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부교역자로 청년 사역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노재원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알기 쉬운 성경이야기’, ‘기독교의 기본 진리’, ‘영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대중문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 유튜브를 통해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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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집들이, 그 허망함이란
노재원 목사의 <성경으로 공간 읽기> #3

‘랜선 집들이’란 말 그대로 온라인으로 집구경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근래에 연예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유튜브로 랜선 집들이를 하곤 하는데요. 저렴하거나 합리적인 비용을 들인 집을 정보제공 차원에서 소개하기도 하지만, 고급스러운 집을 자랑하는 경우가 대다수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염병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게 되면서 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커진 것도 랜선 집들이가 유행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일 텐데요. 고급스러운 내장재와 값비싼 가구들을 은근히 자랑하는 장면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성경에도 집을 자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구약시대 이스라엘 왕 히스기야에게 이웃 나라 바벨론이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들을 환대하면서 집자랑을 하고 맙니다. 왕궁 창고에 있는 금은과 향품과 값진 기름과 무기고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자랑스레 보여준 것이죠(열왕기하 20:12-13). 동맹국의 사절단에게 국력이 손색없음을 보여주려는 외교적 의도였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과시하려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집이란 가장 사적인 공간이지만 곧잘 자랑거리로 삼는 게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자랑하는 콘텐츠가 위화감이나 심지어 상대적 박탈감을 주지는 않을까요? ‘집’이라는 것이 그저 비바람을 면하게 해 주는 물리적 구체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집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이 맥 빠진 구호처럼 들릴 정도로 집은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아파트 평수가 그 사람의 등급을 결정짓는다는 말은 서글프지만 현실이 되어 버렸죠. 아파트는 사회적 신분의 상징과도 같아졌습니다. 이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뒤처지게 된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예쁘게 꾸민 집을 보란 듯이 소개하는 랜선 집들이가 위화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는 말이 비뚤어진 심성 탓만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렇게 훈계합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고린도후서 5:1 / 새번역)

잠시 거쳐 갈 땅에 있는 집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앙망하라는 바울 사도의 교훈을 가슴에 새긴 채, 랜선 집들이를 보면서 잠시 대리만족을 느끼면 어떨까요. 어차피 영원히 살 집은 이 땅에 있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