현실은 ‘근친애적 환상’과 실제 행해지는 ‘근친상간’이 명확히 구분될 수 없고, 근친애가 환상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고 주장했다.

EBS는 버틀러의 소아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 측은 버틀러가 소아의 성 욕망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마치 소아성애를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음. 아동에게 성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과 성인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욕망인 ‘소아성애’ 는 다른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EBS가 간과한 점은 버틀러가 소아들의 성 욕망을 설명하는 배경에 성인(부모)의 소아(자녀)에 대한 소아성애가 기본 전제로 깔려 있다는 것”이라며 “즉 버틀러는 소아들의 성 욕망을 성인의 소아성애를 정당화하기 위한 맥락 속에서 언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여기서 버틀러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적 환상이 아닌, 실제 성 욕망을 논하고 있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며 “사회가 범죄시하는 근친상간과 소아성애 행위, 소아들의 부모를 향한 성 욕망을 논하는 것 자체가 정상인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짓이다. 어떤 복잡한 언어유희로 미화해도, 이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선을 넘는 것으로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성토했다.

또 “EBS는 버틀러가 근친상간과 소아성애를 독려한 바가 없다는데, 꼭 대놓고 근친상간과 소아성애를 독려해야 하는 것인가? 그 선을 허무는 숨은 뜻을 읽지 못하는가”라며 “실제 버틀러의 근친상간 주장에 불편함을 보이거나, 금기의 선을 넘나드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버틀러의 주장을 받아들인 학자들 중에서도 그녀의 근친상간과 소아성애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고 밝혔다.

현숙경 교수는 “이미 버틀러 젠더 이론의 허구성에 대항해 프랑스, 독일,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바티칸 등 유럽과 브라질, 칠레,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 남미에서 반(反) 젠더 운동이 한창”이라며 “25년 전부터 진행돼 온 전 세계적 반 젠더 운동을 단순히 ‘시대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일부 보수 단체의 극단적 운동’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난·폄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일갈했다.

끝으로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도덕적 가치, 남녀의 자연 질서, 가정의 소중함을 교육하는 데 앞장서야 할 EBS가 도덕과 가정의 해체를 조장하는 주디스 버틀러 강연을 강행해 상당히 유감”이라며 “옳고 그름의 기준을 허물고 무질서와 부도덕, 혼돈을 조장한 버틀러는 ‘위대한 수업’에 방영해선 안 되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주디스 버틀러’
▲EBS의 ‘주디스 버틀러’의 강연 장면. ⓒ크투 DB

이 외에도 이날 세미나에서는 오세라비 작가(성폐연 대표)가 ‘주디스 버틀러의 해체주의 페미니즘고 퀴어 이론 비판’, 정일권 박사(전 숭실대 교수)가 ‘주디스 버틀러의 소아성애, 근친상간 지지를 비판한다’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오세라비 작가는 “버틀러 젠더리즘의 가장 큰 해악은 아동·청소년의 고유한 개체를 건드리고 성정체성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라며 “신체와 정신이 발달 과정에 있는 아동·청소년은 자연스러운 남녀라는 양성이 마치 잘못된 것처럼, 고정관념인 양, 또 남녀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우려했다.

오 작가는 “버틀러는 1강에서 ‘성별 기준이 오직 남성이었다. 성별은 오직 남성들이었고, 남성들의 성기는 유일한 성별 기준이었다. 여성들은 음경이 없으므로 결핍된 존재였다’고 했다. 이는 철저히 남성을 적대적 위치에 놓는 것”이라며 “남자와 여자는 각각의 성과 특질이 존재한다. 남자의 성적 특질이 잠재적 위협이라고 가르친다면, 여자 아이들이 어떻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건강한 남녀 관계, 건강한 배우자가 가능할까”라고 반문했다.

정일권 박사는 “소아성애와 근친상간은 결코 교육방송 EBS가 대중화시킬 수 있는 보편적 교육가치가 아니다. 버틀러가 계승하고 있는 68 ‘소아성애적 안티파’ 성혁명 사상의 최대 피해자들이자 사회적 약자인 아동들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EBS 교육방송을 비롯한 한국 교육계가 감수성 있게 독일 교육계처럼 응답하기를 기대한다”며 “프랑스와 독일의 68 ‘소아성애적 안티파’의 부끄러운 소아성애 과거사 청산이 새로운 대세이며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라고 밝혔다.

앞선 개회사에서 이기복 상임대표(바른인권여성연합)는 “저희가 결혼해 자녀를 낳아 키우던 1970년대 국가가 산아제한 정책을 실행하고 권장하면서, 낙태가 의학적 산아제한 방법인 줄 알았다”며 “그래서 저를 비롯한 거의 모든 가정들은 수많은 낙태를 저질렀다. 저 역시 당시에는 태아가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생명임을 전혀 모른 채 끔찍한 낙태를 저질렀음을 고백한다. 지금도 제가 겪는 무서운 죄책감을 상상도 못하실 것이다.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이기복 대표는 “지금도 안타까운 것은 당시 교회에 출석을 하고 있었는데, 나라가 자녀를 낳지 말라고 권장해도 교회에서 ‘태아는 생명이다. 낙태는 살인이다. 자녀들을 낳아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진정한 축복이다’고 선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라며 “당시에도 교회는 침묵하거나 외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악한 낙태법에 대해 교회들이 침묵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낙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인구절벽이라는 시급하고 심각한 문제에 맞닥뜨려 있다. 올해는 드디어 출산율이 역대 최저가 되어, 인구 자연감소라는 심각한 현실로 접어들고 있다”며 “국가적 위기에도 악한 낙태법을 추진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출생하는 아이들보다 낙태당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정책자들은 과연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