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학생 운동의 사회참여

6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는 독재자들에 의하여 유린되고 경제는 부정축재자들에 의해 황폐화 되어가자 에큐메니즘을 지향했던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산하 KSCM과 대학 YWCA와 WMCA를 통합하여 한국기독학생연맹(KSCF)을 결성하였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KSCF는 당시 한국 사회의 혼란한 정치 경제 상황에서 사회구원론과 민중신학에 그 이념적 기조를 두고 한국의 독재정치인들과 부정축재한 경제인들에게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거리로 뛰어나왔다. 그들은 소외당하고 고통 당하는 노동자와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독재정치가들에 대하여 강하게 저항하고 개혁의지를 표출하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왔다. 그 결과 한국기독학생연맹은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독학생연맹은 학원 복음화 운동의 중심과제였던 구령사업보다는 민주화투쟁에 지나친 역점을 두었던 관계로 학원 복음화운동의 본래적 사명으로부터 점차 이탈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기독학생연맹은 정부와 심한 갈등 관계에 있었으며, 나아가서는 기독학생운동의 영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회 청년운동의 영성까지도 저하시키는 부작용도 끼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예수 지키기

7-80년대에 걸쳐 민주화 투쟁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던 KSCF 와는 달리 C.C.C., NAVIGATOR, JOY, YWAM, IVF, UBF, 한사랑선교회 등 복음주의 선교단체들은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하여 저항하며 투쟁하고, 또한 투쟁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가슴아파하던 자들에게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함으로써 개인의 구령에 열정을 쏟아 왔다. 이들의 구령 사업은 8-90년대의 한국교회부흥에 커다란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의 초석이 되었던 한국기독학생의 영성 저하현상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복음주의 학생운동도 그 영성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복음주의 학원복음화운동의 영성이 저하되기 시작한 이유는 "우리가 투쟁하며 피흘리고 있었을 때 너희들은 기도만 하고 있었느냐"라는 사회 구원론자들의 질타에 대한 자성과 무력감에 기인했고, 이러한 자성의 소리와 더불어 90년대 후반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에 낙선운동에 휘말리어 아무런 신념이나 성령님의 인도 없이 이 운동에 뛰어들어 우왕좌왕 했던 나머지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좌표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3. 한국 사회에서의 근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팽배

이러한 기독학생 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이 영성을 잃어가고 있었을 때 한국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팽배와 전자정보의 홍수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가슴속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수 없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되는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됨에 따라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입을 막고 믿지 않는 청소년들의 귀를 막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제훈 목사(중앙대학교안성캠퍼스 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