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음악 대중음악 박욱주 소향
▲국내에서 활동하는 전문 CCM 가수로는 이례적으로 일반 대중음악계에서도 인정과 주목을 받고 있는 소향.
최근 인기 음악 프로그램인 MBC <복면가왕>에서 '노래9단 흥부자댁(CCM 가수 소향으로 추정)'이 3회 연속 가왕 자리를 차지하고 이제 4회째 가왕 자리에 도전한다.

2015년 설 연휴 첫 방송 이래 2년 남짓한 동안 이 프로그램에서 4주째 가왕 자리를 차지한 참가자는 모두 5명(김연우, 거미, 차지연, 하현우, 정동하)에 불과하다. 돌아오는 경연에서도 소향이 가왕 자리를 지킬 경우,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 출연 이후 다시 한 번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 기독교음악) 가수로는 거의 최초로 일반 대중음악계의 관심을 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 CCM의 현황을 소개한 본지의 한 기사는 이 사실을 전하면서 소향과 같은 걸출한 가창력과 인지도를 가진 CCM 사역자가 지속적으로 출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본 칼럼니스트 역시 이런 바람을 지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바에 일정 부분 보완해야 할 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CCM 사역자들이 기독교인과 대중의 호응을 얻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비판적 의식에 근거해 신앙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CCM과 워십송(worship song)의 형식 및 내용을 정립하는 일이 더 시급한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칼럼은 총 3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이 기회를 통해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고, 이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한 분기점 및 원인을 탐색하며, 오늘날 양자의 바람직한 크로스오버(crossover, 서로 다른 장르의 교차를 의미하는 음악 용어) 가능성을 타진해볼 것이다. 영화에 대한 고찰도 당연히 동반된다.

단, 특정한 영화를 선정해서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식보다는,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작품들을 여러 편 둘러보며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칼럼 내용을 구성하려 한다.

◈포스트모던 대중문화: 실존철학으로부터의 유래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가능성에 대하여 살펴보려면, 우선 예술의 장르에 대한 모더니즘(modernism)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인식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고찰한다면, 현재의 문화 조류가 전통적 장르의 해체 및 융합을 선호하게 된 기원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대중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주류 원리로 등극해 있지만, 그 정체를 해명하는 일은 여전히 문화철학의 난제 중 하나로 여겨진다. 애초 '포스트(post, 脫 또는 후기)+모더니즘(modernism, 근대주의)'이라는 용어 자체가 섣불리 개념을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 고찰의 목적을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관계 이해로 특정한다면, 이 난해한 문화사조를 비교적 명료하게 파악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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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을 건축물의 모양으로 간단히 도식화한 그림.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정신인 “창조적이고 비판적이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적 패러디와 계승”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실존철학(existential philosophy)을 기반으로 형성된 문화사조로서, 2차 세계대전 전후부터 1950-1960년대를 거쳐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서 실존철학을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실존철학은 현상학적-해석학적(phenomenological-hermeneutic) 인간 이해를 제안해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방향을 지시했을 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체적 구현은 문화계 전반의 창조적 실험정신과 치열한 투쟁에 의해 성취된 결실이다.

실존철학의 현상학적-해석학적 인간 이해란 간단히 말해 사람의 본질적 존재방식을 '현상(phenomenon)'과 '해석(interpretation)'으로 보는 것이다. 실존철학의 현상과 해석 개념은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덴마크 철학자이자 문필가인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에 의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반 독일의 현상학자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과 그 제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교화되었다.

이들은 근대의 인간 이해가 보편성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칸트와 헤겔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시대정신은 사람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인류 공통의 보편적 원리에 맞춰 설명하려 하였다. 후설과 하이데거는 이런 근대의 시대정신에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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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의 선구자 후설과 실존철학의 대가 하이데거.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진정한 보편적 인식, 보편적 존재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와 세계를 인식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각자 삶의 위치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경험은 어떤 보편적 원리로 규격화할 수 없는 고유한 개별성을 갖는다. 각 사람이 세계를 지향하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모두 다르기 때문에 현상들을 경험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이 현상들을 의식적으로 해석(의미∙가치의 부여)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이것이 실존철학자들이 주장한 개별성(individuality, Individualität)이나 고유성(authenticity, Eigentlichkeit)과 같은 개념들의 간략한 취지다.

실존철학자들이 이처럼 개별성에 몰두한 이유는 19세기 말-20세기 초반 세계 역사의 정황과 깊게 연관돼 있다. 19세기 내내 전 세계를 강타한 제국주의 및 식민지 경쟁의 광기, 그리고 20세기 초 양대 세계대전의 참혹함은 모더니즘의 대전제, 즉 인류 전체의 이성적∙과학적∙윤리적 발전에 대한 낙관주의가 지극히 허황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고도로 발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개별적 삶의 방식과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정치·경제체제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억압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삶의 개별성, 가치의 다원성을 존중하는 현상-해석의 방식을 정립하는 시대적 과제가 제기됐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개별적 현상-해석에 기반을 둔 삶의 방식을 문화적으로 구현하는 데 주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포스트모던 문화운동을 개시한 이들은 2차대전 종전 후 태어나 1950-1960년대의 전 세계적인 경제성장과 미디어 문화의 수혜를 입은 전후세대(post-war generation)였다. 이들은 앞 세대들이 저지른 죄악, 그리고 허황된 것으로 판명된 인류 공통의 근대적 가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개별적 삶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고 향유하는 문화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대중문화 차원에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68혁명(Protests of 1968)을 계기로 포스트모던 문화사조의 진면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68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쟁의 기억 때문에 이전보다 더 안정, 보수, 권위에 대한 열망을 보이는 기성세대에 반발한 대학생 및 청년층이 주도해 시작된 문화혁명이다.

이 혁명은 곧 미국으로 전파되어 1960년대 초중반부터 한창 진행되고 있던 인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 및 반전운동(anti-war movement)과 결합되는 한편, 히피(Hippie) 문화운동으로 구현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68혁명 세대가 서구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은 1980-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말 그대로 대중문화의 근본성향으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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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68혁명(Protests of 1968)과 미국 히피운동의 정점인 우드스톡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 1969). 포스트모던 문화가 발흥하는 분기점 역할을 했다.
◈탈-장르: 대중음악과 CCM의 크로스오버

모더니즘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범주화(categorization)이다. 근대 이전 서구문화에도 범주화의 성향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근대만큼은 아니었다. 근대는 말 그대로 범주화의 열망이 꽃을 피운 시대였다.

범주(κατηγορία, katēgoría)란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개념으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E)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립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래 그리스 남부 아테네 출신이 아니라 북부 마케도니아 왕국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국왕의 주치의로서 상당한 자연과학적 식견을 갖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훗날 독자적인 형이상학과 자연학을 정립할 때에도 생물학적 식견을 다수 채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닮은 종(種, εἶδος, species)의 생물들 간에 성립되는 유(類, γένος, genus)의 동일성(identity) 발견에 많은 공을 들였고, 이 동일성의 이념을 인식론에도 적용하였다. 그는 특정 현상들을 동류(同類)로 분류해서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동일성의 개념들을 범주라 호명했는데, 이후 범주 개념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를 경유해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 계승돼 근대 계몽주의 인식론의 뼈대를 이뤘다.

18-19세기 서구, 계몽의 시대에 받아들여졌던 이상적 인간상은 이성적 인간이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암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식을 가장 합리적으로 분류해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으로 여겨졌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백과사전이 바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로 대표되는 프랑스 백과사전파 소속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범주화에 의한 지식의 분류를 누구보다도 솔선해서 실천했던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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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주화(categorization)는 현상을 분류해서 가장 효율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가능케 하는 행위다. 근대에는 범주화를 이성적 인간의 가장 탁월한 능력 중 하나로 보았다.
근대에는 지식만 범주화의 대상에 든 것이 아니다. 사람이 향유하는 모든 문화적 유산들이 범주화의 심판대 앞에 섰다. 예술 부문도 마찬가지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체육이든 제대로 향유하려면 비교적 명확한 장르 구분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졌다. 어떤 형식, 어느 사조에 귀속된 예술가로부터 나왔는지, 소위 '족보'가 해당 예술작품 및 예술활동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을 이처럼 명확한 장르로 구분해 분류하는 모더니즘의 처사가 강압적이라 주장한다. 예술은 그것 자체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봐야지, 유사성으로 뭉뚱그려 획일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전통적 장르의 해체(deconstruction)와 융합(convergence)이다. 실제로 오늘날은 대중문화뿐 아니라, 학문도 융합학문이 대세다.

조금 먼 길을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을 돌아보도록 하자.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가 옅어진 것도 모더니즘의 범주화 본능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자.

박정현은 가수활동 시작 당시 CCM 가수였지만, 이제는 한국 R&B를 대표하는 걸출한 대중음악 가수로 인식되고 있다. 김범수도 원래 CCM 가수가 되기 위해 진로를 알아보다 보컬 트레이너 박선주에게 발탁돼 대중음악 가수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대중음악 활동 중에도 자주 교회 집회 등에서 CCM 무대를 선보였다.

이수영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가수로서 진로를 모색하다 참석한 CCM 행사를 계기로 기독교인이 된 케이스다. 발라드 가수로 큰 인기를 얻었던 그녀는 6집 앨범부터 CCM곡을 수록했고, 7집과 8집 앨범은 대부분 기독교적 정서를 반영한 곡들을 다수 수록해 발표했다.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대중음악 가수들이 CCM 활동을 하고, 소향 같은 전문 CCM 사역자들이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일이 점차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중문화의 대세가 되면서, 장르의 해체가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대중 모두에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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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 활동으로, 혹은 CCM을 계기로 가수 진로를 선택한 이들 (박정현, 김범수, 이수영).
가수들의 활동과 함께 음악의 형태 및 가사에 있어서도 장르 간 융합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최덕신, 박종호, 소리엘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독교음악은 그 고유한 범주를 넘어서지 않으려는 절제된 감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김수지의 CCM 앨범 '하나님을 느낌(1995)'이 발표되면서 일종의 지각변동이 발생한다. 이 앨범은 자켓부터 시작해 노래의 음률 및 가사까지 기존 대중음악계의 상업적 매력을 그대로 CCM 앨범에 이식해 대성공을 거두고, 그 후 한국 기독교음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이정표로 남게 된다.

대중음악의 강점을 기독교음악에 이식하려는 시도가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한국 기독교계 전반이 음악적 혁신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기실 미국의 상황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기독교음악의 근원성: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O Brother, Where Art Thou?)

그렇다 해서 미국의 사정을 한국과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현재는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은 기본적으로 영국의 분리주의-청교도(English Separatist-Puritan) 신앙을 근간으로 형성된 국가다. 17세기 초반 영국 국교회(The Anglican Church)의 핍박을 피해 북아메리카 메사추세츠 지역으로 이주한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칼빈주의-회중교회(Calvinist-Congregationalist) 전통을 바탕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세웠다.

유독 보수적인 신앙을 강조하기로 유명한 청교도들이 주축이 된 까닭에, 미국의 초기 문화는 전적으로 교회에 귀속되어 있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던 이들 초기 정착민들에게 일상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음악이란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신앙과 삶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적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시키고 예배와 기도를 돕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애초 미국의 음악 문화는 유럽, 특히 영국에서 건너온 기독교음악으로부터 출발했고 미국 교회의 성장과 함께 발전된 것이다.

2000년 개봉한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라는 영화가 있다. 1930년대 초반, 대공황에 신음하는 미국 남부 시골에서 한 사기꾼이 아내의 재혼을 막기 위해 감옥에서 탈출해 동료들과 모험을 떠나는 스토리의 코미디 영화다. 영화 전체 플롯은 호메로스(Homer)의 오디세이아(Οδύσσεια)를 패러디하는데, 전통적인 미국 남부 촌락의 문화와 삶을 묘사한 영화들 중 수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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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미국 남부지역의 풍경과 정서를 훌륭하게 표현한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중요 장면마다 등장하는 복음성가와 컨트리음악이 돋보이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플롯의 중요 전환점마다 복음성가(gospel music)와 컨트리음악(country music)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복음성가와 컨트리음악이 서사 진행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정표 역할을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1930년대 당시 미국 농민들이 기독교음악(찬송가와 복음성가)과 대중음악(컨트리음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주지사 선거유세장을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주지사 후보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린 소녀들을 단상에 세워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들이 부른 곡은 '고속도로에서(In the Highways)'라는 복음성가다.

"In the highways, in the hedges (고속도로에 있든, 울타리 안에 있든)
I'll be somewhere working for my lord (어디에 있든지 주님을 위해 일하겠어요)
If he calls me I will answer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면 저는 대답할 거에요)".

선거유세장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복음성가를 부르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풍경, 바로 기독교 신앙에 기반을 둔 미국의 전통적 문화 정서다. 그리고 그 직후 다시 컨트리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를 때도 유세장에 모인 관중들은 복음성가를 들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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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지사 선거 유세장에서 복음성가 “In the Highways”를 부르는 소녀들.
유사한 맥락으로, 죄수들이 일할 때 부르는 노래는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를 모티프로 삼고 있다. 예수께서 병으로 죽은 나사로를 되살려주신 성서 기사를 경찰과 범죄자의 관계로 패러디한 곡이다.

"Well, the high sheriff, he told the deputy (높으신 보안관님이 경관에게 말했다네)
Won't you go out and bring me Lazarus? (나가서 나사로를 체포해 오라고)
Oh, bring him dead or alive (생포하든 사살하든 상관없다고)
O Lord, he's a dangerous man... (오 주님, 나사로는 위험인물입니다)
흑인 노인이 철도에서 일할 때 부르는 노래 역시 "천사들의 악단"(Angel Band)이라는 복음성가다.
O bear my longing heart to Him (주님께 제 마음을 돌립니다)
who bled and died for me (저를 위해 피흘리고 죽으신 주)
Whose blood now cleanses from all sin (그분의 피가 모든 죄를 씻어내고)
and gives me victory (내게 승리를 주시네)".

이 영화를 보면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관계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근본적인 정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유교 및 무속에 주된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 영성(spirituality)을 담는다는 개념이 희박하다. 궁중에서 연주하던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이나 무당들이 부르던 무가(巫歌), 혹은 장례시 부르던 상여소리와 같이 특수한 제의적 목적을 가진 음악들은 예외겠지만, 음악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 인식은 대개 즐거움 표출, 공동체의 유대감 강화, 삶의 애환의 위로, 그리고 한풀이를 위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즉 감정적 위안을 음악의 본질적 기능으로 여긴다.

반면 서구와 미국 문화 속에서 음악은 전통적으로 영성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예배 및 교회음악 연구 전문가인 신학자 에드워드 폴리(Edward Foley)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서구에서는) 음악 안에 신들과 사람들의 기분과 행동을 바꿔놓는 힘이 있다는 믿음이 전해져 내려온다." 서구 문화의 중추적 기원 중 하나인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는 시와 음악이 신들과 소통하는 길인 동시에 그들로부터 계시와 지혜를 얻는 방편으로 여겨졌다.

서구 기독교에서도 음악은 영성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저명한 교회음악 작곡가 조셉 젤리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예배음악을 작곡할 때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music-making)보다 음악이라는 길을 통해 구원의 신비로 진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는 음악이 의식적인 텍스트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Mystery)를 표현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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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와 미국에서 음악은 전통적으로 영성을 수행하는 길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므로 현대음악의 기원을 기독교음악에서 찾는다.
역사가 브룩스(William Brooks)는 초기 식민지 시대 미국의 음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은 청교도 문화를 바탕으로 음악의 종교적 기원 및 정서를 온전하게 보존하였다.

물론 식민지 시대에도 세속화된 음악은 존재했다. 북부 메사추세츠 식민지와 달리 남부 버지니아 식민지 이주자들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황금과 부유함을 얻기 위해 신대륙으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이곳에서는 엘리트들 사이에 사교를 위한 실내악이 각광을 받았고, 민중들 사이에는 훗날 컨트리음악의 기원이 되는 포크 음악(folk music)이 유행했다.

그러나 북부 식민지에서 음악이란 철저히 신앙과 교회를 위해 활용되어야 할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신대륙 식민지 자체적으로 발간된 최초의 저서가 시편 찬송가(Bay Psalm Book, 1640)라는 사실은 음악에 대한 청교도들의 인식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내악은 주로 엘리트들 사이에서만 향유되고, 포크 음악은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흘러가는 사이, 기독교음악은 분명한 체계를 갖추고 고유한 영역을 점유한 채 발전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오늘날 대중음악의 주된 기원을 다른 음악적 장르보다 기독교음악에서 찾으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컨트리나 스윙(swing) 음악의 기원이 되는 포크 음악이나, 재즈(jazz), 블루스(blues)의 기원이 되는 흑인 노예들의 영가(black spiritual music) 역시 기독교음악의 발전에 힘입어 동반성장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 때문에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관계에 대한 한국과 미국에서의 일반적인 견해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기독교음악이 대중음악의 도움을 힘입어 발전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반대로 서구와 미국에서는 대중음악이 기독교음악 덕분에 존재하고 발전되어 온 것으로 여겨진다. 음악은 원래 하나님을 향한 영성을 실천하는 하나의 수단인데, 세속화로 인해 그 원래 용도를 상실하고 감정적 만족을 위해 쓰여지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대중음악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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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포크 뮤지션들. 미국에서 포크 음악은 세속화된 음악으로 분류되었지만, 상당 부분 기독교음악과 역사를 함께하며 동반성장한 장르의 음악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드물게나마 이런 인식을 반영한 곡들이 발견된다. 윤복희 권사의 노래 '여러분'과 '나그네' 등은 기독교음악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교회와 신앙의 정서를 표현하는 가사를 담아낸 곡으로서 대중음악계에서도 인정받은 명곡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는 주로 포스트모던한 방식으로 수행되는 모습을 보인다. 현상-해석의 개별성을 중시하고 고정된 장르의 해체를 주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상호작용 및 융합에 있어 어느 한쪽의 주도권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대중음악의 기법과 정서가 주가 돼선 안 되겠지만, 기독교음악이 주도적 위치에 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로 인해 작사∙작곡시 준수될 필요가 있는 기독교적 기준들이 의도적으로 희석되거나 해체되는 양상을 보인다.

반면 미국에서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는 전통적인 방식과 포스트모던한 방식이 혼재되어 있는 듯하다. 전통적 방식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음악의 근원성 및 주도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수행된다. 오늘날 우리가 대중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근거도 원래는 기독교음악이 존재한 덕분이라는 것을 깊이 유념하는 것이다. 영화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국 사람들은 복음성가와 찬송가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모티프와 형식을 빌린 대중음악도 친숙하게 향유할 수 있었다.

마이클 W. 스미스(Michael W. Smith)나 힐송(Hillsong Worship Team)의 CCM 공연 현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열광하는 이유도 단지 대중음악의 상업적 매력을 빌려 장착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보다는 음악에 열광하고 몰입할 줄 아는 문화적 역량이 원래 기독교적 영성의 유산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열망이 관여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보다 적절한 판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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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CM계를 주도하는 뮤지션들(Michael W. Smith, Hillsong Worship Team).
물론 미국의 기독교음악 가운데서도 대중음악 기법과 정서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상업화에 치중한 사례들이 분명 존재한다. 종교학자인 윌더(Courtney Wilder)와 레월트(Jeremy Rehwaldt)의 관찰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한국보다 약 30년이 빨랐던 셈이다. 이런 현상이 유독 1960년대를 기점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화가 진행되면서부터다. 앞서 68혁명과 히피 문화운동을 언급한 바 있는데, 기독교음악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가톨릭 교회 측에서도 기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The Second Vatican Council, 1962-1965)를 통해 반드시 라틴어로만 미사음악을 작사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으며, 세속의 음악에 조심스럽게 열린 자세를 취해도 좋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윌더와 레월트는 이 당시 기독교음악의 세속화가 교회들이 내놓은 일종의 고육지책이었음을 지적한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즈(Beatles)로 대표되는 대중음악의 폭발적인 힘과 히피들의 음악이 전파하는 무정부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이며 반기독교적인 메시지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 사역자들이 비교적 '안전한' 기독교 대중음악(Christian pop music)을 보급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 당시 CCM이 시작된 이유였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상업적 가능성을 보고 나선 음반업계의 계산도 결부되어 있었다.

한국 기독교음악, 특히 한국 CCM은 이런 치열한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은 채 단지 포스트모더니즘 세태에 편승해, 그리고 상업적 이익을 거두기 좋은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계산 하에 작사∙작곡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을 중시하는 사역자들의 노력 덕분에 기독교적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확인되는 정도이다.

기독교음악의 근원성을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은 상태로 신앙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흐리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 기독교계는 이미 기독교 문화를 기본 바탕으로 해서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이 함께 공존하던 시기를 충분히 겪어 왔고, 그래서 장르의 해체와 융합이라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조류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음악 대중음악 박욱주
▲CCM 가수 소향의 대중음악 디지털 싱글 앨범들.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 간 경계 해체의 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CCM을 진흥시키려면 우선 충분한 종교학적-문화사적 성찰이 전제돼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아직 국내에서 이런 시도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저명한 작가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C. S. 루이스(C. S. Lewis)는 영성의 수행 없이 감정을 자극하고 교회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데 치중한 기독교음악을 '교회의 패거리 노래(the gang songs of the church)'라며 지탄한 바 있다.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록(rock'n roll), 댄스음악(dance music), 힙합(Hip-hop) 등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대중음악 장르 대부분이 원래 기독교음악으로부터 유래됐거나 그로부터 지배적인 영향을 받아 발전되었다는 분석이 생소하게 느껴지는가? 그것은 기독교음악으로부터 유래되는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관계를 정립하고, 양자 간 기술적 혹은 사상적 크로스오버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괴하리만치 파격적인 오늘날 대중음악의 발전상에 직면한 기독교음악이 취해야 할 입장과 주의점은 무엇일까?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의미로든 자기 삶에 연관된 모든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재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격식 없이 조합하여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일을 브리콜라주라고 한다. 이 기법은 오늘날 광고나 뮤직비디오, 조형예술, 팝아트(pop art) 등에 자주 동원되며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된다.

오늘날의 영화는 삶의 모든 관심사들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조합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안에는 기독교인들이 환영할 만한 요소와 불편해할 만한 요소들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본 칼럼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영화들 속에 뒤섞여있는 아이디어들을 헤아려 보고, 이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