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7-27절 강해

3. 승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히브리서 11장 30절은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즉 승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런데 여기의 믿음은 행함과 함께한 믿음이다. 즉 그들은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두루 다닌 것이다. 그들이 두루 다닌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요 믿음과 순종의 행위이다. 결국 영적 전쟁에서 대적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강력은 말씀에 입각하여 행하는 믿음이다. 성도들이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는 결국 대적을 무너뜨리는 큰 결과를 가져온다.

31절은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한다. 라합이 멸망치 않은 것은 다만 머릿속의 믿음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인한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행한 것이나 정탐꾼을 영접한 것은 다 믿음의 행위다. 결국 승리하게 하고 멸망 가운데 구원받게 하는 믿음은 행함을 수반하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이 산 믿음이다.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말씀을 지키는 것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다고만 하면 구원받을 줄로 아나 그것은 속임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만이 영적인 전투에서나 멸망 가운데서 구원받는 데에 효력을 발한다.

4. 그들은 6일 동안 조용히 여리고를 돌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일곱 번째 돌고서 일제히 외쳤다. 이 조용함이 하나님의 역사의 특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조용히 역사하신다. 그분의 예정하심, 창조, 부르심, 구속, 거듭남, 성장, 성숙,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 등 중요한 경륜적인 역사가 모두 조용한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5. 여리고성에 들어가서

그 도시와 그 도시 안의 모든 것이 여호와께 체렘(cherem), 즉 아주 바친 것이 된다(레 27:28-29). 이는 그 성이 가나안 땅의 첫 성이므로 그 처음 열매를 바치는 것이라 보는 견해가 있다(Calvin, M, Henry). 어쨌든 그 성의 전투에서 사람이 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으니 그분의 것을 그분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이 그 수확물을 자신의 것인양 주장하는 것은 위법이다. 오늘날 믿는 이들이나 사역자들이 이 점을 소홀히 하여 주님의 것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취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이다.

6.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시편 2편 12절은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라고 한다. 라합은 이스라엘에게 보여준 친절로써 그녀의 집을 멸망하는 이웃에게서 분별시켰다. 오늘날 신약의 때에 그 아들에게 입맞추는 자들이 진노하심에서 구원된다. 그 아들과의 관계가 관건이다.

7. 믿음이란 결국…

25절에서는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라고 한다. 이는 이방 여인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받아들여졌음을 나타낸다. 그녀는 결국 다윗의 조상이 되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족보에 올라가는 영예를 얻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이란 결국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어떤가에 의해 판가름되는 것임을 보며 그 믿음이 결국은 그녀의 신분을 놀랍게 바꾸는 결과를 가져다준 것을 보여준다. 시편 87편 6절은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라고 한다. 장래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분 앞에는 각각 다른 수많은 민족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등록되며 자기들도 시온에서 났다고 외칠 것이다.

8. 저주받은 여리고

여리고는 영원히 저주를 받은 도시가 되었다. 이 후 어느 때든지 이 성을 건축하려고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가나안 족속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을 철저히 심판하신다. 저주의 내용은 그 성을 건축하는 자는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고 성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는다고 하였는데, 아합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이 맹세대로 두 아들을 잃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엄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 맹세 후 500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씀의 효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것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한 가운데서 구원된 라합과 그의 가정은 온전히 믿음으로 말미암았으니 믿음이란 실로 귀한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헐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 당시 어떤 유대교의 교사들은 하나님이 십자가로 헐어버린 것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그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갈 1:9). 그들은 하나님이 이미 한 편으로 제쳐놓고 헐어버린 것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은 고의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무지함으로 이미 헐어버렸던 율법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도 율법 아래 두고 성도들에게도 교묘하게 은혜를 가장한 율법의 올무를 놓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로 위험천만의 일로서 저주를 예고한다.

9. 약속의 성취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짐은 1장의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5-7절).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요단 강 도하 사건과 여리고 전쟁 승리를 통하여 그의 명성이 온 땅에 퍼지게 하셨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