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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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다양하지만, 그 각각 다른 모습들이 모여 대자연의 장관을 연출합니다. 나무만 해도 키 큰 나무, 키 작은 나무, 굵은 나무, 여린 나무, 그 나무를 감아 타고 오르는 덩쿨들. 그 덩쿨에 의해 움푹 홈이 패일만큼 감기우고도 하늘 향해 뻗은 의연한 나무들, 모두가 각양입니다.
그 모두가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서로의 생명을 유지하고, 합하여 자연이란 삶의 터전을 제공합니다. 말할 줄 몰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깔려 있는 것 아니며, 벌레 먹히면서도 유구히 있습니다. 자연 속 개체의 침묵은 세상을 유지하는 함성이며, 그 가운데 녹아 있는 힘은 대역불가의 능력입니다.
삶의 시간이 쌓이며 더 깊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인생들이 참 불쌍하고 가엽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버둥거리며 애써도 삶의 슬픔은 아직도 있고, 그것은 이 세상 끝까지라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범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된 인생에게 주어진 짐이고, 그 극복의 과정이 구원인 것도 압니다. 그러나 슬프고 안타까운 것도 또한 우리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가진 것이 우리 인생이고 삶입니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세상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과 삶을 보아도, 생성과 소멸 사이에 생로병사의 강을 건너는 그 모습은 위태합니다. 경제적으로 나아진다한들, 삶은 끝 없는 질병과의 싸움이고, 한 순간에 그 모든 소유의 의미를 잃습니다. 관계와 비교는 행복했던 우리의 순간까지를, 너무 억울하게 우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 삶은 어느 만큼을 극복하고 어느 만큼을 수용하느냐의 결정과, 그 결정을 받아들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모두가 다른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기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근원적 기쁨은 마음의 기쁨이며, 영혼의 기쁨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하늘의 기쁨과 영적 감동과 감격으로만 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 내 사랑하는 교회에서 이루고, 이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눈물 가진 이, 슬픔에 겨운 이, 삶이 너무 힘들고 지루하며, 잠을 못 이루고, 분노가 가슴을 채운 이, 그 모든 이들이 주님 앞에 나와, 그 어루만져주시는 은혜와 사랑에 푸근함으로 잠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고, 다시 힘내서 달려갈 용기가 생겨야합니다. 성도는 기쁘고, 행복해야 하며, 그 힘으로 사랑하고, 누군가를 품어주는 성도 그리고 교회 되어야 합니다. 은혜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