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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픈 사람에게 치료보다 더 큰 위안과 안식은 없을 것이다. 육신의 질병 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질병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낫기를 바라지만 잘 낫지 않는 병들도 있다. 나는 내과의사로 사람의 전신 건강을 상담하는 삶을 살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건강 유지의 비결은 거창한 행위가 아니라 사소한 습관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당뇨 환자 중에는 과체중이나 운동부족, 잦은 외식 등의 생활습관을 가진 경우가 많다. 당뇨의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중감량, 운동, 자연식 식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많은 환자들이 불만족스러운 눈짓을 보인다. 이미 알고 있는 것 말고 뭔가 획기적인 것을 원하는 것이다. 환자들은 마그네슘을 더 챙겨먹어야 하는 게 아닌지,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게 아닌지, 피검사를 또 해봐야 하는 게 아닌지 묻는다. 그럴 때 나의 처방은 이미 관심 밖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고혈압, 치매나 암 등 다양한 질병들의 예방도 마찬가지이다. 환자들에게 방법을 설명하면 이미 알고 있다는 식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매스컴에서는 종종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음식들이 질병의 치료에 효과가 좋다고 방송한다. 이름부터 생소한데 아마존, 인도, 동남아 등 현지에서는 이런 음식을 먹어서 사람들이 건강하다는 식이다. 그런 방송이 나오면 어떤 환자들은 ‘방송을 보았는데, 이 음식 먹어도 되냐’고 묻기도 한다. 시청률 상승을 위해 새로운 것을 방송해야 하는 방송국의 사정도 있겠으나, 마치 그러한 음식을 먹으면 병이 싹 다 나을 것처럼 편집된 내용은 우리가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의사가 다 이야기를 한 것이다. 건강의 비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

열왕기하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나온다. 그는 나병에 걸렸다. 당시에는 불치병에 가까웠던 전염병인 나병에 걸렸으니 그의 사회적 생활은 모두 끝나 버린 것이다. 사람도 만날 수도 없고 사람들 앞에 설 수도 없고 외모도 추악해 졌을 것이다. 이같은 상황 속에 그의 지위와 명예와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치유였을 것이다. 그는 치유를 위해 선지자 엘리사를 찾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요단강에서 일곱번 씻으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다. 나아만은 화가 나서 돌아갔다. 그런데 그의 종이 의미심장한 조언을 한다. “더 어려운 것을 시켰으면 하셨을 것입니다. 물에 씻는 것은 쉬운 것 아닙니까?”. 나아만은 요단 강에서 씻고 나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 중요한 원리가 있다. 회복은 작은 순종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작은 것이, 작은 순종이 중요함을 시사하는 부분들이 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는 말씀이 있다. 작은 것에 순종하는 사람이 큰 것에도 순종하는 법이다. 작은 것에 순종한다는 것이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큰 것을 지킬지도 의문이다.

흡연자들이 비흡연자에 비해 더 많은 건강기능식품을 복용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건강을 악화시키는 흡연에 대한 처방인 금연은 뒤로 하고, 영양제를 복용하면서 건강을 보상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단코 그렇게 한다고 하여 건강이 유지되지 않는다. 해답은 간단한데 멀리서 어려운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신앙에서도 비슷한 경우들이 있다. 영혼의 병을 치유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성경을 보는 것, 기도를 하는 것, 주일 성수를 잘 하는 것과 같은 방법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방법을 시도하기 보다는 신학공부, 세미나, 비전트립 또는 성지순례 등 거창한 방법으로 신앙의 회복을 꿈꾼다. 이런 방법들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회복의 완성은 아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마치 영양제 같은 것으로, 일시적 회복에 큰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근본적인 처방은 일상적인 습관이다. 예전에 어떤 신학교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감명깊게 신앙에 대해 강의를 잘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믿음이 없어서 고민을 한다고. 성경책을 품에 끼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신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을 잃어버릴 것 같다고 하셨다고 한다. 많은 신학적 지식을 접하는 것이 꼭 신앙에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게 해 주는 사례이다.

예전에 어떤 전도사님이 새신자에게 성경을 가르치는데,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가르치셨다. 내가 그 사람이라도 지겨울 거 같은데 왜 같은 것만 가르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분은 이해를 못하니까 계속 가르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그 때 나는 성경 말씀대로 실제로 살아야 성경을 진정 이해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변화될 때까지 그 부분을 반복해서 가르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계속 같은 것을 반복하면 지겨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교만함 때문에 순종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소한 것에 대한 순종이 필요한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성경은 사소한 것에 대한 순종을 중요시 한다. 만약 여호수가아 여리고성을 6바퀴 돌고 그만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을 때, 만약 종들이 채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소한 것에 순종할 때 기적은 일어난다. 이것은 육신에도, 영혼에도 모두 적용되는 중요한 원칙이다.

신명기 30장 11-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명령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의 옆에 있다. 멀리서 찾지 말라. 네가 이것들을 충분히 행할 수 있다.’ 인간은 육신도 영혼도 병들 수 있는 존재다. 많은 사람들이 육적·영적 건강을 소망한다. 그 비결은 가까운 곳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수정 내과원장 (성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