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느낌에는 이름만 기독교
오히려 불교 절에 들어간 느낌
의자 없어 예배드리기 어려워
제단 위 향 피우고 성자 그림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위의 파르테논 신전.
페르시아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스의 크고 작은 도시 150여 곳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기원전 477년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을 맺은 것은 지난 회에 언급했다.

델로스 동맹 참가국들이 공동으로 지출한 금액을 보관하는 금고가 기원전 454년 아테네로 옮겨지자, 아테네는 이 자금 일부를 횡령해 파르테논 신전 건설비의 일부를 충당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고대 그리스 문화의 상징으로서 기원전 432년 완공된 파르테논 신전 건축의 배경에는 이렇게 떳떳하지 못한 배경이 있다. 당시 아테네 정치인들은 델로스 동맹국들의 회비 일부를 횡령해 자기들 주머니를 채우기도 했다.

베뢰아 외항인 디온에서 바울을 태운 배는 남쪽으로 내려와 수니온곶을 지난 뒤 다시 아테네를 향하여 북상하면서, 사로니코스(Saronic)만 안에 있는 살라미스 섬과 에기나(Aegina) 섬을 왼편으로 바라보며 아테네 서남쪽에 있는 외항인 피레우스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아테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본 아테네 시내. 사진 가운데 큰 건물은 복원된 아고라 구내 건물.
테미스토클레스가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피레우스는 오늘날 그리스에서 가장 큰 항구다. 현대 들어 그리스 지도자들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현명한 정책 대신 당장 국민의 인기를 얻어 권력을 유지하려는 포퓰리즘 대중영합 정치로써 나라의 재정을 바닥나게 하였다. 우리나라도 지난 정권은 과거 70여 년에 걸쳐 역대 정권이 만든 나라빚 600조 원을 불과 집권 5년 만에 1천조원으로 만들었고, 통계조차 조작하며 국민을 속였다.

그리스 정부는 국가 재정이 바닥나자 2016년에 중국의 국영회사에 피레우스 항구 운영권을 맡겼다. 덕분에 중국 해군은 이 항구를 지중해에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아, 지중해에서 해상기동 훈련을 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기원전 478년 피레우스와 아테네를 연결하는 도로가 만들어졌고, 연변에는 방어벽이 세워졌다. 그러나 바울이 피레우스에 도착했을 때는 피레우스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특히 기원전 86년 로마 총독 술라는 항구를 파괴했다.

피레우스를 떠난 바울은 아테네에 도착하면서 우선 아테네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을 보았을 것이다. 이 신전은 아테네 시민이 가장 숭배하는 아테나 여신을 경배하기 위해 기원전 447년에서 432년까지 걸쳐 건축됐는데, 뛰어난 설계와 건축양식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1호로 등재돼 있다.

아테네
▲하늘에서 본 사로니코스 만. 인근 피레우스 항구는 사진 오른쪽 아래 방향이고, 아테네는 사진의 동북방향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아테나 여신을 신전에서 경배했을 뿐 아니라 아테나 여신을 위한 축제와 운동경기를 열었고, 전체 시민이 참가하는 시가행진도 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 경사면에는 디오니소스의 야외극장이 있다. 바울이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는 이 건축물 역시 기원전 86년 이미 파괴되고 없었으므로, 아마 수리중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 가서, 아테네 사람들이 여러 신들을 섬기는데 그 가운데에는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쓴 단(壇)도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그는 우주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아테네 사람들에게 설교했다.

기원전 150년 세워진 아고라(Agora)는 당시 시장의 역할뿐 아니라 아테네 정치, 행정, 상업, 그리고 종교의 중심지로서 도서관, 주거지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 시장에서 바울은 유대인을 포함한 아테네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기독교를 전했다. 오늘날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 보면 길고 큰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이 아고라가 있던 곳이고 이 건물은 현대에 들어 복원된 것이다.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
옛날 아고라가 있던 곳에는 11세기 세워진 ‘거룩한 사도들의 교회(The Church of Holy Apostles)’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정교회 교회가 있으므로 필자는 그 안에 들어가 보았다. 필자가 느낀 그리스정교회는 이름만 기독교이지, 그 교회 속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오히려 절에 갔을 때 불교의 느낌이었다.

작은 교회 안에는 교인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다. 사람들이 바닥에 앉는다면 약 30명 정도 들어차 앉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또 불교처럼 제단 위에 향을 피워 놓았고 성자들의 그림을 여기저기 그려놓았다. 그 안에는 기독교의 구원에 관한 살아있는 말씀이 없고 형식적인 예배나 예불 절차가 있는 것이다(필자가 느끼기에는).

바울은 아고라에서 스토아(Stoa) 학파와 에피쿠로스(Epicurea) 학파의 철학자들과 변론했는데, 이때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에 대해 설명했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2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