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영등포 광야교회
일시: 2023년 8월 13일 11시
본문: 신 8:2

기독교학술원 이사장 취임식
▲김명혁 목사. ⓒ크투 DB
광야교회에 꼭 맞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12가지 말씀들 중에서 3번째로 좋아하는 말씀이 신 8:2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12가지 말씀들 중 첫 번째는 시편 23편이고 두 번째는 시편 37편이고 세 번째는 신 8장 2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 읽고 또 읽어도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저의 평생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1. 광야 길을 걷는 나그네와 행인들

첫째로, 신명기 8장 2절 말씀은 인생은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행인들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귀중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

신명기 8장 2절 말씀은 우리 자신들이 광야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1살 때부터 부모님과 고향을 떠난 고아와 나그네로 광야의 길을 걸었는데 제가 광야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로 하여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1살 때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을 때부터 한 평생 광야의 길을 걸은 것이 제가 걸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걷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 너무너무 감사하게 되었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용기를 지니고 달려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명기 8장 2절부터의 말씀들은 어릴 때부터 고향과 부모님을 떠나 고아와 나그네로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저에게 큰 위로와 평안과 감사와 기쁨을 가져다 주는 말씀들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배님들이 모두 나그네와 행인들로 광야의 길을 걸었다고 성경 말씀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즉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두 나그네와 행인들로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모세는 아기 때부터 애굽으로 미디안 광야로 그리고 시내 광야와 느보산으로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유리 방황하는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성도들이 모두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살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 11:13).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집을 떠나 세상에 와서 33년동안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태어나시자마자 애굽으로 피난 가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부친과 집과 직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도 모두 나그네와 행인들로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신약의 성도들을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 같은” 존재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청교도들은 유럽을 떠나서 신대륙에 와서 나그네와 행인들로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리빙스톤과 슈바이처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비롯한 수많은 선교사들도 모두 고국과 고향을 떠나 어디론가 멀리 가서 나그네와 행인들로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 말씀은 인생은 누구나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행인들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2. 가난과 고난과 멸시와 천대와 슬픔과 아픔

둘째로, 신명기 8장 2절 이하의 말씀은 인생은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가난과 고난과 멸시와 천대와 슬픔과 아픔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신 8:2-6).

여기 가난과 고난과 낮춤과 징계와 관련된 단어들이 나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사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광야와 나그네의 길을 걸으면서 가난과 고난과 멸시와 천대와 비방과 원망을 당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신 12:1).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신 14:2).

야곱은 자기의 나그네의 삶이 험악한 삶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사도 바울은 광야와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면서 겪었던 모든 종류의 수고와 고난과 환난과 위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이 주님과 복음을 위해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으시면서 수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 이기풍 목사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모습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13년 동안 제주도 복음화 사역은 수 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고통스러웠습니다. 잠잘 곳도 얻지 못했고 먹을 것도 얻지 못해 때로는 산 기슭에 때로는 바닷가에 때로는 마구간에 쓸어져 기운이 없어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모래사장에 쓰러져 있는 이기풍 목사님을 해녀가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살린 일도 있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너무도 힘이 들고 괴로워서 제주도를 떠나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주도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그 사실을 편지로 써서 인편에 마포삼열 선교사에게 보냈습니다. 두어 달 후 답장이 왔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기풍 목사의 편지를 잘 받았소이다. 그런데 당신이 내 턱을 때린 흉터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으니 이 흉터가 아물 때까지 더욱 분투하시오.” 이기풍 목사님은 그 편지를 받아 읽고 그 자리에 쓰러져 대성통곡하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만주와 평양과 조선 곳곳에서 “예수 천당”을 외치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시다가 순교하신 최봉석 목사님 또는 최권능 목사님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으시면서 수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최봉석 목사님은 넓은 만주 벌판을 10리 20리씩 걸어 다니며 조선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12년 동안 복음을 전한 결과 2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몽둥이와 돌맹이로 맞아서 쓸어지기도 했습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서 “예수님은 누구신가” 찬송을 부르면서 걸어가곤 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때로는 올챙이를 잡아 먹기도 했고, 어떤 때는 소 똥에 들어 있는 콩알을 꺼내어 먹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소 똥에서 익은 콩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힘이 났으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에 데려다 주시옵소서.” 최봉석 목사님은 12년 동안의 만주 전도를 마치고 1926년에 평양으로 돌아와서 평양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양 거리는 최봉석 목사님의 “예수 천당” 소리로 날이 밝게 되었습니다.

최봉석 목사님은 일본의 신사 참배를 앞장서 반대하다 1939년 평양 경찰서에 끌려가 6년 동안 감옥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하루는 형사가 최 목사님을 몽둥이로 때리니까 최 목사님은 매를 맞을 때마다 “예수 천당, 예수 천당” 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형사가 매를 멈추고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물으니까 “내 몸에는 예수가 꽉 차 있어서 나를 때리면 내 몸에서 예수가 나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결국 최권능 목사님께서는 주기철 목사님께서 순교하신 지 3일 후인 1944년 4월 25일 평양에서 순교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신명기 8장 2절 이하의 말씀은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따르고 섬기는 인생은 누구나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가난과 고난과 멸시와 천대와 아픔과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3. 인생에게 매우 유익하고 매우 필요하다

셋째로, 신명기 8장 2절 이하의 말씀은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삶이 인생에게 매우 유익하고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8:7-8 말씀을 읽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신 8:7,8).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시는 목적은 우리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땅 즉 축복의 땅에 이르게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에 이르게도 하시고 아름다운 사역지에 이르게도 하시고 결국 아름다운 하늘 집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녹과 모세와 엘리야는 광야의 길을 걷다가 하늘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세상에서 너무 편안한 부자의 길을 걸어가면 하늘 집으로 올라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성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에게 불편하고 힘들고 괴롭지만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면서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배우게 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게 되고, 돌아갈 하늘 집이 어떤 곳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나그네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나그네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7-19).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광야에서 나그네의 생활을 하면 자신에 대한 집착과 세상에 대한 집착과 가문과 지역과 민족에 대한 집착에서 좀 벗어나게 됩니다. 광야에서 나그네의 생활을 하면 지구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도 있게 됩니다.

광야에서 나그네의 생활을 하면 재물과 명예에 대한 집착에서 좀 벗어나게도 됩니다. 광야에서 나그네의 생활을 하면 마음이 좀 넓어지게도 되고 좀 가벼워지게도 되고 좀 여유롭게도 되고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게도 됩니다.

저는 인생은 나그네와 만남이란 말을 자주 하는데, 나그네 인생의 만남에서 모든 좋은 일들이 만들어집니다. 사실 나그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만남과 사람들 만남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가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나게 되었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친밀하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그네 인생의 만남에서 모든 좋은 일들이 만들어집니다. 생명도 행복도 기쁨도 희망도 모두 하나님 만남과 사람들 만남에서 만들어집니다. 우리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만나고 형제 자매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부부를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만남에서 모든 좋은 일들이 만들어집니다.

우리 나그네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나그네들의 만남의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광야와 같다고 묘사하면서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만남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와 같은 세상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람들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광야를 걸어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만남과 사람들 만남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마 부모님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교회에서 저를 가르쳐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때에는 안주와 신의주에서 살았는데 일본 신사에 절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반대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자주 야단을 맞았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때에는 평양에서 살았는데 공산당 정부가 일요일 날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학교에 오도록 명령을 했지만 저는 일요일 날 학교에 가지 않고 교회에 갔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하나님께 바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곤 했고 때로는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새벽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부모님을 만나고 믿음과 사랑의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만난 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모릅니다.

결국 저는 11살 때 주일을 성수하며 하나님께 바로 예배 드리기 위해서 부모님과 동생들과 고향을 떠나 38선을 뛰어 넘어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평생 고아와 나그네로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양을 떠나 해주에 와서 하룻밤을 지낸 후 어른들 몇 사람들과 함께 38선을 넘게 되었습니다. 캄캄한 밤 중에 38선을 넘다가 인민군에서 발각되었습니다. 모두 손을 들고 서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손을 들고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서 남쪽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3,40여분 동안 언덕을 넘고 파 밭을 달리고 목에까지 차는 강을 건너서 무사히 남쪽으로 왔습니다. 그 때 저에게는 무서움이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바로 섬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힘을 다해서 뛰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약간의 스릴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38선을 넘은 사건은 저의 삶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평생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넘고 또 넘었습니다.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무서움이나 두려움이 없이 여러 종류의 장애물들을 넘고 또 넘었습니다. 저는 오랜 후에 신 8:2을 읽으면서 38선을 혼자 넘은 것이 내가 넘은 것이 아니었고 한 평생 여러 가지 장애물들은 넘은 것이 내가 넘은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넘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광야의 길을 걷게도 하셨고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넘게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고 신 8:2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3년 동안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했는데 그 때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석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저는 3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너무나 깊은 감동과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금요일 밤에는 철야기도를 하고 토요일 새벽마다 안수기도를 받곤 했습니다.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이 기도 제목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나중에는 저를 알아보시고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으시고 좋은 목사님이 되도록 기도를 해 주시곤 했습니다.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행인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은 하나님 만남과 하나님의 종들 만남인데 중학생 시절에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이성봉 목사님과 같은 귀중한 하나님의 종을 만나게 해주셨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서울에서 한국교회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을 만나서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와 대창교회를 다녔는데 얼마나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인도하시던 새벽기도와 금식기도와 산 기도와 부흥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의 기도와 설교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제가 서울고등학교 3학년일 때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벌판에 나가서 찬송을 부르고 전도하면서 개척교회를 세워서 2년 동안 개척 목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 60여명 어른들 40여명이 모이는 개척교회를 목회했습니다.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행인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은 하나님 만남과 하나님의 종들 만남인데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김치선 목사님과 같은 귀중한 하나님의 종을 만나게 해주셨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서울 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유학을 했고 귀국해서 평생 목회와 교수와 선교 사역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고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게 되었는데 얼마나 귀중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아프리카와 방글라데시와 북한과 중국 연변 지역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과 필리핀 등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은퇴 후에는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일마다 찾아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석 달에 한 번씩은 선교지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제가 이렇게 믿음의 길과 사랑의 길과 도움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축복 때문이고 둘째는 부모님과 신앙의 선배님들의 가르침과 사랑과 기도 때문이지만 셋째로 부족한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고향을 떠난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어온 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하나님 여호와께서 부족한 저로 하여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4. 아픔은 나중에 보석이 된다

끝으로, 한 말씀 간단하게 더 드리려고 합니다.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어가면서 당하는 슬픔과 아픔이 나중에 “보석”이 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11살 때부터 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한 평생을 고아로 나그네로 외롭게 산다는 것보다 더 슬프고 더 가슴 아픈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서울에 와서 이모님을 만나 이모님 집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살게 되었는데 처음 몇 년 동안은 어머님과 아버님이 보고 싶어서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제가 가장 사랑하던 총명하고 믿음이 너무 좋던 어린 아들 철원이를 뇌수종 병 때문에 4살 때 먼저 하늘로 떠나 보낸 것보다 더 슬프고 더 가슴 아픈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슬픔과 아픔이 나중에는 “보석”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한 슬픔과 아픔 때문에 첫째로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슬픔과 아픔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하며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한 슬픔과 아픔 때문에 둘째로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하고 동정하며 가까이 가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한 슬픔과 아픔 때문에 셋째로 슬픔과 아픔이 없는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린 아들과 믿음의 선배님들이 먼저 가신 하늘 집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어가면서 당한 슬픔과 아픔이 저의 인생에 “보석”이 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슬픔과 아픔과 고난을 지니고 살아가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는데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가서 극심한 가뭄으로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우물을 15개를 파 주었고, 방글라데시에 가서 안과 진료소를 지어주었고,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학교를 하나 지어주었고, 중국 연변 지역에 가서 불쌍한 조선족 어린이들 160 여명에게 지난 23년 동안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도 되었고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에게 식량과 약품을 보내주게도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지만 부족한 제가 고아와 나그네로 평생 외롭고 슬프고 아픈 광야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그네와 행인으로 광야의 길을 걸어가면서 당하는 슬픔과 아픔이 결국 “보석”이 되고 맙니다.

슬픔과 아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보배로운 삶을 살고 있는 송명희 시인이 오래 전에 저에게 보낸 편지 하나를 소개합니다. “애인 돼 주셔서 감사 드려요. 무슨 인사로 시작해야 할지요, 그저 송구스럽고 감사 드리는 마음입니다. 그동안 제가 외롭고 적적하게 지내다가 목사님의 사랑을 받아서 가슴이 포근해졌습니다. (중략) 외롭고 힘든 시기에 목사님의 다정하신 손길은 목마른 나무에 단비를 주심 같습니다. 목사님과 제 이름이 같은 한 글자 아시지요? 명 자, 우리 애인 맞네요, 공통점이 생겨서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2005.8.21 버니 드림”

광야교회의 임명희 목사님과 정경화 사모님이 보낸 편지 하나만 더 소개합니다. “존경하는 김명혁 목사님과 사모님께! 어렵고 외로운 자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으로 늘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배고픈 자들이 맛있게 기뻐하는 모습으로 먹는 것을 보니 저희도 흐믓합니다. 어려운 자들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의 넉넉함! 존경 받으시기에 알맞은 목사님과 사모님! 오늘도 귀한 발걸음이 헛되지 않고 많은 자들에게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어 다가오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2008.12.1. 광야교회 임명희 정경화 올림”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 세상은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의 길에는 부족한 것도 많고 불편한 것도 많고 위태로운 것도 많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도 많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걸어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만남과 사람들 만남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서 한평생 살았습니다. 수 많은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한평생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저는 또한 저의 도움이 필요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저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저는 조만간 세상에서 저를 가장 사랑하시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리고 제가 너무나 사랑하던 어린 아들 철원이를 천국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와 할 이야기가 너무너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축복이 노숙자와 나그네의 길을 걷고 계시는 광야교회 성도 여러분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12가지 말씀들 중 네 번째로 좋아하는 말씀인 욥 23:10을 읽어드리므로 설교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극도의 고난을 당하던 욥의 고백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