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충성심을 지키는 사람들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난폭하게 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요구에 맞추며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어머니, 그리고 그 밑에서 자란 자녀가 있다. 그 자녀는 자신의 아버지 같은 아버지, 혹은 남편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희생당한 어머니 같은 어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맞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런데 상황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 간다. 배우자와 자녀에게 서슴없이 비난을 퍼붓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새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자신이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던, 아버지를 본다. 혹은 그 반대편에서, 가족들의 비위를 맞추려 늘 초조하고, 가족들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희생을 자처하는 내 안에 어느새 숨어 들어와 있는 엄마와 마주친다.


왜 나의 의도와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왜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 것일까? 성경에서는 가계를 통해 부모의 죄가 자녀, 후손에게 유전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개인에 대한 축복으로 그치지 않는 것처럼, 악행에 따른 보응도 개인에 대한 처벌로 중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죄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현대사회의 윤리관에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개인의 죄가 그의 가정,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하고있다.


출34:7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민14: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부모 세대의 문제행동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가족치료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존주의 입장에서 개인심리와 가족관계를 연구한 이반 보스조르메니 나쥐(Ivan Boszormenyi-Nagy)는 맥락, 유산, 회전판 등의 개념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였다.


맥락은 존재들의 질서를 의미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맥락에서 제시하는 일정한 질서에 따라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유산이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대화를 통해서 물려받게 되는 명령을 뜻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갖는 기대들은 심리적 유산이 된다. 여기에는 자녀들이 부모의 잘못된 기대로 인해 떠안게 되는 빚인 부정 명령과 부모의 올바른 기대와 보살핌을 통한 긍정 명령이 있으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러한 유산들은 다음 세대를 돌보는 방식을 결정짓게 된다. 개인은 이렇게 부모세대로 부터 물려받은 맥락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게 된다. 회전판(revolving slate)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일정하게 계속해서 반복하는 행동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이혼, 성적 일탈행위 등 무수히 많은 회전판의 행동들이 존재하며, 다음 세대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는 원가족과의 관계에 의해 적절하지 않은 맥락을 형성하게 된다. 그로인해 부모 세대에서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를 자녀가 떠안게 되는 것이다.


◆조건을 요구하는 사람들
토니 험프리스 (Tony Humphreys)는 이러한 가족의 문제를 부모의 정서적인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의 측면에서 살핀다. 그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부모의 영향으로 부터 철저히 벗어나야하며, 자신에 대한 건강한 자아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문제를 부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다짐을 하고, 그 문제와 관련된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행으로 뒤틀린 가족상의 전형은 바로 가족이라는 관계를 인정해주는 대가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의 사랑은 ‘조건적’이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자리를 인정받고, 가족으로서 사랑받으려면 일정한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물론 그 조건을 정하는 사람은 대개 부모다. (토니 험프리스, 가족심리학, LEAVING THE NEST :What Families Are All About, 다산초당)  가족들에게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는 부모나 배우자들이 있다.

부모의 경우, 자녀에게 ‘부모의 말에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자녀가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바른 일이다. 그런데 만약, ‘내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너는 내 자녀가 아니다’라는 사고가 깔려있다면 어떨까? 부모가 자녀에게 요구하는 조건들 가운데는 이러한 요소를 지닌 것들이 있다. 공부를 잘해야, 사랑한다거나, 착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명령을 통해 자녀에게 조건적인 사랑만 베푼다. 그로인해 자녀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아이가 될지 몰라도, 자신의 개성과 독립성을 상실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조건을 배우자에게 요구하기도한다. 이들은 배우자의 필요와 욕구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며, 배우자에게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줄 것을 요구한다.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강압적인 태도로 배우자를 지배하려 들고, 자신의 감정과 뜻에 따라 배우자를 움직이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우자가 취하는 방법은 가정을 버리거나, 자신의 정서와 존재를 희생한 채 배우자의 요구에 맞춰살아가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며, 자기 자신은 전혀 돌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욕구를 우선시한다.


그런데 이러한 헌신과 희생 속에는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함과 희생을 통해 사랑을 받고자하는 조건이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기적인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희생에 따른 대가를 무의식 중에 가족들에게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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