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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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몇 주 전부터 초청을 받고 나서는 계속 그 교회 집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회 당일 새벽에 기도하는데 두 가지 영상(映像)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하나는 어떤 여인이 앞줄 두 번째 자리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엎드려 있었는데, 마침내 그 여인에게서 귀신이 쫓겨나는 영상이었다. 또 하나는 그 교회의 뒷좌석의 출입문 있는 부분에 마치 검은 곰 같기도 하고 검은 구름 같기도 한 어두운 세력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영상이었다. 나는 성령께서 그 교회를 방해하는 귀신들의 세력을 미리 보여주신 것으로 직감하고, 즉시 이 두 가지 세력을 추방하는 기도와 아울러 승리를 선포하였다.
그날 밤 그 교회 강단에 서자마자 나는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힘없이 엎드려 있는 여인을 보게 되었다.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인식하면서 즉각 그 교회 담임목사님에게 정중히 부탁하였다.
"저 앞줄에 엎드려 있는 여자 분을 제 앞으로 좀 데려나올 수 있겠습니까?"
갑작스런 나의 부탁에 그 목사님은 잠시 당황하다가 답했다.
"아, 네? 어떤 분이요? 아 저 분이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에게 다가가 잠시 앞으로 나올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은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두말 않고 따라 나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앞에 서자마자 그 여인은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인의 눈을 보니 눈동자가 이미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풀려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여인과 마주 대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귀신은 묶여 있었던 것이고, 이젠 추방될 일만 남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이 그 여인으로부터 떠날 것을 단 한 번 선포하자마자, 그 여인은 죽은 듯이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후 다가가 몸을 굽혀 안수하자, 그 여인은 매우 밝아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일로 인해 그 교회 집회는 시작 시간부터 강력한 회개의 영이 임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나는 검은 곰과도 같은 어둠의 세력으로 인해 눌려 있는 교회의 형편에 대해 선포하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면서 온 교회가 죄악을 통회 자복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회개의 기도 시간 이후 나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교회가 큰 힘을 얻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필자는 매일 매 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복음사역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거듭 깨닫곤 한다. 또 한 가지 사례는 호주 퍼스(Perth)에서 있었던 일이다.
<case> 퍼스에 오자마자 받은 성령의 주신 인도하심 가운데 특별히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어떤 교회 목사 사모님에 대한 것인데, 이상스럽게도 나이 지긋하신 이 목사님 내외분을 뵙게 된 그날부터 그 사모님에 대한 기도가 절로 되었고 또 그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극한 슬픔'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김 선교사님 댁에 도착하던 바로 그날 어떤 한국인 자매를 보았는데, 그 자매를 보는 순간 '갈망'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 떠올랐고 그 자매의 메말라 타는 듯한 영혼의 상태를 느꼈다. 역시 이 자매를 위해서도 그날 이후 계속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면 그 자매를 만나 기도를 나눌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김 선교사 사모님께서 아내에게 그 지역의 몇몇 한국인 부부들을 위해 가정사역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오셨다. 아내는 강의안도 시드니에 남겨두고 몸만 달랑 왔기에 처음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잠시 당황했으나, 그러나 주님께서 강의안 없이도 일하실 것으로 믿고 수락하였다. 그날 밤 아내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어떤 얼굴을 알 수 없는 크리스천 자매가 자신의 앞길에 대해 너무 궁금하여 점치는 무당을 찾아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아내가 그 자매에게 크리스천이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충고하였다. 그랬더니 그 자매는 그런 줄은 알지만 너무나 답답해서 왔다고 힘들고 지친 얼굴로 아내에게 대답하였다.'
아내는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담긴 꿈이라 생각하여, 그 꿈의 내용을 주님께 올려드리면서 인도하심을 구했다. 그 다음날 몇 분의 젊은 커플 부부가 김 선교사님 댁에 방문하였다. 그런데 선교사 사모님 말씀이, 정작 초대한 분들은 못 오시고 오히려 다른 분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아! 그런데 그들 가운데 며칠 전 보았던 그 자매의 부부도 있었다. 그리고 제일 나중에 당도한 분들은 내가 기도해 온 그 목사님 내외였다! 그러자 선교사 사모님은 놀라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어찌 된 일인지 제가 초대한 분들은 한 분도 못 오시고, 목사님이 기도해 온 분들만 다 오셨네요!"
나는 그동안 성령께서 인도해주셨던 기도의 제목이 퍼뜩 떠오르면서, 그날 밤 하실 일에 대해 성령께 여쭙게 되었다. 무언가 굉장한 일을 주님께서 하실 것은 분명했다.
그날 저녁 함께 식사를 하고 난 후 거실 소파에 편하게 둘러 앉아 아내의 가정사역 강의를 경청하였다. 아내는 비록 강의록은 안 갖고 와서 빈손이지만, 그러나 기도로서 무장하고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가 진행되어갈수록 성령의 기름부음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둘러앉은 부부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고 또는 긴 한숨을 내쉬거나 하면서 성령의 만지심이 더해갔다.
강의 후 기도 시간을 내가 이어받았다. 뜨겁고 간절한 기도의 시간이 계속되어가는 가운데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큰 회개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다. 특히 부부끼리 손을 잡고 기도하는 시간에는 서로 미워했던 마음, 용서하지 못했던 마음 등을 서로 주고받으며 기도해주는 눈물의 시간이었다.
이런 사례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민감히 분별하고 또 그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일 없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주어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민감히 따르게 위해, 그리고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날마다 우리를 통해 나타날 수 있도록, 순간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고후 10:5) 하여 주님의 발 앞에 엎디어 있는 우리 영혼의 상태가 되게 하여야 한다. 이런 성숙한 이들에게 있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삶의 스타일로 변화되어지게 되는 것이요, 이 같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들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통해 주님의 정확한 뜻과 인도하심을 잘 분별하여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