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3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작품, <어벤져스: 엔드게임>.
죄인의 빚 갚음: 많이 사함받은 자는 많이 사랑한다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에서는 개봉 11일만에 역대 최단 기간 국내 1천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운 화제의 마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 2019)>을 다룹니다.

영화는 아이언맨(토니 스타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 크리스 에반스),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헐크(브루스 배너, 마크 러팔로), 블랙 위도우(나타샤 로마노프, 스칼렛 요한슨), 호크 아이(클린트 바튼, 제레미 레너), 앤트맨(스캇 랭, 폴 러드), 워 머신(제임스 로즈, 돈 치들), 캡틴 마블(캐럴 댄버스, 브리 라슨) 등 슈퍼히어로들이 악당 타노스(조슈 브롤린)와 최종 대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안소니 루소와 조 루소가 메가폰을 잡은 러닝타임 3시간의 이 영화는 ‘엔드게임’이라는 제목답게 마지막 대사와 쿠키영상, 결말과 스포일러 등이 다양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는 다소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 주

한 시대가 저물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주요 인물들의 퇴장

올해의 극장가는 한국 영화의 여전한 흥행부진 가운데 미국발 슈퍼히어로 영화의 초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이런 최근의 추세에 방점을 찍는 작품으로, 지지난주 개봉한 이래 현재까지 전국의 관객들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며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그 제목이 보여주는 대로 하나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즉 MCU는 현재까지 총 세 페이즈(phase, 국면)를 거쳐왔다.

페이즈 1은 아이언맨의 탄생(<아이언맨 1>)으로부터 출발해 어벤져스 결성 단계(<어벤져스 1>)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페이즈 2는 슈퍼히어로 군단인 어벤져스의 외연이 크게 확장되는 단계까지(<아이언맨 3>부터 <앤트맨>까지)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페이즈 3는 확장된 어벤져스 군단의 분열(<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로부터 이 분열 위기를 넘어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범우주적 대적, 타노스와의 마지막 대결 단계(금번 개봉된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의 서사를 전한다.

일전의 평론에서 소개한 바 있듯, MCU는 기획 단계부터 치밀하게 조망된 신화적 세계관과 구성방식을 택해 왔다. 그리고 그 원형은 성경과 함께 서양 문명의 한 뿌리를 이루는 그리스 신화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부터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그리스 신화적 세계관은 이후 걸출한 극작가들에 의해 그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방대한 신화 체계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MCU는 전설적 코믹스 스토리 작가 스탠 리(Stan Lee)가 창조한 몇몇 중심 캐릭터들(스파이더맨, 엑스맨, 아이언맨, 헐크 등)의 이야기를 모으고 연결해, 점차 그 세계관을 전 우주로까지 확장해 나가는 신화적 서사체계를 표방한다.

그리스 신화의 경우 호메로스가 씨앗을 심고 후대 극작가들이 물주어 자라게 했다면, MCU는 스탠 리가 씨앗을 심고 후배 시나리오 작가들과 영화 제작자들이 물을 주어 자라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MCU가 종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MCU의 주축을 이루었던 한 세대가 저무는 것만은 확실하다.

일단 전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재가 되어 사라진 주요 히어로 모두 부활하지만, 정작 MCU 초기부터 활동했던 주요 히어로 셋(블랙 위도우,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은 죽거나 은퇴한다.

이로써 장장 10년에 걸쳐 진행된 MCU의 세 페이즈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주요인물(아마도 캡틴 마블이 아이언맨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됨)들이 주도하는 MCU 페이즈 4가 시작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현재까지 MCU의 서사를 이끌어온 어벤져스 초기 멤버들을 연기한 배우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이처럼 죽음, 은퇴 등 한 세대가 저무는 서사를 담고 있기에, 생각보다 무겁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로부터 살아남은 히어로들이 원한과 고통 속에 사는 모습(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등), 혹은 히어로 역할을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아이언맨, 토르, 헐크)이 영화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이후 사라져 버린 인류의 반을 되살리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블랙 위도우가, 타노스의 음모로 히어로 군단과 타노스 군단의 마지막 전투가 진행되는 장면에서 아이언맨이 희생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일의 뒷마무리를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정에서는 캡틴 아메리카가 히어로 임무를 그만두게 된다.

화려한 CG와 액션보다는 인간적 서사와 내면의 이야기를 전하려 힘쓴 이번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가장 두드러진 등장인물을 선정한다면, 두말할 나위없이 아이언맨과 블랙 위도우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두 사람은 모두 사라진 인류와 동료들의 부활을 위해 자기의 삶과 목숨을 희생한다. 그리고 이런 희생의 스토리는 분명 회심과 속죄(빚갚음)라는 성경적 인간 이해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돌아온 탕자: 아이언맨, 모두를 위한 희생

지난 10여년 간 MCU의 서사를 주도한 인물이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마블은 1990년대 중반 심각한 경영 악화로 주축 캐릭터들의 판권을 다른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에게 매각한 바 있다.

마블 코믹스의 최고 인기 캐릭터였던 스파이더맨의 캐릭터 판권은 소니에게, 스파이더맨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엑스맨 캐릭터의 판권은 20세기폭스에게 넘겼다.

여기에 더해 마블의 경쟁자 DC는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로 인기몰이를 하며 슈퍼히어로 영화에 이정표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인기 캐릭터가 몇 개 남지 않은 상황, 그리고 엑스맨과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영향으로 슈퍼히어로 영화가 개연성과 진중함, 인간적 고뇌의 무게감을 더해가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거세던 상황에서, 마블이 선택한 길은 토니 스타크였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토니 스타크는 코믹스 원작에서든 영화에서든, ‘회심한 방탕아’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캐릭터였다. 원래 그는 ‘죽음의 상인’이라 불리는 천재 무기상이자, 재벌 2세 억만장자이자, 매일밤 여자친구를 갈아치우는 호색한으로서 부도덕하고 방탕한 삶의 표본과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음모에 의해 테러집단에 납치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자신이 만든 무기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과 젊은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심하게 갈등하게 된다. 이로써 그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개발자로 거듭난다.

토니 스타크의 히어로 전환 스토리는 여러 방면에서 성서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방탕한 삶 끝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 자신의 죄악된 과거를 자각하는 모습이 돌아온 아들과 닮아 있다.

이처럼 아이언맨은 작품 속에서 이미 인간적인 매력을 갖춘 캐릭터로 자리잡고 있었다. 마블 엔터테인먼트 사장이자 MCU 프로젝트를 주관한 케빈 파이기(Kevin Feige)는 이 캐릭터에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실제 인생이 돌아온 탕자와 같았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배역을 맡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유명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이미 출중한 연기실력을 갖춘 천재 배우로 주목을 받았지만, 마약 중독 때문에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긴 이력을 갖고 있었다.

배우로서 인기를 얻을만 하면 마약 문제가 발목을 잡아,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2000년대 초 큰 인기를 끈 TV 시리즈 <앨리 맥빌>에서는 주인공 앨리 맥빌(켈리스타 플록하트 분)의 남자친구이자 결혼상대자인 래리 폴로 활발히 연기하다 마약 문제로 배역을 그만두게 되어, 시리즈 전체의 서사를 망친 적도 있었다.

그가 마약을 끊게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어느 날 차에 구매한 마약을 잔뜩 싣고 집으로 향하던 그는 버거킹 치즈버거를 사서 먹다가 햄버거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다 결국 죽음 밖에 남는 것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는 싣고 가던 마약을 전부 버리고 재활 과정을 거치며 연기에 집중하게 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이언맨 1>의 버거킹 치즈버거 장면. 이 장면은 치즈버거 때문에 마약을 끊기로 결심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장면이다.
케빈 파이기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이 연기력 만점의 연기자에게 주목하고 그에게 아이언맨의 배역을 맡겼다.

처음 배역을 맡길 당시, 그의 마약 문제 이력을 들어 주변의 우려가 심했으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맡겨진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의 연기력만 아니라 삶의 이력까지 겹쳐서 그는 완벽한 아이언맨을 재현해 냈다.

이번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가 감당한 희생적인 죽음, 타노스 군단을 물리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장면은 바로 이 모든 과거의 이야기들과 연결되어 죄인의 속죄라는 성경의 테마를 재현한다.

성경에서 예수 앞에 나아오는 죄인들은 모두 과거의 죄를 속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해야 했다. 과거의 습성을 버릴 뿐 아니라, 남은 인생을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낸다.

예수의 제자이자 사도였던 마태나 삭개오 같은 세리 출신들은, 부정하게 얻은 많은 재물을 다 포기하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선택했다.

키에르케고르의 저서들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제목을 가진 글이 있다. ‘적게 사함을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 이 제목은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일화에서 차용된 것(눅 7:47)으로,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옥합을 깨어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긴 것을 보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옮긴 것이다.

많은 죄를 지은 삶, 많은 허물을 가진 삶 자체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삶이더라도 만일 자기의 죄를 절박하고 진지하게 깨닫는다면, 커다란 회심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이 성경 사건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아이언맨의 죽음은 바로 그런 가르침이 극화된 장면이다.

전쟁을, 다른 사람의 죽음을 이익의 재료로 삼던 방탕하고 교만한 무기상인이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동료들과 인류를 구하는 선택을 한다. 그것도 평온한 삶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내건다.

이로써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서사가 전하는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한 축이 완성된다. <계속>

어벤져스: 엔드게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결국 희생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