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24장 의부증에 대한 사례와 분석(6)

부부상담에서 의심증이라는 편집증의 문제는 가장 어려운 상담에 해당한다. 편집증은 부부 갈등을 기초로 하면서 대응의 문제, 그리고 심리적 문제 등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부부간 일어나는 편집증 문제가 하나의 행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개인과 가족이라는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 중에서도 실제적이든 그렇지 않든, 부부에 대한 의심증과 깊이 관련돼 있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 상담을 위한 기초

내담자의 문제는 부부관계의 문제이면서도 인간관계의 미성숙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내담자가 심리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들이 대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옛날의 문제와 관련되는 점에서다. 그런 현상은 상대방을 불신하고 증오하고 의존하며, 죄책감과 수치심을 갖는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현상은 내담자가 대개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불편을 겪거나, 스스로 심리적 갈등과 고통을 경험하는 요인들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상담을 위해 기초 사항을 정리해 보자.

1) 내담자의 기본사항

내담자는 40대 중반의 중학교 여교사이다. 내담자는 남편과의 갈등 때문인지는 모르나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담자는 특이하게도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으니 자신에 대해 파헤쳐 보고 싶다고 했다. 이는 다른 내담자들과는 매우 다른 태도이다. 부부상담에서 내담자들은 대개 자신이 잘못을 해 놓고도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담 초기부터 일반적 내담자와 다른 측면을 보인 내담자는, 분석을 받아보고 싶어 상담소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치료받고 싶다고 전화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상담이 시작되면서 자신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노출되자,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한 달 정도만에 치료를 중단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하나의 사례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다.

2)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

내담자는 일반적인 내담자와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의 신상에 대해 잘 말하려 하지 않았다. 치료 초반부터 직업을 그냥 공무원이라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려 했다. 이때 상담자는 직업을 밝히고 싶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고, 내담자는 한 달 후 중학교 교사라고 털어놓았다.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노출을 꺼렸던 것이다. 스스로 상담치료를 받으러 왔지만, 신상에 대해 밝히길 꺼리면서 상담을 하겠다는 의도가 궁금해졌다.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상당한 의심증을 갖고 있음을 짐작했다. 실제로 내담자는 남편 때문에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남편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편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했더니, 결혼 11년쯤 되면서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 이후 남편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고 시부모에게 이혼하겠다고 말했지만, 친정 식구들의 만류로 이혼은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남편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지내고 있었다.

내담자는 남편의 외도 후 정신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진단 결과 구체적인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당시에는 의심증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 측에서는 그녀의 말을 믿고 외도를 한 남편에게 문제를 둔 나머지, 그녀의 심리적 증상을 당연한 것으로 보고 염두에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담자는 남편 때문에 정신병원에 가게 됐다며 남편을 무척이나 원망했다. 그러던 그녀는 교사로 있으면서 동료 교사들의 질투와 시기 때문에 몇 년간 휴직했다가, 복직해 교사로 복무하고 있었다.

3) 내담자의 상담적 문제

내담자의 상담적 문제는 상담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남편의 외도로 심리적 상처를 경험한 그녀는, 누구도 믿지 않으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알아주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담의 문제인데, 상담자나 치료자까지 의심하면 상담이 이뤄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상담을 하러 온 것은 남편의 권유 때문이었다. 내면 깊숙한 곳에 “남자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하는 것 같다.

내담자는 상담자가 남자의 특성을 말하거나 남편의 문제에 대해 강한 분노나 어조를 동반하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그런 눈치를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담자에게 남편의 직업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대답하기 싫어했다. 이후 남편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했을 때, 같은 학교에 근무하다 결혼하게 되었다고만 간단히 답했다. 남편이 학교 교사로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만 했고, 행정 공무원으로 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이때 상담자가 어떻게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행정주사와 결혼하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어색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답했다. 상담 진행은 자신의 내면을 밝히고 마음을 여는 것이라 있는 그대로 말해주어야 상담자가 분석할 수 있다고 했더니, 조금씩 자신의 내면을 털어놓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속을 드러내기 어려워 보였다.

상담자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는 상담자의 대응력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내담자가 의심증을 갖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상담자도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상담에서 가장 어려운 경우이다. 더욱이 내담자처럼 의심증을 수반한 경우에는 참으로 어렵다. 이런 의심증 외에 일반 상담에서도 의도적으로 상담을 회피하려 하면 어쩔 수 없다. 여기에는 우울증을 들 수 있는데, 증상이나 질병에 대한 치료를 싫어하고 우울증의 증상에 안주하려 하거나 숨어서 지내려 하면 동일한 현상이 발생한다. 아마 이들은 상담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발생한 질병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 진단을 위한 기초

상담을 위한 기초사항과 진단을 위한 기초는 성격상 겹치는 부분이 있다. 상담을 위한 기초작업에서는, 대개 내담자의 문제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개인에 관련된 사항을 중심으로 현재의 문제를 주로 기술하는 편이다. 반면 진단을 위한 기초에서는 주로 어린 시절이나 성장과정에서 일어난 문제가 중심이 된다. 부분적으로 어린 시절과 관련해 드러난 현재의 문제를 기술하면서 중첩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서 진단을 위한 기초로 정리하고자 한다.

1) 내담자의 어린 시절

내담자는 언니가 2명, 오빠가 1명 있으며,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내담자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잘 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내담자는 대학 시절 큰 언니가 환각 증세를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언니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실연당한 것 같다고 했지만, 구체적 가족관계는 언급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은 사람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만 이야기했다.

내담자는 대학 때부터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모임이나 선후배 관계가 좋지 않았다. 상담자의 추측으로는 초, 중, 고등학교 때 공부만 열심히 해 동료들과의 관계가 별로 없었다는 것으로 미뤄볼 때, 어린 시절부터 대인관계가 좋지 못한 편이었다. 대학 시절 성적은 좋았던 것 같다. 교사가 되겠다고 자격 과정을 이수했고, 발령받아 첫 학교생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담자는 발령을 받아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된 여자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며 초임지에서 약 9개월 정도 별 문제 없이 잘 보냈다. 그 근무지에서 행정주사로 근무하던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이 학교 행정주사와 결혼하는 비율이 적은 편인 점에서, 특이한 점이다. 행정주사는 행정을 맡은 이로써 교사가 아니고, 교사를 보조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교사들은 행정주사를 자신보다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2)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내담자는 상담과정에서 남편이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작전을 짠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호감이 없었고 아무런 감정이 없었지만, 어느 날 우연히 학교에서 늦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다 행정실에 들렸는데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며 친절하게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어느 날 밤늦게 그 사람과 우연히 교장실에서 관계가 이루어졌고, 이후 그 남자 집에서 동거에 들어가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내담자는 학교 근처에 살던 남편의 집에 동거하면서, 동료 교사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결혼 다음 해에 남편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지만, 동료 교사들과의 갈등은 심해져갔다. 그녀는 교감, 교장 선생님이 자신을 밉게 보고 괴롭히는 것 같았다. 이후 다른 학교로 갔지만, 그 학교에서도 다른 여교사들이 자신의 재산이나 능력을 과시하면서 무시하고 평가절했다고 한다. 이때 그녀는 이런 행동들에 분노했고, 다른 교사들과 관계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은 지방 명문대를 나왔지만, 다른 교사들은 자신보다 낮은 대학을 나와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학교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는 가운데서 아들과 딸이 태어났다. 남편은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양육하게 되었고, 자신은 학교생활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3) 문제가 발생한 동기

내담자는 자녀들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남편에게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것이 좋겠다며 자녀들을 데려와서 같이 살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녀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편이다. 남편은 결혼 후 3-4년이 지날 무렵부터 근무가 끝나면 집에 바로 들어오지 않고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해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주말에는 등산이나 낚시를 했다. 이때 내담자는 남편이 자신을 집에 홀로 남겨두고 언제나 집을 비운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지금도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한 생활을 약 10년 정도 하다, 우연히 남편이 같은 학교의 행정실에 근무하는 여직원과 같이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남편의 자동차로 그 여직원이 함께 타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보게 되면서 남편을 의심하게 되었다.

이때 내담자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확실하게 붙잡기 위해 심부름센터에 용역을 부탁해 뒷조사를 하게 했다. 심부름센터 직원이 남편과 여직원의 사진을 찍어왔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여관이나 모텔에 들어가는 것은 없었고, 그냥 쇼핑을 하거나 차를 같이 타고 다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냥 같은 직원으로써 출퇴근 때 자동차를 태워준 것 뿐이라고 대응했다. 이때 그녀는 여직원을 전화로 불러내 호통을 치고, 남편과 관계를 끊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여직원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액세서리를 선물해 받은 것 뿐이라며 그것을 다시 돌려주었다고 했다.

3. 상담 진행 과정

상담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내담자의 태도를 보면서, 상담자는 조금 더 진실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을 진행하기도 어렵지만, 적어도 내담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인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물론 극심한 편집증 환자에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것은 상담의 금기이다. 그러나 남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려는 태도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이런 점을 고려해 상담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 투사를 인식시키는 문제

내담자에게 투사를 인식시키는 문제란 상당히 어렵다. 본래 투사(投射, projection)란 문제의 원인을 비자기적인 것으로 돌리는 행위, 즉 불쾌한 것을 다른 이에게 전가시키는 태도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자아는 이드(원초아)나 초자아로부터 오는 부담과 압력으로 인해 느끼는 불안을 떨쳐버리기 의해 자기애적으로 반응한다. 마치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거나 용납 및 수용하지 않고 순전히 남 탓으로 돌리는 경우와 같다.

이 투사 현상은 일종의 자기합리화(rationalization)이다. 다시 말해 자아는 초자아가 꺼려하는 일을 타인이나 외부세계에 적절한 구실을 전가시킴으로써 초자아의 금지와 처벌을 모면하는 것이다. 자아는 이렇게 함으로 신경증적 및 도덕적 불안을 벗어나 방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투사는 타인의 문제만 볼 뿐, 자신의 문제는 전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현상이 내담자에게도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다.

실제로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철저하게 숨긴다. 자신의 문제를 수치심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동료 교사들과의 어려움도 자신을 질투하고 지적 능력을 시기해서 괴롭히고 따돌린다고 생각했다. 학생들과의 갈등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수업시간에 한 번도 뜻대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2)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문제

내담자에게 드러나는 증상은 의심증이다. 의심증은 병리학적으로 남편에 대한 편집증(偏執證, paranoia)이며, 의부증이라고 볼 수 있다. 편집증에서는 대개 자신의 문제를 보지 않으려 하고, 그것이 드러난다 해도 인정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내담자에게 바로 그런 증상이 재현됐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작년에는 축구부 학생이 공부시간에 떠드는 것에 분통이 터져 학생을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했는데, 계속 떠들어대자 불러내 이성(理性)을 잃고 따귀를 연속해서 때렸다고 한다. 때문에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자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6개월간 쉬어버렸다.

내담자는 지금까지 3번이나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는다고 핑계를 대려 진단서를 제출했지만, 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진단서에 어떤 병명이 기재됐느냐는 질문에, 첫 병원에서는 ‘정신분열증’으로, 두 번째 정신과 의원에서는 ‘정신증’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답했다.

내담자는 정신분열증은 의사가 오진한 것으로, 자신은 정신분열증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흔히 편집증 환자에게는 자신에 관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과 자신과는 상관 없다는 방식의 분리가 수반된다. 부정(否定, denial)은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이다. 이런 부정이나 부인(否認)은 정신분석학에서 자아가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태도이다.

이런 부정의 문제는 현실에서 거짓말이 가장 흔하지만, 암에 걸렸다는 의사의 진단을 인정하지 않으려 오진이라고 주장하거나, 치료를 거부한 채 전혀 그에 상응한 행동 대신 태연하게 행동하는 것이 그 예이다. 반면 분리(分離, splitting) 또는 격리는 자신을 타인과 다르게 생각하거나 취급하는 현상이다. 여기에는 지나친 이분법적 구분도 해당된다. 자아를 그렇게 구분해 상대방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설득되지 않는 방법을 취하고, 자신은 타인과 다르다는 형태로 생각하거나 취급해야 유리하거나 편리하기 때문이다.

3) 의부증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

앞의 증상으로 보아 내담자는 편집증 중 의부증에 해당하는 증상이 있었다. 그녀의 의부증은 결혼 후 3년이 지나면서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 즈음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고 저녁 10시 이후 들어온다는 것과, 주말에는 낚시 등산 등을 핑계로 한 번도 집에서 같이 지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남편을 의심하게 되었다.

심지어 그녀는 남편과의 결혼도 진정 원해서 아니라, 남편과의 성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담자는 그날 저녁 학교에서 교장실에서 일어났던 일도 남편의 계략이라 믿고 있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사회적 문제들도 발견된다.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 학생들과의 관계 등에서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내담자는 의부증 증세가 상담자에게 알려질 시점에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 내담자는 학창시절 다른 사람들보다 잘 나갔고 항상 앞서 나갔지만 결혼 후 직장 동료들, 남편, 자녀들,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마찰이 끊임없이 계속됐다.

그런 그녀는 자아의 결함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질투하고 시기해서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첫 대상이 남편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결혼 대상자가 아니었던 사람과 우연히 결혼한 것 자체가 남편의 계략에 의한 희생으로 생각했다. 이 증상은 자신의 결함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이 증상이 의부증임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편집증은 치료 과정이 가장 어렵다. 내담자는 자신의 주장만 인정할 것을 요구할 뿐, 상담자조차 의심한다. 실제로 내담자는 정신과 진단서에 ‘정신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상담자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상담자가 ‘의부증’, 즉 편집증임을 느꼈을 때에야, 자신의 문제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해 치료를 중단한 것이다. ‘의부증’은 정신과 전문 용어가 아니기에, 편집증 대신 ‘정신증’을 사용한 것 같다.

내담자는 치료가 한 달로 접어들던 어느 날 상담자에게 전화했다. 정신증은 상담 진행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치료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모든 정신 및 심리적인 치료는 받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동기만 강하면 어떤 증상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내담자는 자신이 의부증임을 알고 있었지만, 상담자에게 숨기려 했다. 그리고 상담자가 눈치를 채고 파헤치려 하자, 치료를 중단했다. 다른 정신장애들은 상담을 진행하면서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가장 효과가 적은 경우가 편집증 환자이다.

의부증이나 의처증은 편집증의 유형이다. 이 증상은 자신만의 집요한 생각과 의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맞추려 하지만, 편집증 환자는 세상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려 한다. 그들은 생각이 고착돼 있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집증의 특징이다. 그러기에 편집증 환자가 상담진행을 받으러 오는 것은 대개 상대의 잘못을 입증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그들은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확인을 상담자에게 받으려 나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상담 치료가 어렵다. 그래서 편집증 치료는 거의 초기 증상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편집증 치료는 상담보다 약물이 더 효과적이다. 상담은 자신의 문제를 내어놓고 치료를 받으려 해야 하는데, 자신의 정당성을 부여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런 감정이 지나치게 강한 정도에선 상담자에게 전이되고 투사된다.

그래서 내담자는 직업을 숨기고 남편의 직업을 숨기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숨기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단점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지 생각하면서, 마음에 공감이 느껴지고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4. 상담의 종결

상담이 언제나 정상적으로 종결되지는 아니다. 때로 예기치 않게 종결될 수 있다. 이 내담자의 경우가 그러했다. 내담자는 편집증으로 치료가 어려운 환자였다. 편집증 환자들이 상담과 정신과 치료에 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편집증 환자는 자신의 생각의 틀 속에 갇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피드백을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상담자의 분석에 겁을 집어먹고, 자아를 숨겨버린다. 이를 두고, 그들이 철저하게 ‘갑옷으로 무장한 자아 보호의 방어 속으로 꼬리를 감추어 버린다’고 표현한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의부증’임을 암시하자, 그녀의 마음에서 치료의 확신이 감소해 갔다. 이로 인해 그녀는 상담자로부터 희망을 잃게 되자 치료를 중단한 것이다. 이처럼 편집증은 치료의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상담은 대개 어느 정도 진전을 기대하다 도중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신뢰가 결여된 사람은 타인도 신뢰하지 못한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데도, 전혀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인식하지도 못한다. 어려서 중요한 인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성장한 것이, 지금 과도한 인정을 요구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편집증은 신앙적 치료가 가장 적합할 것이라 생각해 본다. 편집증 자체가 이미 타인에 대하여 ‘신뢰를 잃어버린 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