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연도·장소 비슷했던 바흐와 헨델, 삶은 대조적
평생 교회 음악 투신한 바흐, 오페라 음악감독 헨델
클래식과 음악가 알고 싶은 이들 ‘교양 욕구’ 충족해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난처한 클래식’ 3-4권.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민은기 |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412쪽 | 19,000원

헨델, 멈출 수 없는 노래
민은기 |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384쪽 | 18,000원

사회평론의 ‘난생 처음 한번 처음 들어보는(난처한) 클래식 수업’은 왠지 어려워 보이는 클래식 음악을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물 중심으로 시리즈를 엮고 있다. 이는 6권까지 나온 양정무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의 자매 격이다.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개인적 감상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시대적 배경이나 음악적 지식까지 적당히 가미해 클래식과 음악가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의 ‘교양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특히 책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책 속 내용과 연결되는 주요 클래식 음악들을 곧바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함께 일방적 설명이 아닌 이야기 중심의 문답식으로 구성해 클래식 초보자들과 10대까지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바흐 헨델
▲‘음악의 아버지, 음악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이제 낡아졌지만, 음악사에서 바흐의 위상으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사회평론 제공

1·2권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이어 ‘클알못(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3·4권의 주인공은 ‘음악의 아버지’와 ‘음악의 어머니’로 각각 불리는 작곡가 바흐와 헨델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말로서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 것은 탄탄한 화성과 대위법 구조로 승부를 걸었고,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로 여겨진 것은 감미로운 선율 작법에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은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자 뛰어난 기독교 음악 작품들을 다수 남긴 동시대의 인물들이다.

바흐 헨델
▲바흐(왼쪽)와 헨델의 이동 경로 비교. 바흐는 독일 작은 동네를 오가며 활동했다면, 헨델은 유럽 전역에서 활동했다. ⓒ사회평론 제공

출생 연도도 같고, 태어난 장소도 비슷하다. 둘 다 넘치는 음악적 열정으로 결투를 불사했고, 심지어 둘 모두 만년에 같은 ‘돌팔이 의사’에게 각자 수술을 받고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 본 두 음악가의 여정은 꽤 대조적이다. 바흐는 평생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독일 아른슈타트와 쾨텐, 라이프치히 등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의 작은 도시들에서 평생 활동하면서 20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가졌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반면 동갑내기 음악가 헨델은 독일에서 이탈리아를 거쳐 영국 런던에 정착하는 등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했고, 오페라 음악감독으로서 작곡뿐 아니라 성악가 섭외까지 도맡으며 ‘화려한 싱글’로 살았다.

바흐가 후대 음악가들의 재조명에 의해 ‘부활’해 오늘날 절대적 신뢰를 받는다면, 헨델은 영국을 대표하는 국민 작곡가로서 당대에 이미 ‘위대함’을 칭송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헨델
▲대중의 예술가, 온 땅을 바라보며 설 수 있던 사람 헨델. 지루한 무채색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음악가 헨델은 이야기와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 총천연색의 시간을 선사했다. 영국 땅을 밟고 선 헨델. ⓒ사회평론 제공

저자는 “바흐가 훌륭한 음악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교과서 같은 음악가였다면, 헨델은 미래의 음악 산업을 미리 보여준, 앞서 나간 비즈니스맨이었다”며 “바흐는 음악을 만드는 장인이자 독실한 종교인이었다면, 헨델은 쉽게 금방금방 곡을 만들면서 공연 기획까지 맡은 종합 예술인이었다”고 평가한다.

먼저 ‘난처한 클래식’ 4권의 주인공 헨델은 단순한 작곡가를 넘어, 마치 오늘날 영화감독 같은 종합 예술인이었다. 작곡뿐 아니라 연극과 무용, 패션과 과학기술까지 접목한 오페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그는 대중의 취향을 정확히 이해해 언제나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 활동을 했으며, 선율은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듣기 좋았다.

그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퍽 통속적이었고, 처음으로 교회나 궁정이 아닌 대중을 위한 작품을 쓴 작곡가였지만, 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HWV56, 1741)’ 중 ‘할렐루야’는 모두를 일으켜 세울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헨델 리날도
▲호주 시드니 오페라 극장에서 2005년 공연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실황. 알미네라 역을 맡은 소프라노 에마 매슈스가 아리아를 부르고 있다. ⓒ사회평론 제공

헨델은 ‘메시아’를 비롯해 ‘에스더(HWV50b, 1732)’, ‘드보라(HWV51, 1733)’, ‘사울(HWV53, 1739)’, ‘삼손(HWN57, 1741)’ 등 자신의 최절정기에 성경을 토대로 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국교회가 대부분인 영국에서 오페라가 퇴조하는 흐름을 감지하고, 성경 이야기를 기초로 한 오라토리오 곡들을 발표한 것이다. 그는 오페라 가수들이 극장에서 성경 구절을 가사로 노래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과 편견까지 뒤집어 놓았다. 이유야 어떻든, 지금 우리는 헨델을 통해 여러 성경 이야기들을 뛰어난 오라토리오 곡으로 부르고 들을 수 있다.

저자는 “살아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헨델은 한 번도 잊힌 적이 없었다. 영국인들에게는 헨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아예 애국심과 동일시되기도 한다”며 “영국뿐 아니라 전 유럽 사람들이 헨델의 음악을 좋아했다. 18세기 말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아마추어 합창단이 등장해 유럽 전체로 확대되는데, 헨델의 합창음악이 이들의 핵심 레퍼토리가 된다”고 전했다.

또 “헨델은 평생 가난에 쪼들린 적이 없었는데, 이 풍요는 꼭 물질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그가 지녔던 단단한 마음 역시 헨델을 풍요롭게 했다”며 “헨델은 자기 삶을 소중히 아끼며 존중할 줄 알았다. 위대한 음악가이면서 위대한 인간 그 자체였던 헨델은 예술가는 꼭 궁핍하고 자신을 괴롭혀야 한다는 선입견을 완벽히 깬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헨델 시저
▲헨델 오페라 <줄리어스 시저>의 런던 초연 악보 표지. 세네시노가 시저 역을, 쿠초니가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았다. ⓒ사회평론 제공

한 시대의 상징 바흐, 모든 음악가들의 스승이기도
1-2주마다 악기와 합창 새롭게 작곡해 하나님 찬송
전통과 혁신 끌어안아 서양음악 완결, 다음 단계로

3권의 주인공 바흐는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라는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 중세부터 음악을 품고 발전시켜온 교회에 속해 평생 예배 음악을 만들었다. 비범한 천재가, 성실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바흐가 서거한 1750년에 바로크 시대도 끝났다고 평가한다. 그는 한 시대의 상징이자, 그 이후 모든 음악가들의 스승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제2의 고향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간 있었던 라이프치히에서는 도시 내 교회 4곳의 음악을 총 주관하는 ‘칸토르’로서, 1-2주마다 예배에 쓸 음악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그것도 그냥 합창곡이 아니라, 마치 오페라처럼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예배 음악인 칸타타였다. 바흐는 평생 약 300개의 칸타타를 만들었고, 그 대부분이 교회 음악이었다.

바흐 우표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바흐 우표. 1. 1961년경 독일. 2.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50주년 기념, 독일(1971년경). 3. 파라과이, 4. 콩고, 5. 헝가리, 6. 불가리아(이상 1985년, 바흐 탄생 300주년 기념). 7. 쿠바(1997년). 8. 중국.

그곳에서 유명한 ‘예수, 인류의 소망과 기쁨’으로 잘 알려진 ‘마음과 입과 행위와 삶으로(BWV147, 1723)’,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가 있어(BWV140, 1731)’, 그리고 바로크 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전 68곡에 3시간 길이의 ‘마태 수난곡(BWV244, 1727)’이 탄생했다.

음악가를 예술가로 우러러보기보다 다양한 이벤트에 쓸 적절한 음악을 공급하는 하나의 기술자이자 하인으로 보던 시대에, 그는 불가능의 경계로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으려 한 것이다.

바흐
▲의무감을 넘어서 도달한 완벽의 경지. 바흐는 바쁜 가운데서도 음악만은 단 한 순간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라이프치히에서 바로크 시대 최고의 걸작을 작곡해낸다. ⓒ사회평론 제공

저자는 바흐가 장인의 태도로 음악을 조립하고 다듬어 촘촘하게 만들어낸 이유로 ‘신앙심’을 꼽았다. “바흐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기에, 자기에게 종교적인 소명이 있다고 믿었다. 바흐에게 음악을 한다는 건 정말로 ‘신(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에 선한 쾌락(기쁨)을 얻기 위해서였다”며 “바흐는 언제나 작곡한 작품 끝에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이라고 서명했다”고 설명했다.

바흐를 소개하는 3권에서는 서양 음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중세부터 종교개혁 당시까지 기독교 음악의 역사와 함께, 종교개혁을 비롯한 기독교 역사도 일종의 배경 지식으로서 안내하는 등, 기독교인들에게는 흥미거리들이 많다.

바흐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던 성 토마스 교회 성가대석에 있는 바흐의 묘소. 뒤쪽 제대화는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성 바울 교회에서 옮겨왔다. ⓒ사회평론 제공

바흐에 대해 저자는 “너무 단언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바흐는 완벽한 음악가이다. 음악가도 사람인 이상 강점이 있으면 약점이 있는게 당연한데 정말 약점을 찾기 어렵다”며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전통과 혁신이라는, 대척점에 있는 가치를 모두 끌어안아 서양음악의 한 시대를 완결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했다”고 극찬한다.

저자 민은기 서울대 작곡과 교수는 서울대학교 작곡과에서 음악 이론을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프랑스 음악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95년부터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이론 연구와 후학 양성에 집중해 왔다.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 관련 서적을 가장 많이 낸 음악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 외에도 <음악과 페미니즘>, <서양음악사: 피타고라스부터 재즈까지>, <독재자의 노래: 그들은 어떻게 대중의 눈과 귀를 막았는가>, <대중음악의 이해> 등의 저서가 있다.

민은기
▲저자 민은기 교수. ⓒ사회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