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장 37-38절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세례 요한의 제자를 주님께 양도하는 장면입니다. 세례 요한이 두 제자들을 주님에게 소개합니다. 그동안 자기를 따라 활동하던 안드레와 요한을 주님에게 양도합니다.

자신은 예고편으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면, 이제 본 영화처럼 본격적으로 주님에게 인도한 것입니다. 이때 안드레와 요한은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때 주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먼저 질문하셨습니다. 주님의 처음 질문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무엇을 구하느냐?’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무엇을 찾고 있느냐?

“무엇 때문에 나를 따르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37-38절)”.

주님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두 제자를 소개를 받습니다. 그들은 젊은 안드레와 요한입니다. 그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주님께 찾아왔습니다. 주님을 따르려 한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그들에게 먼저 물으십니다. 그리스 원어의 “티 체네이테?”는 “무엇을 구하느냐?”고 번역됩니다. 영어로는 “What are you looking for?”, “무엇을 찾고 있느냐?”입니다.

주님의 첫 질문에 두 제자들은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하고, 엉겁결에 질문으로 답변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주님을 랍비 정도로 인식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처음 만나서 하는 첫 마디는 매우 본성적인 특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은 대단한 선생으로 알고 따르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대개 사람을 처음 만나서 질문하고 싶어집니다. 궁금해서입니다.

낯선 사람에게 하는 첫 질문에는 숨길 수 없는 무의식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려고 하셨습니다. 이 질문으로 주님은 그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깨우치신 것입니다. 목적을 분명히 해야 따라는 일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어떤 관심을 갖고 있느냐?

“어떤 관심 때문에 나를 따르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37-38절의 그리스 원어 “티 체네이테?”는 “what do you want?”로 번역됩니다. 이는 “너희가 무엇을 원하는가?”, “너희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입니다.

관심(關心)이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신경을 쓰거나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 관심에는 흥미와 호기심도 포함됩니다.

흥미(興味)는 물체, 사건, 과정 등에 이끌리는 정서나 감정입니다. 어떤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흥미가 있는 것을 직업이나 취미로 갖게 된다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드레와 요한은 단순히 관심과 호기심에서 주님을 따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미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주님에 대해 중요한 두 가지를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 이상으로 불타는 눈빛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도 대망하던 구세주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무엇을 구하느냐?”라는 가슴 울렁이는 감동적인 질문을 받고, 평생 간직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으면,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우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주님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를 목적을 일깨우기 위해 질문하셨습니다.

3.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나를 따르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37-38절 그리스 원어의 “티 체네이테?”는 “what do you seek?”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나를 따르려고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람은 어디에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존재가 구분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그 사람이 진로를 결정할 때,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를 질문하라고 합니다. 이 가치에 따라 사람은 많이 변화되기도 합니다.

물질적 가치에 두는 사람은 물질이 우선이 됩니다. 정신적 가치에 두는 사람은 정신적 만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출세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출세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오로지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그야말로 한 번의 삶 즉 일생(一生) 뿐입니다.

그래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는가, 어디에 목적을 두고 사는가?의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디에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 질문을 명확하게 하고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 보니, 방황할 수 있어서입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움켜쥐려는 소유욕, 대장이나 왕초가 되려는 지배욕, 그리고 스타병이라는 명예욕이 우리를 수렁에 빠지도록 유혹합니다.

이것들이 인생의 전부인 줄 착각하면, 인간은 수렁으로 빠지고 맙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목적에 따른 사명감을 갖고 살아야할 이유입니다.

4. 정리

사람은 어디에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존재의 목적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무엇을 구하느냐?”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성실하게 답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찾으며 따르는지에 대해서 물으십니다, 어떤 관심을 갖고 따르는지를 물으십니다, 그리고 어떤 가치를 갖고 따르는지에 대해서 물으십니다. 주님께 모든 가치를 두고 따르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