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승 달꿈예술학교
▲카페에서 ‘알바’하고 있는 류한승 목사.
1.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두 주간 사랑의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랑의 편지(러브레터)라고 해놓고, 때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멈춤이 필요했습니다.

잠시 멈춰서서 바라볼 필요는 글이건, 말이건, 행동이건, 생각이건 언제나 필요합니다. 사랑이라 한들 다를 리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한 명이라도 편지를 기다리셨던 분이 있다면,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2. 저는 대구재활과학대학원에서 심리치료를 공부했습니다. 서울에서 사역하면서 대구를 오가는 결정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시작부터 은혜가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대구에 처음 내려가기 한 주 전 이런 기도제목을 교회에서 나누었습니다. ‘다른건 없지만 대구에서 믿음의 사람을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3. 수업 첫 주, 첫 시간이 끝나고 나서 일입니다. 인상이 약간 굳은 듯 보이는 한 친구가 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교회 다니세요?”

그렇게 현재 별을 만드는 사람들의 심규보 형제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내내, 규보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4. 공부를 마치고 저는 완전히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고, 규보를 비롯한 동기들과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이후 각자의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규보는 남들이 걷는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에 담긴 많은 아픔과 상처를 오픈하고, 자신의 상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살아갈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이름을 따서 단체 이름을 ‘별을 만드는 사람들’로 정했습니다. 그 이름을 해석하기를 ‘별난 사람이 별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5. 사람들이 보기에 껄끄럽고 상처로 생각된 부분까지도 주님께 드리고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때, 누구도 감당 못하는 주님의 귀한 사역의 도구가 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2년 전, 교회에 먼저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도나무 주일에 초대해 그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처음 달꿈학교를 시작할 때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규보야. 별난 아이라고 생각되는 아이들을 별처럼 빛나도록 만들어주는 별만사나, 깜깜한 밤에 아무것도 못 보고 꿈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달빛을 비춰주고자 하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 달꿈학교나 크게 다르지 않아. 서로 힘내자.”

5. 대구에 자리잡았던 별만사가 이제 확장돼 인천에 지소를 세웠고 저도 그곳 창립식을 다녀왔습니다. 카페 영업을 아예 하지 않고 다녀왔습니다. 지나가는 손님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잠시 멈춰섬은 정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6. 그곳에서 설교하시는 목사님 가장 앞자리에 어떤 덩치 큰 아이가 있었습니다. 말씀에 집중을 하지 못한듯, 아니면 꽤나 피곤해 보인 것인지 모를만큼 고개를 숙인 채 가끔 끄덕이곤 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위기청소년인가보다. 얼마나 말씀이 지루할까, 아이구 수염은 조금 다듬지, 어제 밤에 밤새 당구장을 갔나보다….”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어느덧 목사님의 설교가 끝난 뒤 축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축사를 해주실 목사님을 소개하고 올라오시는데, 가장 위기청소년으로 보였던 그 분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네, 저는 그렇게 외모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7. 그 곳에서 가장 위기청소년처럼 생기신 목사님(죄송합니다)께서 축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보고 특별한 목회한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여러분,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를 아십니까? 배가 침몰하면 사람들은 가라앉지 않은 가장 꼭대기로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그게 침몰 증상입니다.

모 대학교에서 조사한 결과 청년들 중 약 5%가 크리스천이라고 손들었답니다. 청소년 청년 다 마찬가지로 급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얘들이요! 다 어디가는지 아세요? 결국? 다 대형교회 가요. 5%의 아이들이요. 힘들다고 결국 가는 곳이 대형교회에서 분위기 좋은 곳에 취해 예배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곳에 갈 수 없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데리고 목회합니다. 저는 특별한 아이들 데리고 목회하는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애들데리고 목회해요.”

5%가 평범합니까? 그곳에 참여하지 못하는 95%의 아이들이 평범합니까?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듯한 말투였지만, 광야 그 자체의 목소리로 들렸습니다.

8. 저는 좋은 교회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좋은 교회입니다.

좋다고 여겨지는 대학을 보내고 좋다고 평가받는 직장을 보내기 위해, 부모는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좋은 학교를 보낸다면 멀리 지방까지 보내는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방은커녕, 외국을 보내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요.

이른바 퇴직까지 보장된 공무원이 되기 위해, 많은 청년들은 그 귀한 청년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하루 온종일 공부할 뿐 아니라, 2년, 3년, 5년간 공부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닌 것을 학생들 스스로가 깨닫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깨닫고, 직장을 다니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불안해지지만, 이미 침몰한 타이타닉처럼 빠져나갈 공간은 없습니다.

9. 좋은 교회는 대학보다 직장보다 중요합니다. 부모님이 학교에 함께 있지 않다고 학교를 바꾸지 않는 것처럼, 부모님이 안계신다고 교회를 부모 따라 옮기지는 말아야 합니다. 친구랑 다퉜다고 학교를 그만두지 않듯, 좋은 교회는 원수가 있더라도 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각 존재들의 정체성이 다름에도, 좋음의 가치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좋은 학교라면 공부해야 할 목적을 세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니까요.

직장이라면 당연히 돈이 중요할 것이고 권리가 중요하겠지요. 직장은 내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곳이니까요. 집이라면 잠자기 편하고 쾌적한 환경이 중요하지요. 집은 쉼과 혈연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니까요.

10. 문제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한 기준이 마치 좋은 집. 좋은 학교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교육 제도와 시스템. 여러가지 성경공부 등이 원할한 곳이 좋은 교회일 수 없습니다.

큰 공간과 화려한 시설, 풍부한 돈으로 이루어지는 여러가지 사업등이 있다고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쾌적한 카페테리아와 좋은 주차시설과 예배장소가 있다고 괜찮은 교회가 아닙니다.

11. 좋은 교회의 정신은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의 구현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수직적으로 차별이 없어야 하고 수평적으로 연결됨이 있어야 합니다. 즉 목사와 성도 간에 수직적 간격이 옅어져야 합니다.

직분의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없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담임목사님과 성도가 한 번도 대화하지 못했다면, 물음표가 던져져야 합니다.

좋은 교회는 누구라도 들어와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아이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규모가 클수록 좋은 교회가 되기 힘듭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과 규모와 감동이 있다 해도, 죄송한 이야기지만 사실입니다.

12. 규모가 클수록 시스템이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규모가 크면,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은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 힘들다면 위험해진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같은 교회에 다니는 다른 성도의 이름을 모른다면, 그건 필요 없는 숫자입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악수 한 번 못해보고, 이름도 모르고, 그래서 기도도 못할 만큼의 규모라면, 사실 내 만족을 위해 다니는 것은 아닌가 멈춰봐야 합니다.

13. 저는 우리 생명샘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와 성도간의 격차를 거의 없앴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라도 품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별만사’를 다녀오고 과연 그럴까 싶었습니다.

겉모습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삶을 사는 제가 담임인 이곳이, 좋은 교회일까 묻게 됩니다. 위기 청소년이 아니라, 위기 목회자입니다. 위기 목회자가 있는 교회는 역시나 위기 교회입니다.

14. 사랑의 편지를 다시 쓰면서, 사랑을 점검하게 해 주신 여러분들께 오히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오히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의 편지입니다. 진심을 담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류한승 목사(정릉 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