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최재건 박사(하버드대학교 Ph. D. 연세대학교 교수 역임)의 논문 '삼일(3.1)정신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2) 한국교회의 3.1운동 참여의 의미와 정신
기독교인들에게 3.1정신은 신앙의 확신을 선언한 것이었다. 자유와 정의는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였고 고난 중에 있는 민족과 함께 한 교회의 공헌은 선구자적이었다. 독립운동을 앞장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독립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은총으로 되고 (이승훈) 하나님의 뜻으로 된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기본 바탕이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란 절대 명제를 추구하게 되었다. 군국주의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였다. 그 전까지 교회는 서구의 힘, 미국의 힘, 교육의 힘, 의료의 힘, 문화의 힘을 대표하고 있었다. 3.1운동으로 교회는 민족의 고난에 적극적 참가로 최대의 피해를 입었다. 그 정신은 무엇이 엇을까?
첫째로 한국기독교회의 3.1운동 참여 동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입장에서 나라 사랑의 정신이었다. 미약했던 기독교회가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유에 대해 민경배는 내연된 신앙이 자연스럽게 이때 외연〔內燃而外延〕된 것으로 보았다. 송길섭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을 신앙운동의 일환으로 여겼다고 설명하였다. 한국교회는 애급과 일본을 동일시하고 이스라엘과 조선을 동일시하였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이처럼 기독교를 통하여 민족과 자아를 찾고 민족의 독립을 소망하였다, 3.1운동에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참여한 모습을 보고 종교를 싫어했던 민족주의적 경향의 사학자 신채호도 기독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공산주의자가 된 김산도 기독교가 조선 독립의 어머니 역할을 할 것으로 보았다. 일본 당국도 교회를 반일 혁명의 온상(hot bed of revolutionary opportunities)으로 인식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교회의 집회, 전도, 설교, 성경연구, 기도회까지 취체 하여 종교 자유를 크게 위축시켰다. 교회는 이러한 상황을 복음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대한 도전이자, 선교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고, 기독교 박해라고 판단하였다. 성경에서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깨닫고 그정신을 실현하려하였다. 민족대표인 이승훈은 "민족자결은 천제의 혜택으로 되는 것"이라 믿었고, 유여대 목사와 신흥식 목사도 조선의 운명은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고 믿고 참여하였다. 길선주 목사와 신석구 목사는 기독교를 사회적인 욕구충족의 방편으로 알았다가 성경을 통해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고 체험적인 종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김선두 목사는 3.1운동을 천의(天意)라고 믿고, 자유와 정의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는 것"을 "독립시위에 참가하는 것" 곧 "애국"이라고 믿었다. 3.1독립운동 후 기독교인들이 더 열심히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의 괴리감에서 벗어나 예수 믿으면 나라와 민족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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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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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에큐메니칼 정신이었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의 지원과 피해 상황의 사진 촬영 및 기록으로써 증인 역할로 세계에 한국의 자주독립의 당위성을 알렸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가 무엇보다 세계교회와의 동류의식을 갖고 독립 의지의 세계화, 세계질서운동인 군국주의 퇴치, 민주주의 정착을 내세우며 세계의 사회와 교회에 증언자적 역할을 하였다. 교회는 하나라는 결속력과 통일력, 기구, 조직, 인물이 있었고 민주주의적 자치능력이 양성되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