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8
▲화려하다 못해 세상을 구원하는 데까지 이르는 자동차 경주. 자동차 액션의 절정을 보여주는 <분노의 질주 8>.
'자동차'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한국에서 자동차라 하면 실용적 목적 외에는 주로 부와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는 과시의 수단으로 인식된다. 사회질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람이라면, 격에 맞는 차 한 대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질문을 미국에서 제기한다면? 부와 사회적 지위의 과시 외에도 특별히 다음의 세 가지 이미지가 추가로 연상된다. 자유, 섹슈얼리티(sexuality), 그리고 사회적 규율로부터의 일탈. 이런 이미지들은 주로 할리우드 대중문화와 디트로이트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마케팅을 통해 각인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동차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분노의 질주(The Fast and the Furious)' 시리즈는 2000년 이후 제작된 자동차 액션물의 대표작이다. 이 시리즈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자동차에 결부된 할리우드적 낭만을 가장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에 미쳐 무모하게 재산과 생명을 내던지는 청년들, 이런 광기와 같은 열정에 끌린 젊은 여자들, 속도위반부터 강도∙살인까지, 경범죄와 중범죄를 오가는 무법자 같은 생활은 <분노와 질주>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의 주축을 이룬다.

◈자동차와 자유: "10초 정도 질주하는 그 순간, 난 자유야(For those 10 seconds or less, I'm free)."

이달 중순 개봉된 '분노의 질주 8(The Fate of the Furious)'은 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으로, 개봉 후 두 주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세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공고하게 지켰다. 2001년 제1편이 흥행에 성공한 이래 17년 동안이나 지치지 않는 엔진과 같이 지속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시리즈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매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번에 개봉한 8편은 총 제작비만 2억 5천만 달러(한화 약 3,400억 원)가 소요되었는데도, 손익분기점인 5억 달러(제작비+극장과 수익 분배+마케팅비)를 개봉 3일만에 넘기고 현재도 대규모의 수익을 '흡입하고' 있는 중이다.

그저 액션이 좋아서, 혹은 다른 영화가 별로 볼만하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제는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독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할리우드 영화를 위시한 미국 대중문화에서 자동차가 갖는 독특한 위상에 대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분노의 질주'가 집중적으로 내세우는 가치는 '자유'다. 시리즈 제1편에서 주인공 도미닉 토레토(Dominic Toretto, Vin Diesel 분)는 동료이자 다른 한 명의 주인공인 브라이언 오코너(Brian O'Conner, Paul Walker 분)에게 자신이 레이싱에 인생을 바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분노의 질주 8
▲400미터 경주 선상에 선 도미닉과 브라이언.
"나는 한 번에 400미터(내기경주 거리)씩 삶을 살아가. 다른 건 중요치 않아. 주택대출, 정비소, 우리 레이싱 팀, 그 외 너저분한 것들 말이야. 10초 정도 (400미터를) 질주하는 그 순간, 나는 자유야(For those 10 seconds or less, I'm free)."

"10초간의 질주 속에 존재하는 자유." 이 대사는 금번 개봉된 시리즈 제8편에서도 테러리스트의 말을 빌려 다시 등장한다. 이는 미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동차가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지를 대변해 준다. 그들에게 드라이빙은 자유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생각은 어디로부터 유래된 것일까? 저명한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미국에서 자동차와 드라이빙에 자유라는 이미지가 결부된 원인을 계급 간 갈등과 차별의 역사로부터 모색한다.

그는 소비(consumption)를 차별의 게임(a game of distinction)이라고 규정한다. 소비란 경제적 계층 간에 발생하는 문화적 자본과 신분의 명예를 둘러싼 경쟁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 소비의 개념을 통해 자동차를 둘러싼 미국의 문화적 인식을 분석한다.

미국에 처음 자동차가 도입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급속하게 진행되는 산업혁명의 부작용으로 인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격렬한 계급투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계급투쟁 속에서 자동차는 노동자 계층의 박탈감을 증폭시키는 매개체 중의 하나였다.

자동차는 부유한 자본가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은 자동차를 실용적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 주로 사교행사나 도시 근교 나들이 등 여가활동에 활용하였다. 부유층에게 자동차란 부유함과 삶의 여유, 그리고 생계활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하는 예술품이나 장식품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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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고가 럭셔리차, 부유층의 경제적 여유와 자유를 상징했다.
도시의 자본가 계층이 자동차 문화를 향유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열악한 입장에 있는 농민과 도시 노동자 계층은 자동차에 대한 혐오감과 적개심을 표출하는 동시에 강한 소유욕을 느꼈다. 자동차에 대한 저소득 계층의 소유욕은 1900년대 초반 등장한 무성영화들 속에 분명하게 반영돼 있다. 현실에서는 부유한 이들의 전유물이기에 표면적으로 혐오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정작 영화 속에 자동차가 등장하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저소득층에게 자동차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1906년 프린스턴 대학 총장을 역임하던 윌슨(Woodrow Wilson, 훗날 미국 제28대 대통령 역임)은 이처럼 자동차에 결부된 계급 간 갈등과 감정에 깊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정치인과 기업가들도 공감한 바가 있었는지, 중산층, 농민, 도시노동자 등 일정한 고정수입이 있는 계층에서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저 유명한 T형 포드(Ford Model T)였다. 성능과 외관에서 기존 부유층들이 구매하던 차종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지만, 가격을 대폭 낮춰 일반 가정에서도 조금 무리하면 구매할 수 있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규격화된 대량생산 체제였다. T형 포드는 1910-1920년대 미국 국민차로 등극하며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판매된 차로 기록된다(판매량 1위는 1938년 처음 생산된 독일 폭스바겐의 1형 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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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T형 포드. 농민이나 공장노동자들도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에 출시되어 국민차 시대를 연다.
이처럼 T형 포드가 등장하면서 자동차에 부여된 '자유'의 의미에 큰 변화가 발생한다. 부유층의 전유물로서 자동차가 가진 이미지 속에는 '생계로부터의 자유, 여가활동의 자유'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도시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실용적 운송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자동차는 기존의 내용에 새로운 의미를 첨부한 '자유'의 이미지를 획득한다.

미국의 유명 문필가이자 역사가 프레데릭 루이스 알렌(Frederick Lewis Allen, 1890-1954)은 제1차 세계대전 여파를 중심으로 자동차에 부여된 이 새로운 자유의 의미를 고찰한 바 있다. 알렌의 기록에 따르면, 미국의 1920년대는 여러 모로 격변의 시기라 할만했다. 당시 사회적∙문화적 변화 때문에 지금도 미국에서는 이 시기를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부를 정도다.

변화는 유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 전선에 참전했던 미군이 귀국한다.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병력의 수는 총합 약 3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가 평생 자기 고향 주변을 벗어나본 적 없는 시골 출신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아직 도시화가 상대적으로 덜 진행된 상태라서, 일부 대도시 및 공업지역을 제외하고는 많은 청년들이 농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교회가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하는 보수적인 분위기의 농촌에서 생활하던 청년들이 유럽, 특히 프랑스 수도 파리(Paris)를 경험하면서 심경에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비록 전쟁 중이긴 했지만, 당시 파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자유분방하고 세속화된 문화를 향유하고 있던 도시였다.

전쟁의 공포와 함께 화려한 도시의 삶을 잠시나마 경험한 참전 군인들은 귀국 후 보수적인 청교도 전통을 따르는 미국 농촌의 삶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도시의 삶을 동경하며 대도시로 떠났고, 남아있던 자들도 점차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을 누리기 시작하는데, 그런 이들의 앞에 등장한 것이 저렴한 국민차 T형 포드였다.

당시 자동차와 관련된 변화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지붕 있는 자동차(closed car)의 생산과 판매가 급격하게 증가한 점이다. 1919년 이전에는 지붕 있는 자동차의 수가 미국 내 전체 자동차 수의 10%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1924년에는 43%, 1927년에는 82%로 대폭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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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생산된 T형 포드. 지붕 있는 차(closed car) 열풍을 반영한 외형을 갖는다.
지붕 있는 자동차는 실용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연애를 바라던 참전세대 청년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었다. 이 당시 남녀 청년들 사이에는 저녁 나절 차를 몰고 한적한 곳으로 나가 어른들과 이웃들의 눈을 피해 연애를 즐기는 일이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사건 수가 크게 증가하자, 한 소년재판부 판사는 지붕 있는 자동차를 '바퀴달린 사창가(house of prostitution on wheels)'라고까지 비난할 정도였다.

당시 참전용사들에게 자동차란 단순한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전쟁이 준 정신적 외상에 대한 위로와 보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모, 이웃, 교회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자유의 수단이었다. 교회는 이를 방종과 죄악으로 규정하고 젊은이들의 탈선을 우려했지만, 미국의 젊은이들은 목회자들의 우려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동차(를 활용해서 누릴 수 있는 일탈)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이 과정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 차례 더 강화되어 재현된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부터는 히피(Hippie) 운동의 영향으로 자동차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방랑, 마약, 그리고 무분별한 성관계의 온상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자동차는 미국의 특수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상황과 결부되면서, 그리고 이 상황을 적극 활용한 미디어와 자동차 제조사들의 마케팅과 맞물리면서 자유, 섹슈얼리티, 그리고 일탈과 범죄의 아이콘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에 깊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자동차에 결부된 이런 이미지들은, 비록 미국인들만큼은 아니지만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드라마를 통해 한국에도 자주 소개된 바 있다.

분노의 질주 8
▲<분노의 질주 8>의 하바나 자동차 경주 장면. 자동차와 결합된 섹슈얼리티의 이미지가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제 미국 내에서는 자동차에 결부된 자유와 섹슈얼리티의 이미지가 거의 고정관념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고등학생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자동차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 <트랜스포머>(Transformers, 2007)나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등 수많은 미국 영화∙드라마에서 고등학생 자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모들이 중고차를 선물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자동차를 선물한다는 것은 곧 차를 타고 돌아다닐 자유와 연애의 자유를 함께 허락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으로 보면 권위나 전통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는 뜻인데, 대중문화는 이를 매혹적인 자유라는 이미지로 포장하고 있다.

◈레이싱과 존경: "내가 이기면 현찰을 갖고 존경심을 얻지(I take the respect)."

권위와 전통에서 벗어날 자유, 거침없는 섹슈얼리티의 발산과 함께,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동차에 대한 다른 하나의 로망이 있다면, 그것은 '남성성(masculinity)에 대한 인정과 존경'이다. 이는 실제 현실에서 스트리트 레이싱(street racing, 길거리 경주)을 성립시키는 주된 요소 중 하나다.

<분노의 질주 8> 초반, 도미닉은 쿠바 수도 하바나(Havana)에서 레이싱팀 동료인 아내 레티(Letty, Michelle Rodriguez 분)와 신혼여행 중이었다. 그러던 중 이 지역 대표 스트리트 레이서와 시비가 붙어, 불리한 조건에서 대결을 펼친다. 화려하게 경주에서 이긴 도미닉이 얻어간 것은 금전적 보상이 아닌 상대방의 존경(respect)이었다. 사고 위험도를 최대한도로 높인 상태에서 운전 실력을 선보이는 것, 이는 스트리트 레이서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행동이다.

사실 이 대목은 <분노의 질주 7> 촬영 중 현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다른 한 명의 주인공 폴 워커를 기리는 오마주(hommage)이기도 하다. <분노의 질주 1>에서 폴 워커가 맡은 브라이언 역의 대사 속에 바로 이 존경이 언급된다.

"내가 지면, 승자가 내 차를 갖는다. 명료하고 깔끔한 조건이지. 그렇지만 내가 이기면 현찰을 갖고 존경심을 얻지(I take the respect)... 어떤 이들에게는 그게(존경을 얻는 것) 더 중요해."

어째서 목숨을 내건 운전방식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스트리트 레이싱의 전반적인 특징에 대해 알아야 한다.

분노의 질주 8
▲미국 아틀랜타(Atlanta)의 한 스트리트 레이싱 장면. 일반인들에게도 일종의 비공식적 축제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에서 스트리트 레이싱의 역사는 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스트리트 레이싱은 크게 합법적(legal) 혹은 불법적(illegal) 스트리트 레이싱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이 중 합법적 스트리트 레이싱은 전용 레이싱 서킷(circuit)에서 정규 스케쥴에 따라 철저한 규정 준수를 전제로 치러지는 모터스포츠(motorsports)로 발전된다.

유럽의 대표 모터스포츠 대회로 F-1(Formula-1)이 있다면, 미국에는 NASCAR(National Association of Stock Car Auto Racing) 레이싱이 있다. F-1과 NASCAR의 차이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경기가 열리는 지역과 경주용 차량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F-1이 전 세계 서킷을 무대로 경주를 벌이며 별도의 경주 전용 차량을 채택한다면, NASCAR는 미국 내에서 경기를 진행하며 스톡 카(stock car, 기성품 자동차라는 뜻으로 자동차 제조사들이 일반에 판매하는 외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개조한 경주용 차량)를 채택해 경기를 치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분노의 질주 8
▲F-1(왼쪽)과 NASCAR(오른쪽) 경주 장면. 경주용 차량의 기종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모터스포츠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보이는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도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1998년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이 사망자 분석 보고 체계(FARS, Fatality Analysis Reporting System)의 운전 중 주요 사망 요인으로 편입됐고, 그 후 불법 레이싱의 형태 및 참여자의 특성 등에 대한 분석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은 돌발적(spontaneous), 조직적(organized) 불법 레이싱으로 구분된다. 돌발적 불법 레이싱은 두 대 이상의 차량이 합의 하에 속도 경쟁을 펼치는 것으로, 주로 직선 구간에서 누가 먼저 결승선을 넘느냐로 승부를 가른다.

조직적 불법 레이싱은 통상 지정된 시간(주로 야간)에 다수의 차량이 약속된 구간에서 속도경쟁을 펼치는 것으로, 주로 입소문을 통해 레이싱 참가자와 관객을 불러모은다. 이 경우 단순하게 약속된 구간을 달리는 경쟁방식을 채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hat racing'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hat racing'이란 레이싱 참가자들이 모자 속에 돈을 넣고 이 모자를 다른 마을에 가져간 뒤, 모자의 위치를 알려주고 가장 먼저 도착하는 운전자에게 모자에 넣은 돈을 몰아주는 방식이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에 얽힌 사건들을 기초로 서사를 진행해 가는데, 과도하게 미화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불법 레이싱에 대하여 양호한 현실 고증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여러 기술들, 예를 들어 "burnout", "donuts", "blockades", "drifting" 등에 대한 묘사는 수준급으로 평가된다.

"burnout"은 정차 상황에서 자동차 바퀴를 굴려 노면에 타이어가 탄(burnout) 자국을 내는 것을 말하며, "donuts"는 앞바퀴 회전은 최소화하고 뒷바퀴 회전을 극대화해서 차량이 제자리에서 도넛(donut) 형상으로 회전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blockades"란 스트리트 레이싱 진행을 위해 저속으로 운전하면서 일반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뜻하고, "drifting"이란 커브시 감속하지 않고 타이어를 옆으로 미끄러지게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어느 쪽이든 일반 도로에서 시전할 경우 사고 위험이 대단히 높은 기술들이다.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은 단지 속도경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방금 언급한 위험 기술들을 얼마나 능숙하게 시전하느냐도 경쟁거리가 된다. 경주 구간의 선정도 중요하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일반 차량이 적어 안전한 대신 인기는 없다. 반면 경주 구간이 도심이나 혼잡구간을 경유할 경우 사고 위험은 극대화되지만 인기는 보장된다.

한 마디로 위험을 감수하는 수위가 높아질수록 우승자가 더 큰 인기와 존경을 얻는다. 때로는 위험 수위를 높이기 위해 "drinking and driving(음주 후 경주)"이나 "red light running(교차로 멈춤신호를 무시한 경주)"도 진행된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이 크고 작은 교통사고에 연루된다. 경주 참가자뿐 아니라 경주와 무관한 일반 차량이나 행인들의 사망사고도 빈번하다.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이 발각되면, 즉시 경찰들이 총동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노의 질주 8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의 참상을 보여주는 LA Times의 기사. 불법 레이싱은 미국 사망자 분석 보고 체계(FARS)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로 분류된다. 경찰들은 대중문화가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위험천만한 질주를 즐기는 것일까? 확보된 통계조사에 따르면,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 참가자 대다수가 16-24세 사이 백인으로 고등학생 또는 고졸 출신 사회 초년생들이고, 마약 사범 등으로 입건된 경험이 있으며, 학업 성취도가 낮고 소득수준이 낮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이거나 무직자들인 것으로 밝혀진다. 그 외 일부 장년층 운전자들과 고학력 고소득 운전자 및 여성들도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 불법 레이서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극단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할뿐만 아니라 높은 품질의 차량을 갖춰야 한다. 주로 10-20대 저소득층 운전자들이 무리하게 차량성능을 높이려다 보니 자동차 절도와 불법개조를 자행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종합해 보면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은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처해 있는 젊은 남성들이 존경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고 있다. 자신을 천시하는 사회의 질서에 대한 조롱과 분노를 표출하고, 남성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여성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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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질주 8> 하바나 경주장면. 위험천만한 운전기술과 불법개조가 영웅시되고 있다. 경주방식이 보다 위험하고 죽음에 가까울수록 스트리트 레이서들의 존경을 받는다.
여기에는 모터스포츠 스타들에 대한 모방심리도 관여되어 있다. 한국에서야 프로 레이서가 크게 각광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유럽과 미국의 경우 최고 수준의 레이서들은 수십 억에서 수백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 스타들이다. 단적 예로 NASCAR 최고 스타인 데일 언하트 주니어(Dale Earnhardt Jr.)의 경우, 2015년 한 해에만 급여와 우승상금 173억 원에 광고 수입 98억 원까지 총 271억 원을 벌어들였다.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 참여자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모터스포츠 팬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결국 여러가지 정황이나 연구결과로 미루어볼 때, 불법 레이싱은 사회에서 받지 못한 인정과 존경, 그리고 인기를 기형적 방식으로 획득하는 대리만족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자동차에 원래 결부되어 있던 자유나 섹슈얼리티의 이미지까지 중첩되면서, 불법 레이싱은 할리우드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로 자리잡게 된다. 멀게는 1955년작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서부터 가까이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까지, 자동차는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일종의 현실도피를 위한 해방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가치전복: "내가 당신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당신은 진정한 무법자야(You're a genuine outlaw). 자신만의 규칙대로 살지(You're a man who lives by his own laws)."

자동차의 통속적이고 상업화된 이미지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동차가 부여하는 청소년∙청년들의 일탈 기회는 1920년대 자동차가 대중화된 이래 많은 미국 목회자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 사람들의 실생활에서 자동차가 갖는 실용성을 무시할 수 없기에 그로부터 유래된 부작용들을 방치해 두었을 뿐이다.

그래도 특정 교파에서는 자동차에 결부된 통속적 이미지가 유발하는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아미쉬파(Amish)는 지금도 농촌에서 농업과 가구업 등에 종사하며 18세기의 고전적 생활방식을 고수한다. 아미쉬 공동체는 16-17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당시 혹독한 핍박을 받았던 근원적 종교개혁자들(Radical Reformers)의 일파인 메노나이트파(Mennonites)의 한 지류로서, 청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신앙공동체이다.

분노의 질주 8
▲아미쉬 공동체의 이동수단인 마차. 아미쉬 공동체는 문명의 이기가 신앙에 가져올 침습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상적 자동차 사용을 거부한다.
아미쉬 공동체의 상징과 같은 외견상 특징은 검소한 전통 복장, 그리고 말이 끄는 소형 마차(horse-and-buggy)이다. 자동차를 가족과 친구처럼 대하는 미국의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유독 자동차 사용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아미쉬파 교인들은 기술 문명을 적대시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은 신앙에 침습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문명의 이기(대표적으로 TV, 자동차, Internet, cell phones)에 대한 일상적 사용을 금한다.

그렇다 해서 이들이 18세기식 삶의 방식을 무조건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있어 기술문명이란 '선별적' 수용 대상이다.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려 한다.

전화의 경우 개인적 사용은 금하지만 다른 아미쉬 공동체와의 연락을 위해서나 긴급상황 발생 시 사용은 허락한다. TV는 전반적으로 신앙에 유해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PC의 경우 아미쉬 교인이 개발한 Classic이라는 기종을 사용한다. Classic은 인터넷과 미디어 기능이 제거된 단순 워드프로세서 및 오피스용 PC다.

다소 과도해 보이는 면도 있지만, 이들이 자동차에 대해 보이는 경계심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개인적 자동차 소유와 사적인 사용은 금하지만, 환자 수송이나 다른 주에 있는 아미쉬 공동체 및 친척 방문을 위해 차량을 사용하는 것은 허락한다. 이에 대해 이중적 태도라며 비웃는 이들도 있으나, 아미쉬 공동체의 입장은 나름 명료한 원칙과 기준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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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공동체에 속한 가정의 모습.
이들이 꼭 필요한 상황을 제외하고 마차 사용을 고수하는 이유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아미쉬파 교인들은 자동차가 부여하는 격렬한 이동성(mobility)이 기독교적 삶이 부여하는 마음의 평안을 해친다고 믿는다. 둘째, 가족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동차를 활용한 잦은 이동이 결국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를 초래한다고 믿는다.

셋째, 세속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자동차에 결부된 세속적 가치와 이미지가 신앙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넷째, 아미쉬파 교인들은 마차가 그들의 단정한 전통적 복장과 함께 공동체적 정체성 형성을 돕는 상징이라고 믿는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들이 자동차에 대해 내보이는 심한 경계심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자동차에 전통적 가치로부터의 자유나 일탈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익숙치 않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아미쉬 교인들은 미국의 자동차 문화를 바로 옆에서 목격하며 살아온 이들이다. '광란의 20년대'의 방종에 자동차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참전 세대의 방황에 자동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히피 문화 전파를 위해 자동차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한 이들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아미쉬파 교인들이 자동차를 대하는 태도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사실 기독교적 입장에서 전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욕망과 가치들을 집약해 보여주는 영화고, 또 그래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경주 액션들은 관객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섹슈얼리티와 일탈에 대한 남성적 욕망을 가장 스펙터클한 방식으로 자극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분노의 질주 8>의 서사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족애는 사실 부차적 요소다. 곁들여지면 좋지만, 없어도 무방하다. 가족애를 느끼고 싶어서 <분노의 질주>를 관람하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관객 대다수는 경주 액션이 선사하는 욕망의 대리만족을 기대한다.

분노의 질주 8
▲<분노의 질주 8>의 한 장면. 테러리스트들에게 탈취된 핵무기 탑재 군용 잠수함을 불법 스트리트 레이서들이 자동차 경주로 저지한다.
시리즈 제1편에서는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에 열광하는 지역 갱단들 간 갈등 수준으로 진행되던 서사가 제4편(Fast & Furious, 2009)부터는 정부조직과 협력하여 대형 다국적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레이서들의 영웅담으로 발전하기 시작하고, 제8편에서는 아예 테러리스트와 핵무기의 위협에서 세계를 구하는 슈퍼히어로급 스토리로 승화된다.

어차피 달리고 부수는 영화에서 굳이 서사의 개연성을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불법 스트리트 레이서들을 노골적으로 영웅시하는 점은 문제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가치전복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질주 8>에서 안타고니스트 사이퍼(Cipher, Charlize Theron 분)가 도미닉을 협박하고 회유할 때 말한 대사가 결정적인 증거다. "내가 당신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당신은 진정한 무법자야(You're a genuine outlaw). 자신만의 규칙대로 살지(You're a man who lives by his own laws)."

1980-1990년대만 해도 자동차 관련 영화나 시리즈물들은 일정한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고 있었다. <백 투더 퓨쳐>(Back to the Future, 1985-1990) 시리즈나 <폭풍의 질주>(Days of Thunder, 1990), <전격 Z작전>(Knight Riders, 1982-1986) 시리즈로 대표되던 자동차 관련 액션 영화 및 드라마 속에는 불법 스트리트 레이서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적어도 주류 대중문화 차원에서는 그랬다.

분노의 질주 8
▲1980-90년대 주류 대중문화 속 자동차 액션 영화 및 드라마. 이 당시만 해도 아직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에 대한 미화와 같은 포스트모던한 가치전복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2001년 <분노의 질주 1>으로 인해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 발생했다. 유명 불법 스트리트 레이서로서 팀을 이끌고 절도행각을 벌이는 도미닉과 그에게 동화되는 잠입수사관(undercover cop) 브라이언의 이야기는 불법 레이싱에 담겨진 사회부적응자들의 로망 그 자체를 미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물론 도미닉과 주변 등장인물들 모두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개과천선한 영웅의 모습을 덧입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스트리트 레이싱과 연관된 마초적 일탈과 분노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런 윤리적 가치전복은 비단 레이싱 관련 영화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아니다. 범죄물에서는 <한니발>(Hannibal), <덱스터>(Dexter),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시리즈가 연쇄살인범이나 마약상의 삶을 미화하고 있고, 고딕물에서는 <트와일라잇>(Twilight)이나 <트루 블러드>(True Blood) 시리즈가 뱀파이어를 사랑의 대상으로 표현한다.

연애물 방면에서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나 <루킹>(Looking) 시리즈가 자유분방한 섹슈얼리티 및 동성애를 정당화하고 있고, 가족물 사이에서는 <쉐임리스>(Shameless) 같은 드라마가 극도로 황폐화된 가족관계를 희화화하고 있다.

이상 언급한 작품들 속에는 한국의 소위 '막장' 드라마들이 그 앞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경지의 윤리적 가치전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들 모두 기독교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서구의 전통적 윤리를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단순한 액션 영화로 본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는 허망한 자유와 일탈에 대한 메시지는 경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필자가 직접 시험해 본 바에 따르면, 자동차에 대한 미국적 환상들을 제거하고 본 <분노의 질주 8>은 그 속에 수록된 액션 장면들의 극단적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무모한 남성성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일탈의 자유에 대한 환상을 배제하여 보라. 영화의 흥취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다. 이는 이 영화가 우리들에게 비기독교적 서브컬쳐의 로망을 미화해서 전파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계속>

분노의 질주 8
▲볼거리는 화려하나 메시지는 혼잡한 <분노와 질주 8>. 허황된 메시지들을 제거하면 의외로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의미로든 자기 삶에 연관된 모든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재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격식 없이 조합하여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일을 브리콜라주라고 한다. 이 기법은 오늘날 광고나 뮤직비디오, 조형예술, 팝아트(pop art) 등에 자주 동원되며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된다.

오늘날의 영화는 삶의 모든 관심사들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조합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안에는 기독교인들이 환영할 만한 요소와 불편해할 만한 요소들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본 칼럼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영화들 속에 뒤섞여있는 아이디어들을 헤아려 보고, 이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