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선교회를 창립하고 지금까지 선교와 재활복지에 애쓰는 홍 이석 목사
▲동료들과 함께 포즈를 취해 보았다

"오랫동안 휠체어에 앉아서 일을 하다보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 지도 모르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다. 한참이나 계속되는 그 통증은 결국 내게서 미소를 빼앗아 간다. 오늘의 삶을 감사하게 여기며 환경에 속박 당하지 않고 긍적적으로 살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은 어찌해볼 길이 없다. 그리고 뒤척이다가 잠에서 깨었을 때 침대에 놓여 있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왜 그렇게 무거운지...그 묵직한 짓눌림은 결코 반가운 느낌이 아니다." 월간『수레바퀴』에서


언젠가 길을 가다 횡단보도를 건너 인도로 진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휠체어 이용자를 본 적이 있다. 그의 바퀴는 있는 힘을 다하며 기를 쓰고 오르려 하지만 힘에 부쳐 보였다. 결국은 다시 미끄러지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시도해보고 또 해보아도 인도의 높은 턱은 장애인들을 향한 비장애인들의 시선 만큼이나 높게 보였다. 휠체어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틀어도 보면서 잰걸음 치듯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보지만 넘을 듯 말 듯한 지점에서 꼭 힘이 모자란다. 누구에게 도움을 부탁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면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 한 동안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도전한다. 치열한 몇 초간의 힘 겨루기를 끝내고야 간신히 도보에 안착. 휴하고 숨을 내 뱉는다.

외출을 하면 하루에도 몇 십 번을 도로의 높은 턱과 정비되지 않은 보도와 실갱이를 하는 그들. 그리고 더욱 버거운 상대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이것은 자주 이들을 내리 누르는 돌덩이가 되기도 한다. 외출은 이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진절이 쳐지는 설움이 되었다. 다시는 나가지 않으리라. 집구석에 꼭 쳐박힌 그런 삶을 살아가야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누군가 등에 대고 외치는 것 같다. 외출. 이제는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사장시켜야하는 단어가 되버렸다.

비장애인으로 생활을 하다가 한 순간의 사고와 질병으로 인해 척수손상을 입게 된 사람들은 신체적 마비로 인해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회복될 수 없는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척수를 다친 후 그 전에 아무런 문제없이 쉽게 해오던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조깅을 하고, 토요일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손을 잡고 뒷산을 걸어 오르는 행복한 시간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 발을 엇갈려 꼬고 앉을 수도 없고 층계를 뛰어 오를 수도 없으며 대소변을 남들처럼 쉽게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옆에서 누구 한 사람이 도와 주지 않으면 생활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이 땅의 척수장애인들은 이와같은 애환, 좌절, 슬픔 그리고 비통속에서 남은 여생을 맞게 된다. 장애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기대와 욕구로 현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이들은 삶을 비관하여 더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토하는 치열한 사람들이 있다. 정상인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새로운 삶을 다시 살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재활의 꿈을 이루려고 하는 많은 척수장애인들의 소망을 지켜주고자 하는 현장이 있다. 7만 척수장애인을 위해 오늘도 하루 하루 열심히 복음을 전도하고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한국척수장애인수레바퀴선교회의 회장 홍이석 목사를 만나 보았다.

홍 목사는 지난 89년 8월에 교통사고로 경추 6,7번을 다쳐 물건을 손으로 잡기가 힘든 전신마비 1급 장애로 판명되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 그의 겉모습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다른 척수손상인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제는 휠체어가 그의 인생의 새로운 동반자가 되고 발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전의 많은 것들이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고통과 좌절을 극복한 뒤의 기쁨이 충만했다.

82년부터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6년동안 교육 목회자로 헌신하고 88년에는 목동의 목산침례교회를 개척하여 약 1년 반 정도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다. 그런 그에게 불의의 교통사고는 수십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생활 패턴을 한꺼번에 뒤엎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저는 곧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많은 친구들, 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까요. 나는 곧 퇴원해서 전과 같은 생활을 하리라 기대했습니다. 척수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서 붙으면 곧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사고를 당한 후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8개월을 보냈다. 나중에 다시는 걸을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답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깊은 좌절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절망의 심연속으로 빠져들기도 하였다.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은 허탈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지금의 현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 현실을 외면하고 숨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았다.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의 신체가 더없이 추하게 보였다. 육체적으로 부자유스럽다는 것이 마음의 상처와 절망을 안겨주는 것임을 알게 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 가는 일은 자신이 꿈꾸며 계획했던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쳐버린 지체부자유자들의 고민을 이제는 그가 당사자가 되어 부딪혀야 할 것들이 되었다. 그들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겪게 될 삶의 크고 작은 불편함을 이제는 그도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홍 목사는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기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좌절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이 말씀의 위로와 평강의 하나님을 느끼면서 그는 자유로움과 평화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인간적인 생각으로 대상도 없는 원망도 있었다. 상대가 이렇게 했더라면 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만섞인 생각. 그때 운전을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 사람으로 인해 운전을 해서 사고를 당했다는 생각. 그러나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조금만 주의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며 자신을 궁지로 몰아가며 비관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생각도, 자책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누구때문에 자기에게 이런 시련이 온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 목사는 그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크게 드러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말씀을 통해 위로를 얻고 세상이 주는 편안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평강을 맛보게 되었다고 한다. 말씀가운데 깊은 묵상과 기도로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오히려 건강할 때보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8개월후 집으로 돌아간 그에게 새힘을 주는 일이 또하나 생겼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원장이 찾아온 것이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늘 혼자다니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던 아들이 하루 아침에 몰라보게 유쾌해지고 아이들과 어울리며 잘 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일이 있나 하고 들렸다는 것이다. 홍 목사는 자신이 오고 난 후 아들이 달라졌다는 사실에 자신이란 존재가 아들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의지가 있는지 그때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살게끔 아들이 힘을 주었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아버지라고 절대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아들을 위해서도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살까만 걱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때때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과 가장으로서의 책임의식으로 인해 전보다 훨씬 빨리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선교사역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목사님은 점점더 건강해 보이십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저 자신부터 철저하게 긍적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생활방식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자신이 더 건강하고 활력있게 강의나 설교를 해야지 듣는 사람도 힘을 얻을 수 있잖아요. 홍 목사는 자신이 건강해지는 비결은 모두 자신의 설교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 때문이라며 그분들로 인해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척수장애인수레퀴선교회는 92년에 창립된 후 96년에 지금의 방송회관 건물 뒤 10층 상가의 8층 사무실로 이전하여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세상 틈바구니속에 지쳐서 상처입은 날개의 어린 새처럼 이 땅에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잃고 좌절하던 수많은 척수손상자들의 영혼을 구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수레바퀴의 시작은 이렇다. 처음에 홍이석 목사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다른 척수 손상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각자 작기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사고를 당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했던 이들은 성경을 통해 말씀으로 위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약 8개월동안 예배를 드리고 환자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 재활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며 활동을 했다. 그러나 홍 목사는 개인적으로 척수장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복음을 전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앞으로 이런 분들을 어떻게 구체적이고도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 생각을 하던 중 92년 수레바퀴선교회를 창립하게 되는 결실을 보게 되었다.

"국가나 사회단체에서는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신체적 재활과 생활대책을 위해 의료재활, 직업재활을 실시하고 있지만 척수장애인들은 다른 외부적인 조건들이 주어진다고 해도 내면적인 고통과 좌절감, 소외감으로 인해 상처받은 영혼이 되어 사라지기도 합니다"라고 홍 목사는 말한다. 그래서, 수레바퀴선교회는 이러한 척수장애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이전보다 더욱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고자하여 그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수레바퀴는 우리들이 타고 다니는 휠체어의 바퀴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움직일 수가 없지요. 수레바퀴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매일 같은 모양으로 돕니다. 우리인생도 이 수레바퀴와 매우 흡사하지요. 수레바퀴는 척수장애인들의 삶을 단적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척수 장애인들을 어디든 데려다 줄 수 있는 휠체어의 바퀴처럼 수레바퀴선교회도 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정표적 안내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홍 목사는 수레바퀴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 매년 3,000여명 정도가 척수손상을 입게 된다고 한다. 수레바퀴는 이들을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환우및 가족들을 위로하고 신앙상담및 재활상담을 해주며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있다. 이런일을 하면서 서로의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소식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월간 '수레바퀴'라는 척수손상인을 위한 전문잡지도 만들어 지금은 5000여부를 인쇄하여 전국의 척수손상인들의 삶의 애환과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그외에도 수레바퀴선교회는 그림사랑동우회, 붓사랑동우회, 그리고 휠체어농구단을 창단하여 척수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돕는가하면 척수장애인 문화재(올해 6회)를 매년 개최하여 장애인들의 문화활동을 통한 자아실현과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한 일원임을 인식시키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다.

"장애인 선교라 함은 선교와 재활복지라는 두개의 레일위를 달리는 열차와도 같습니다. 특히 국가와 사회 그 누구도 관심을 갖거나 도와주지도 않는 척수손상장애인들, 이들에게 재활은 생명이며 복지는 생존"이라면서 선교와 복지가 갖는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두가지를 접목해서 조화롭게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복음과 선교에 치중하게 된다면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가 발등에 문제인데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고 복지에 신경을 쓰다보면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선교의 문제가 대두되어 두 가지를 조화롭게 배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척수장애인을 도우며 선교를 하는 일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게 대부분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레바퀴는 외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척수손상인의 내적인 신앙의 회복을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수양회를 통해 주님을 만나 위로를 얻게 하고 선교사역에 동참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정신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경제적인 지원못지 않게 빠뜨릴 수 없는 귀중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홍 목사는 척수장애인들에 대해 일반인들의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한다. "외형적으로 봐서는 장애인이라고 말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정신지체와 뇌성마비와는 달리 이전에 사회생활을 하다가 척수손상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상인보다 못하거나 대화가 안된다는 선입견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외형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단정짓게 되는 현실이지만 크리스천만이라도 그런 선입견을 자제해 달라는 홍 목사는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약해 지고 불편한 상태로 육체의 기능들이 쇠약해지기 마련입니다. 단지 그 시간이 빨리 오는냐 늦게 오느냐 일뿐입니다. 우리도 언제가 몸이 불편하여 휠체어를 의지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서로 따뜻하게 포용해줄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면 지금 이자리에서 나부터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여유있는 마음을 소유하기를 바랬다. 그 여유있는 마음을 소유하여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서로 함께 사는 삶을 만들자고 했다. 이런 세계는 크리스천이 솔선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홍 목사는 말했다.

삶의 언저리에서 허덕이며 자신의 모습과 예전의 모습을 비교하며 가눌수 없는 슬픔에 지쳐 있는 영혼에게 홍 목사는 "장애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도전의 기회"라 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척수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 예로 예전에는 지하철의 전기식 이동장치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운전면허도 이제는 지체부자유에 대한 제한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서 아직까지 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도로여건, 공공건물의 시설 부족 등 관심을 가져줄 곳이 많다. 척수장애인수레바퀴선교회를 나서며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속의 행복한 모습처럼 이땅의 모든 지체부자유자들이 밝게 웃을 수 있는 시절이 멀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