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아담이 범죄한 후 죄는 인간 본성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롬 3장), 공자나 석가 같은 위인들도 죄에서 면제될 수 없다. 죽은 자도 살리고 신약성경의 절반을 기록한 위대한 사도 바울조차도 죄의 법과 맞서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탄식하는 장면이 나온다(롬 7:24). 이 세상에 거대한 죄와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웬이 지은 <죄의 소멸>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한밤중에 도둑이 어느 집에 침입하였다. 도둑이 들어온 것을 알게 된 주인이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도둑은 놀라 산으로 도망을 쳤고, 주인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 도둑을 추적하였다. 도둑은 산속 깊이 숨어서, 횃불을 들고 이리저리 자기를 찾는 집 주인이 돌아갈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집 주인이 돌아가면 반드시 불을 끄고 잠을 잘 것이라는 것을 도둑은 확신했다. 그것도 모르고, 주인은 아무리 찾아봐도 도둑이 안 보이자 도둑이 완전히 도망갔다고 생각하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그때 도둑은 유유히 그 집에 침입하였다. 집 주인은 도둑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도둑은 침입을 위해 잠시 숨어 있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죄를 자꾸 범하게 되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죄에 대한 경계를 늦추기 때문이다. 1, 2번 죄를 이겼다고, 내 속의 죄가 사라졌구나 하며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평생 죄와 맞서 싸우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군대에 가면 유명한 표어가 있다. “전투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죄와의 싸움에서 한번 이겼다고 죄가 멀리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두더지 게임에서 두더지가 한 대 맞을 때는 쏙 들어가지만, 얼마 후 다시 튀어나온다. 그것처럼 죄라는 놈은 잠시 숨어있을 뿐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밖으로 튀어나와 우리를 넘어뜨린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도 죄악된 본성은 결코 안 바뀐다. 그래서 계속 죄와의 싸움이 벌어진다. 죄와 치열하게 싸워 본 사람들은 이 싸움이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안다. 실제로 죽을 때까지 진행된다.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바로 죄와의 싸움인 것이다. 우리 몸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죄는 우리가 육체적으로 죽을 때 비로소 죄의 본성도 소멸이 된다. 아무리 능력이 많고 위대한 사람이라도 죄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 이 땅에 살아 있는 한 죄의 소멸 가능성은 제로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죄는 절대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여리고 성 싸움을 보라.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힘으로 무너뜨리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셨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는 여리고 성과 같이 견고하다. 우리가 절대로 못 이긴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것이 하나님이듯, 우리의 죄를 무너뜨리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죄를 이기는 분은 하나님 한분뿐으로, 죄는 하나님이 정복하시지 우리가 할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여 죽는 날까지 죄와 맞서 싸울 뿐이다. 그러기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영적으로 깨어 항상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