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홍남기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는 홍남기 장관. ⓒ기획재정부
두 번째 재난지원금을 받았습니다. 필자를 비롯하여 재난을 당하지도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을 수령했지만, 필자가 가장 친하고 아끼는 친구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이유는, 받는 분들보다 건강보험료나 각종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수령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부유층에 속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친구는 물론 약간 부유층에 속하기는 하지만, 나라의 세금을 철두철미하게 내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하는 친구요,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신의 건물 세입자들에게 고통 분담 차원에서 솔선하여 세를 낮추어주는 착하고 선한 친구이자 준법정신이 투철한 이 나라의 모범된 국민입니다.

오히려 필자는 재난지원금을 받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친구에게 점심식사 한 끼라도 대접하려고 약속을 하여, 함께 식사하며 나라에 대한 염려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필자는 그 친구보다 물질은 적지만, 미안함도 있고 해서 정부를 대신해 점심을 사 주면서 시대의 아픔을 논하며 그 친구를 위로한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무슨 이유로, 어떻게 계산해서 25만원이라는 지원금을 주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25만원이라는 금액은 크게 도움이 되는 돈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장을 실제로 조사하여 재난당한 현실을 감안하여 지급해 주 것이 마땅한 처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왕 도움을 주려면 생색내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실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속 시원하게 문제를 풀어주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일어날 질병에 대해 법을 제정해서라도, 재난기금용 예산을 따로 확보해 위기를 대처하는 지혜를 모아 오롯이 고통을 당하는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닐까요?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현 정부 공직자들은 돈 한 푼 국민을 위해 내놓은 사례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노력으로 돈을 벌거나 피땀 한 방울 흘린 적 없는 분들이, 자기 돈도 아닌 나랏돈을 막 퍼주는 모양새는 참으로 아니라고 봅니다.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한 장·차관, 고위공무원들은 자영업자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나요? 그들을 위해 월급의 단 10%라도 기부해 보았나요? 공무를 빙자한 해외여행비를 비롯, 각종 판공비를 자진반납해 보았나요? 당신들이 장래에 받을 연금은 그 분들의 목숨값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필자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친구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 친구는 이웃을 위해,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시간과 물질로 봉사했습니다. 만약 그 친구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면, 그 친구는 과연 그 돈을 어디에 썼을까요?

남들보다 조금 잘 산다는 이유로 재난지원금을 공평하게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 해서 내쫓으며 적대시하는 것은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는 사람들만의 정부가 아닌가 합니다.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하느니라(잠언 15:27)”.

여기서 ‘이익을 탐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부당한 방법이나 폭력을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부당한 돈으로 가족의 쓸 것을 준비하면, 가족은 오히려 그 돈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요즘 크게 이슈가 됐던 조국 전 장관의 자녀들을 보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언 11:1-3)”.

화폐가 생기기 전에는 저울을 사용하여 상거래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가지 종류의 돌 추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상거래 질서를 어지럽혀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상인들이 생겨났습니다. 팔 때는 가벼운 추를 저울에 놓아 조금만 주고, 살 때는 무거운 추를 놓아 값을 많이 받아 더욱 이익을 챙기는 식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도 사업을 하시는 장로님들을 비롯하여 신앙인들의 눈속임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교회를 떠나서 그런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항존직들의 민낯을 보노라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를 지경입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잠언 21:6)”.

지금도 옛날에 사용하던 저울을 고수하여 사용하시는 분도 있지만, 현 시대는 전자식으로 된 간편하면서 용이하게 사용되는 저울을 사용하여, 물건의 무게를 측정할 때 아주 정확하면서 시간이 절약되는 저울을 사용합니다.

저울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숫자가 부정확하게 나올 수 있으므로, 눈금 교정(calibration)을 통하여, 게이지에 착오가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작동해 보다 정확하고 안전하면서 짧은 시간에 목적하는 하는 바를 수월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확하게 한다’는 것은 곧 ‘정직하게 한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필자는 어린 시절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면 금세 들통이났습니다. 얼굴이 새빨게지거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맹세하고 사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정부 공직자들의 거짓말을 보노라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조상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 그리워집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상대를 적폐로 몰고, 없던 사실도 지어내 세상에 퍼트리고, ‘아니면 말고’ 슬며시 꼬리내린 뒤 다른 사건으로 이슈를 만들어 앞에 꺼냈던 카드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파렴치한 짓들을 서슴없이 자행합니다.

지금 나라 안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이런 짓들로 오염되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나라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여기저기서 목숨까지 끊는 일이 사태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못한 채, 고작 재난지원금 25만원으로 생색내기에만 급급합니다. 이 나라 5,000년 역사에 이렇게 한심한 정부가 있었던가요.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 패거리의 목소리만 청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권력을 계속 잡으려 혈안이 된 그들은 부모와 자식들도 없는, 외계에서 온 사람들인가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판국에, 대놓고 거짓말을 양산하는 정부와 정치가들의 민낯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국민들을 무시하는지 거짓말과 속임수는 여전히 직업으로 삼고,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것처럼 사기를 치는 정치가들은 이제 두 번 다시 뽑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대선 주자들 중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 숱한 의문과 국민의 눈높이와 전혀 맞지 않는 사고뭉치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표를 주는 당원들은 쓰레기 난장판이 되어도 좋다는 심산인가요? 아니면 그를 앞세워 한 자리, 한탕을 해보겠다는 욕심인가요?

신앙인들 가운데서도 파렴치한 모리배 같은 정치가들처럼 하나님과 성도들을 속이며 예수를 잘 믿는 것처럼 위장해,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못된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또 다시 십자가 형틀에 달려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역시 현 시대에는 어찌하여 입을 닫고 침묵으로 일관하는지요? 그리스도를 믿는 사제들이라면 부정과 비리, 폭력과 폭압의 정치, 특히 교회 탄압에도 어찌 침묵하는지요? 사제단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이 아닌, 제3의 종교인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주교 신자들 역시 현 정부를 보면서 한탄하며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매달려 기도하고 있는데, 사제들은 지금 무얼 하고 계시는지요?

지금 코로나19로 많은 국민들은 시름하며 어서 코로나가 물러가기를 기도하고 있는데, 정부는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니 백성들의 한숨은 깊어만 갑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는데, 정말 국민을 위해 피와 눈물, 땀을 다 쏟을 영웅이 나타날 시기가 아닌가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친구에게 재난지원금으로 점심을 대접한 필자의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섭섭하며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니라(잠언 11:6)”.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잠언 10:21)”.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