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연세대 이사회의 결정을 규탄하며 대책위 관계자들이 연세대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던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연세대 이사회 결의 무효’ 소송 1심 재판에서 패소한 ‘연세대 사유화 저지 기독교대책위원회’(위원장 손달익 목사, 이하 대책위)가 항소를 결정하면서 ‘연세대 사태’가 장기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대책위는 향후 벌어질 재판에서 연세대가 ‘기독교학교’임을 집중 조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약 1년 간 지속돼 온 ‘연세대 사태’는, 대책위의 이 같은 말처럼, 사실 학교의 정체성 문제였다. 故 언더우드 선교사가 ‘기독교적 가치관’에 따라 세운 학교가 바로 연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난 2011년 말 기독교계 파송 이사를 제한한 연세대 이사회(이사장 방우영)의 정관 개정은 학교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대책위는 판단하고 있다.

정작 학교는 ‘조용’

그런데 문제는 학교측의 손을 들어준 지난 1심 재판부도 그렇지만, 많은 연세대 구성원들이 이 일에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이사회 편에 서 있다는 점이다. 문제가 불거지고 지금까지 학내에서 기독교계의 입장에 힘을 실어준 목소리는 거의 나온 바가 없다. 물론 교수들은 이사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섣불리 나설 수 없는 게 사실이지만, 단순히 그 때문이라고 하기엔 지금 학교는 이 문제에 너무 조용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이사회가 기독교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잘은 모른다.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대원 학생은 되레 “이사회가 잘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기독교인 이사들이 학교 발전에 별로 공헌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사회, ‘신뢰’ 잃었나

왜일까. 여러 원인 중 ‘신뢰성’ 문제가 가장 많이 꼽히고 있다.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인 양혁승 교수(경영학과)는 이 문제가 대두된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몇 해 전 교수평의회가 학교의 발전 방안에 대해 TF팀을 구성해 연구한 바 있다”며 “당시 연구 중 이사회가 대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냈고, 그 연장선에서 교계의 대표성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독교인 이사들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세대 이사회의 특수성을 들어 학내 분위기를 설명하는 이도 있었다. 연세대 한 교수는 “대개 대학 이사는 발전기금 등 학교의 재정적 기여도에 따라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연세대는 과거부터 목회자들이 이사를 맡아온 터라, 이들의 재정적 기여는 그리 크지 못했다. 결국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이사직을 단순 ‘완장’ 정도로 생각한 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결국 ‘무혈입성’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사회 자체가 제 기능을 잃었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사회에 대한 ‘무관심’ 내지 기독교인 이사들을 향한 일종의 ‘저항’으로 발전했다는 분석이다. 양혁승 교수평의회 의장은 “기독교계가 양보다 질을 생각할 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가 주장하고 있는 “방우영 이사장의 학교 사유화 음모”에 대해서도 학교 구성원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이다. 연세대 한 교수는 “연세대가 이사장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작은 학교가 아니다”며 “지금 이사장의 나이가 많아 얼마나 오래 그가 이사장에 있을 지도 미지수인 상황에서, 학교 사유화 주장은 좀 극단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태 해결 쉽지 않을 듯

대책위 역시 그들과 연세대 구성원들 사이의 이런 ‘온도차’를 직시하고 있다. 그래서 대책위는 이사회와 법정 공방을 벌이는 한편, 기도회 개최나 홍보물 제작 등 각종 방법을 동원해 ‘연세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보다 더 집중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 교계 관계자는 “지금 대책위는 그들을 기독교계로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기독교 내에서도 이 문제는 크게 이슈화 되지 못하고 있다. 참여하는 교단들도 많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까지 얻어내는 일은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고 다소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