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대강대강 사시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목회를 진실하고 철저하게 하는 제자 한 사람이 나에게 충고의 말 한 마디를 해 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대뜸 “대강대강 목회하고 대강대강 살라”고 대답했다. 목회를 너무 잘 해도 좋지 않고 설교를 너무 잘 해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양심적으로 철저하게 법을 집행하며 책임 있게 살아가는 검사 한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무 철저하게 너무 완벽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대강대강 사시오.” 그 검사는 내 말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말이 무질서하게 되는 대로 살라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기가 정해 놓은 기준이나 원리에 따라 너무 철저하고 너무 완벽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부언했다. 그리고 어거스틴과 칼빈이 한 말 한 마디를 소개했다. “철저하게 완전하려고 하는 것은 마귀가 만들어 낸 생각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합동신학교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바르고 철저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가끔 “대강대강 공부하라”는 말을 한다. 공부를 너무 잘 해서 남들보다 좀 똑똑해진다고 해도 결국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는 것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남을 비판만하게 되고 사람들을 섬기는 목회는 잘 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얼마 전 미국에서 목회하는 제자들 20여명과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헤어지기 전에 제자들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해 달라고 했다. 나는 같은 말을 했다. “대강대강 목회하고 대강대강 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말 즉 “대강대강 살라”는 말이 전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장 존경하던 박윤선 목사님도 아마 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윤선 목사님은 한 평생을 철저하고 책임 있게 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은 완전주의나 독선주의를 따르지는 않았고 온유와 겸손을 몸에 지니며 그저 최선을 다하며 한 평생을 사신 분이다.

나는 여전히 “대강대강 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 말의 의미를 굳이 설명하라고 하면 너무 뛰어나게 잘 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최선을 다하며 여유 있고 즐겁게 살라는 말이다. 너무 설교를 잘하고 너무 목회를 잘해서 “성공”하면 오히려 위태로워지고 불행해진다는 말이다. 너무 바른 신학을 많이 해서 너무 바르게 되면 오히려 위태로워지고 불행하게 된다는 말이다. 너무 의인이 되려고 해도 문제라는 말이다. 인간이 이루어 놓은 성취가 아무리 대단해 보일지라도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너무 설교를 잘 하려고도 하지 않고 너무 목회를 잘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많은 여유와 즐거움을 가지고 설교와 목회를 하고 있다. 내가 하는 말에 잘못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 사람의 말에는 언제나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이 같은 말을 하고 싶다. “그저 최선을 다하며 대강대강 삽시다.” (2001.10.10 영국 브리젠드에서)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담임목사, 합신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