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 김마림 역 | 열린책들 | 496쪽 | 14,800원

막다른 길이나 극한 위기는 그 폭풍 속에 있는 이의 내면과 불안과 가치를 드러내곤 한다. 마치 오랫동안 비우지 않았던 가득 찬 쓰레기통을 뒤집어엎었을 때 별의별 것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오랫동안 들고 다니던 가방을 비워낼 때도 그러하다).

예상치 못했던 물건들이나 잃어버렸던 것들을 그 안에서 발견할 때도 있다. 그것이 여러 사람들이 있을 때 일어난다면, 또 그 안에서 숨기고 싶은 것들이 드러날 때, 우리는 당황하고 무안해 한다.

수잰 래드펀의 <한순간에>는 그런 순간과 이후를 담아낸 듯싶다. 나름 단란했던 어느 가정과 가족 같았던 이웃과 친구와 연인, 그리고 갑작스레 그 가운데 합류하게 된 사람이 당하게 된 교통사고로 인해 맞는 주인공의 죽음과 그 주변 사람들이 살기 위해 벌이는 이야기, 그리고 살기 위한 대응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파열과 이기심과 버림을 보여준다.

이후 목숨은 건졌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가족과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회복 불능의 상처와 깊은 내상을 입은 이들의 이야기가 벌어진다.

마치 작지만 꽤나 지저분한 물웅덩이에 커다란 돌덩이를 던져 넣으면 그 안에 있던 것이 사방으로 퍼지는 현상과 그로 인한 파열, 그리고 그것이 안정화되기까지 오랜 여진과 내홍이 따르는 것처럼 이들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 아니 뭔가 안정은 되어가는 듯 하지만 이전의 제자리일 수는 없는 것처럼, 그 상흔은 남겨진 채 이전과는 같을 수 없지만 다시 재정비되어 가는 과정과 치유를 이 책은 담아낸다.

한순간에
▲북 트레일러 중. ⓒ유튜브
이 책에서 언급하듯 일상적이고 평온함 속에서는 모두 다 나름 착하고 괜찮은 사람, 관계적으로도 아주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듯 하지만, 극한 상황과 존재가 흔들리는 갑작스런 위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실체를 보곤 하고, 우리가 신뢰하던 관계의 본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때는 그 본 모습이 위기 속에서 겪게 되는 밸런스 게임마냥 극단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속에서 벌어지는 순간의 선택이 종이 한 장 차이처럼 일어나지만, 그 결과는 아주 정반대의 결과인 극한 후유증을 낳기도 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고문 속에서 자신이 당하는 공포를 사랑하는 연인 줄리아에게 돌리라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한다고 우리는 다짐하지만 우리는 공포 속에서 사랑보다는 나를 택하곤 한다.)

착한 사람이란 무얼까? 사랑이란 말의 무게를 우리는 알고 있는 걸까? 죽은 주인공의 영혼이 떠돌며 남은 이들을 배회하며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1인칭 시점이면서도 3인칭 시점 같은 독특성을 지닌다.

어떤 때는 남은 이들에게 사랑과 연민, 안타까움, 또는 분노를 나타내지만, 그들에게 어찌할 수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거리를 보여준다.

한 번쯤 읽어 보며 생각해 볼만한 책이다.

문양호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