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화 목사. ⓒ이대웅 기자
1973년부터 대학생 복음사역과 세계복음화를 위해 활동하면서 미래로교회를 개척, 22년간 담임목사로 섬겨왔으며, 국제대학선교협의회(CMI) 공동대표를 역임했던 이진화 목사가 지난 3일 은퇴했다.

이 목사는 예배 후 인터뷰에서 “이제 선교사들을 돌아보면서 선교를 좀더 활성화시키고, 선교사님들을 신앙적으로나 실제적인 부분에서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부산 지역에서 캠퍼스 사역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했고, 이들은 아르헨티나와 도미니카, 멕시코와 미국, 독일과 X국 등 12개국에 57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 목사가 세운 미래로교회는 이들을 후원하는 선교의 전진기지 역할도 수행해 왔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한인교회들과 협력해 현지 목회자들의 제자훈련을 언어통역 등으로 돕고 있고, 도미니카에서는 실력이 뛰어나지만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지어 이들을 도우면서 신앙훈련을 받게 하고 있다”며 “도미니카는 특히 시골 학생들이 대도시로 가면서 믿음을 잃어버릴까 염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숙사를 세워주니 지역 목회자들도 좋아하시고, 이들이 장차 나라의 지도자들이 되면 선교에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퇴를 기념해 <신약교회 회복을 꿈꾸며(쿰란)>를 펴내기도 한 이 목사는 “책에서도 밝혔지만 계속해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 신약의 교회가 회복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과 뜻을 이루는 데 쓰임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책에서 이 목사는 ‘신약교회 회복의 꿈’에 대해 “지역교회가 젊은이들을 수용하지 못하던 시절, 하나님은 선교단체들을 통해 캠퍼스 복음운동을 활발히 이루셨다”며 “그러나 우리 모임은 소위 패러처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체 주일예배 및 성례를 집행하면서 교계와 갈등을 빚게 됐고, 진통 끝에 CMI가 만들어져 대부분 지구들이 지역교회로 방향전환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이 목사는 ‘성경적인 교회 공동체 회복’이라는 비전을 갖게 됐고, 그 가운데 2010년 미래로교회를 ‘가정교회’로 전환해 목장 중심 체제로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교회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바로 나 자신이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며 “이게 맞다 싶으면 조급하게 밀어붙이고, 성도들의 밑바닥 정서를 읽고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데 둔감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원로목사 추대예배에서 가족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는 이진화 목사. 이 목사는 이날 초창기 힘든 시간을 견뎌준 가족들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이대웅 기자

캠퍼스 사역에 대해서는 “부산대에서 사역을 시작한 초기 정말 전도가 되지 않았는데, 기도를 많이 하면서부터 역사가 많이 일어났다”며 “저희는 교회 다니는 학생들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전도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는데, 특히 공대생들이 많이 전도가 되고 선교사로 파송되는 경우가 많아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이 목사는 “저희는 캠퍼스 젊은이들에 대한 마음이 많지만, 이들을 변화시켜서 제자로 세우는 일이 갈수록 힘들다”며 “부산의 경우 청년부가 아예 없는 교회들도 생겨나고 있는 등 선교단체와 교회 모두 청년 사역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이단들도 많고 복음에 거부감을 가진 안티기독교인들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청년·대학생들을 감동시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각 영역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일꾼들로 키워내느냐가 숙제”라며 “연구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고, 어떻게든 캠퍼스를 뚫기 위해 교수 연구실 등에서 매주 모임을 갖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진화 목사는 캠퍼스 사역의 길을 가는 후배들을 향해 간곡한 부탁의 말을 남겼다.

“힘들지만, 그래도 어쨌든 해야 안 되겠습니까? 젊은이들이 미래의 희망이고 교회의 허리인데 어쩌든지 캠퍼스에 도전해서 믿음으로 캠퍼스를 정복해야죠. 교회들과 연합도 해야 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젊은이들에 대한 사명과 비전을 가진 목회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