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대와 오늘날 시간적 간격이 너무 커
창세기의 창조, 인류 역사 시작되기 이전부터
태초부터, 인간 역사에 친밀한 개입 보여주다

성경 전체를 여는 문, 창세기 1-11장 다시 읽기
성경 전체를 여는 문, 창세기 1-11장 다시 읽기

고든 웬함 | 차준희 역 | IVP | 172쪽 | 10,000원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 자신이 함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공동체 한가운데 최고의 보존자로서 영광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다. 성경은 천지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이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추적하고 있다. 그런 추적의 첫 시작이 바로 창세기이다.

창세기는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기록된 책이다. 반면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러 가지 신화들과 구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던 창세기 시대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과의 시간적 간격은 너무나도 크다.

특히 창세기 1-11장을 원역사(웬함은 이 부분을 원형역사라고 부른다)라고 하는데, 원역사의 시대와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와의 시간적 간격을 메우기 위해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힘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창세기 1-11장까지의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창세기 첫 장은 신앙적 확언으로 성경 전체를 출발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구절로 시작되는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 곧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시고, 창조된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에 대해 신학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인 고든 웬함은 이 책의 부제를 ‘성경으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붙였다. 이것은 매우 탁월한 부제라고 할 수 있다.

고든 웬함은 이미 ‘창세기 상: WBC 성경 주석 1’을 30여 년 전에 출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우리에게 주는 권위는 매우 탁월하다. 이 책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창세기 상: WBC 성경 주석 1’에서 해석한 자신의 주장은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인간을 위해 설계된 창조’에서는 창세기 1장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말한다. 둘째 ‘인간에 의해 훼손된 창조’에서는 창세기 2-4장 내용으로, 인간의 범죄에 대한 부분이다.

셋째 ‘파괴되고 회복된 창조’에서는 창세기 6-9장을 통해 노아 홍수를 통한 새로운 창조에 대해 서술한다. 넷째 ‘구속이 필요한 창조’에서는 창세기 5-11장 내용으로서 창세기에 나타난 계보와 하나님의 아들, 바벨탑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설명하는 창조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시작된다.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노아처럼 초기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류와 하나님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대표하는 원형이다.

고든 웬함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은 이들을 위해 ‘인간을 위한 복지’를 잘 마련해 놓았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탄생(1510, 프레스코)’. ⓒ한길사 제공
1-11장을 인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으로 분류하는 것은 세상의 시작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이 역사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역사에 친밀하게 개입하셨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는 모든 역사의 신학적 토대가 된다.

창세기에 나타난 족보들은 창조의 시작과 이스라엘의 시작을 연결해 준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와 피조된 모든 만물에게 질서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고대 근동 지방의 문화적인 구전 신화를 등장시킨다. 고대 근동 신화(특히 메소포타미아 본문,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 동산 이야기, 홍수 이야기)는 다 비슷한 내용들이 전개되어 있다.

그러나 창세기의 저자와 편집자들은 하나님을 선포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다른 창조 이야기를 차용하면서도, 이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라고 하는 강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창세기 1-11장은 천문학과 인류학에 대한 현대인들의 이해보다 시대적으로 앞선다는 면에서 매우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신학자들이 세상이 어떤 동인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데 무관심했다고 하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담대하게 선포한 까닭은 원시적인 과학적 설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고백하려는 의도에서였다.

하나님은 무질서를 질서 있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하나님이 지으신 좋은 지구의 청지기라는 특별한 임무도 주셨고, 창조를 기뻐하셨다.

고대 근동 신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창세기만의 독특한 내용이 바로 인간 존엄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서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래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