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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한 농가의 포도나무와 가지. ⓒ픽사베이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한복음 15:1-4)”.

요한복음 15장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성도들을 그 가지에 비유하심으로써 양자 간의 연합을 교훈하셨습니다. 신령한 연합으로 성도들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는 영적 파멸을 당하게 됩니다. 이 비유 후 예수님께서는 장차 제자들에게 임할 세상의 핍박을 예고하십니다.

어떤 학자는 15장 포도나무 비유가 이스라엘 생명의 상징인 황금 포도나무가 장식돼 있는 성소 입구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나무로 택함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과 그를 믿는 믿음으로 자신과 하나 된 제자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열매를 맺는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어떤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그 가지가 줄기에 긴밀하게 밀착돼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쓸모없는 가지는 잘라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열매를 맺음으로 생명 있음이 증명된 가지는 포도밭 주인의 보살핌을 받게 됩니다.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는 가지를 쳐준다는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인 좋지 못한 성품, 욕망, 악한 동기, 나쁜 습관 등을 없앰으로 더욱 거룩하게 하심을 말씀해 줍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것은, 주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생명을 존속시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행위를 통해서만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5절 말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로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은 줄기이고 성도들은 가지가 아니라, 당신은 가지까지 포함한 포도나무 전체라고 말씀하신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가짐은 물론, 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좋은 예로 탕자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과 타국에서 모든 것을 허비하고 탕진해서 돌아온 탕자의 회개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께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예전처럼 아들로서 대우하십니다.

그는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나쁜 놈입니다”라고 깊이 회개해, 아버지의 마음을 얻습니다.

아버지의 품은 곧 줄기입니다. 줄기를 떠나 가지로서 마음껏 세상을 향해 뻗어 보려 했지만, 아버지 품속인 줄기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는 아버지 품을 떠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자녀들이 5명 이상, 11-12명까지 대식구가 한데 어울려 살았지만, 줄기는 분명 아버지였습니다. 경제권도 모두 아버지께서 쥐고 계셨고, 아버지 허락 없이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대식구가 가난하게 살았지만, 정이 많고 예의범절이 훌륭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거짓말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정직했으며,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물건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욕심도 없었던 참 아름다운 시기였습니다.

행여 아버지 없는 자식들은 주위에서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당할까, 혹 아비 없는 자식이라 나쁜 짓 하여 욕되게 하지나 않을까 어머니들은 노심초사하며 ‘사랑의 회초리’로 엄하게 키우셨습니다. 자녀들은 그 교훈에 힘입어 좋은 가지로 자라나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자녀들을 하나둘만 낳고, 교육비 및 사교육비, 집값 핑계로 아예 결혼을 하지 않거나 자녀를 두지 않으려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줄기에서 가지로 뻗어가지 못하고 창조질서를 망가뜨리는 모습에 실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영욕을 위해 고된 어려움을 피해보려는 잘못된 판단으로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리는 수고를 피해보려는 공짜 심리로 물든 요즘 젊은이들과 정치인들의 민낯은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말에 책임은커녕 온갖 꼼수와 사기, 그리고 갖은 불의를 저지르며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죄를 덮고 자신들만의 아성을 세우려는 저 부러진 가지들을 먼저 내쳐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엄한 교육으로 대한민국은 보란 듯이 부흥 발전했습니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났고, 세계 10위 경제권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나라로 변모했지만, 도덕과 윤리, 정직과 공의, 공정과 질서가 무너진 최악의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시절 아버지의 엄한 줄기 속에서 자라난 가지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지금도 애태우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를 의지하고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신다고 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씀이지만, 너무 무서운 말씀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주님, 주님!” 하고 이름을 불렀지만, 주님은 이렇게 살아온 우리를 “모른다”고 외면하실지 모릅니다. 껍데기와 입으로만 살며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는 했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삶을 산다면, 모두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모른다”며 내치실 것입니다.

주님의 몸에서 떨어지면 곧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말라버리듯, 우리 믿음 생활 역시 변질돼 말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왜 그곳에 붙어 있는지, 자신의 신원을 분명히 깨닫지 못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포도나무가 주는 생명력, 그 열매 맺는 힘으로 가지는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도들은 구원의 열매를 맺기 위해 예수님 말씀을 신뢰하고 믿으며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면서, 무사안일로 게으르게 산다면, 그 가지는 마르거나 부러지며 잘려서 불 속에 던져질 것이 너무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전력을 다해 힘쓰며 살아갈 때, 구하고자 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기도의 기초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바라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바와 일치합니다. 가지가 줄기에 의지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기도 역시 그리스도에 대한 의존의 표시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수액을 먹으며 하나 되듯, 신앙인들이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기도로 하나 되어 주님께 바짝 붙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만나 힘을 얻고, 생명을 얻으며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로 주님께 붙어 있다면 우리는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고,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입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그분으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합한 자로 믿음 생활을 하게 된다면, 만사가 형통하게 됨을 의심치 말고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언 18:2, 8)”.

2절처럼 미련한 사람에게 있어 두 가지 문제는 닫힌 마음과 열린 입입니다. 미련한 자는 타인의 충고를 꺼리지만, 자신의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수용하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어리석은 말뿐입니다.

8절은 험담을 듣는 것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음식이 뱃속에서 소화되고 체내에 흡수되는 것처럼, 험담은 기억에 남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세상 어떤 말이나 행동에 이리저리 요동하지 않고 줄기가 바라고 원하는 뜻을 잘 이해하며, 그 목적을 따라 준행하는 충실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가지는 예수님의 품을 떠나지 말 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가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며,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는 아름다운 성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