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이효상 교회건강연구원장.
최근 출간된 찰스 쿱찬의 『노 원스 월드(No One's World)』에서는 '구심점이 사라진 세계'를 말하고 있다. 미국교회가 빌리 그래함 목사 이후 분열했듯, 한국교회도 한경직, 조용기 목사 이후 중심이 될 좋은 지도자 없이 연합과 공익적 가치보다는 개인이나 기관의 사적 이익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또한 연합사업을 진행하는 기관도 구심점이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 이합집산은 거듭되지만 별로 영향력은 없어 보인다. '연합' 정신이 사라진 연합기관이라면, 그것이 왜 필요한가 반문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창조적 지도자'나 '기관'의 출현도 절실하다. '창조적 지도자'는 큰 교회 목사가 아니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이다. 전략과 전술을 알고, 시대를 읽는 자일 것이다.

이런 지도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나올 수 있는 토양, 즉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출현하고 커갈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1970년대의 카리스마'가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새로운 지도자는 어느 날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토론과 헌신 등 다듬어지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교회라는 정체성을 몸으로 체감하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교계 흐름이 상당히 우려스러운 것은 치열한 논의 구조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든 의사결정 구조, 교회가 접하는 이슈에 대한 논의 구조는 전근대 방식이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운영인 것이다.

그리고 행사를 단회적 이벤트로 치룬다. 시대 흐름에 대한 통전적 역사 이해가 없는 '공시적 행사'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인지 점점 동력이 떨어지고, '연합'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몇몇 사람들의 사진 찍는 행사에 '돈내고 들러리 서라'는 식이라서 "'연합'이라는 자리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중견 목회자들은 말한다.

한국교회가 고쳐야 할 고질병 중 하나는 한국교회에 다양한 그룹, 엄청난 인적 자산이 있으면서도 '공공성을 전제로 한 연합'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많은 낭비가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기관이나 인사들은 '자신만이 모든 것을 해야 하고, 자신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또 그 정도가 지나치면 다른 모든 기관들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기를 바라면서, 될 일을 안 되게 만드는 독특한 은사를 갖고 있다.

이건 엄청난 낭비이자, 사적인 욕심일 뿐이다. 나는 못하지만, 다른 기관이나 다른 사람들이 하려 할 때 격려하고 지원하며 축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한국교회에 발전이 있지 않겠는가?

한국교회에는 많은 연합기관들이 있다. 그 기관들이 아젠다에 대해 정책적 연대 혹은 협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능조차 마비된 것으로 보인다.

기관은 많지만 어느 기관도 그런 기능과 제 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런 싱크탱크를 지원하거나 연대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기관이든 어디든 사람을 키우지 않았으니, 정작 브레인이나 논객도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방향감각 제로, 존재감 제로의 상황이다.

한국교회가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 큰 그림 중 하나가 싱크탱크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처럼 예측불능, 통제불능의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과 전술을 갖추고 그 역할에 맞는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사역들을 철저히 분산해야 한다.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듯 운행되는 그런 구조가 건강한 사역구조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한국교회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싱크탱크란 특정 사항에 대한 조사·분석 및 연구 등을 통해, 각종 정책 개발뿐 아니라 정책 실행 피드백, 지속적인 개선 유도까지 수행할 수 있는 고급 두뇌집단을 일컫는다.

교단과 교파, 목회자와 평신도의 입장을 초월해 모인 브레인과 논객, NGO그룹들이 신앙, 그리고 실천력을 성경적으로 길러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대안을 모색하고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공교회의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기관과 사람들을 네트워크화할 수만 있다면, 싱크탱크가 출현했을 때 상상 외로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공공적 목표와 가치를 펼쳐서 함께 공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가려는 새로운 발상의 시도가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정치 지향과 편향성, 개인의 이익만 제외한 비정치적이고 균형감각을 지닌 다양한 인물, 각자가 가진 재능과 은사, 헌신을 전제로 '다양성 속에 연합'을 도모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그룹이 포진한다면 이처럼 환상적 팀일 수 있겠는가?

구성원이 꼭 목사여야 할 필요도 없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사회를 1970년대 신학교에서 배운 단순한 목회자적 사고와 수준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10년 이상 한 분야에 헌신해 온 각계 각층 평신도 전문 사역자들이라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자리가 아니라 사역이 더 중요하고, '다양한 사고와 다양한 접근 방식을 인정하고 상대방과 함께 가야 산다'는 일명 '상생 소통법'을 가진 이들이 모이지 않으면 이대로 미래를 열 길은 없다.

지금 교회는 과연 기독교 가치관을 수호하며 미래를 열어갈 전략실, 싱크탱크를 보유하고 있는가.

지금이 바로 한국교회 싱크탱크가 출현해야 할 타이밍이다. 그래야 미래 사회에 있어 한국교회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러 사안들이 쌓여 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두뇌 집단을 모아, 정책적 접근이 가능한 싱크탱크를 만들고 인재를 키워낼 적기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며, 새로운 시대적·사회적 과제에 눈을 돌려야 할 때를 보내고 있다.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