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손봉호 김상복 이형기
▲(왼쪽부터 순서대로) 손봉호 교수, 김명혁 목사, 김상복 목사, 이형기 교수 ⓒ김진영 기자
김명혁(강변교회 원로)·김상복(할렐루야교회 원로) 목사·손봉호(전 서울대 교수)·이형기(전 장신대 교수)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강변교회에서 '4.19 혁명 후 새 생활운동을 일으킨 주역들'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사상과 생활에 혁명이 일어나야"

먼저 "'새 생활운동'을 돌아보며: 배경과 내용과 열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김명혁 목사는 "새 생활운동은 4.19 학생 의거의 여파로 일어난 운동"이라며 "새 생활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4.19 이후 우리 사회의 정치적, 도덕적 부패와 혼란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과도 정부가 세워졌으나 우리 사회는 정치적, 도덕적인 부패와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며 "바로 그런 상황에서 우리 신앙의 친구들 몇 명이 서울 문리대 한 구석에서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신앙의 동기에서 하나의 새로운 운동을 꿈꾸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와 나라가 바로 되기 위해서는 사상과 생활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정신적, 신앙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에 따르면 손봉호 교수는 새 생활운동의 동기와 진행을 이렇게 기술했다. "4.19 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는데 정치나 사회에는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부패했고 사회는 무질서했다.... 이런 현상을 좌시할 수 없다 하여 기독학생 몇 사람이 '새 생활운동'이란 것을 시작했다. 김명혁, 김상복, 이형기 등이 발기인으로 출발했는데 수 백 명의 학생들이 호응해 주었다."

김 목사는 "우리 몇 사람들이 소박하게, 그러나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시작했던 새 생활운동이 전국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우리 자신들에게도 한 평생 우리들의 삶과 사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박정희 정권의 새 마을운동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개인 윤리 넘어 사회 구조와 원리 바꾸는"

이어 이형기 교수에 따르면 당시 새 생활운동의 구체적 내용은 주로 △양담배와 △댄스 △그리고 출퇴근 외 시간 유류사용 반대라는 3가지였다. 그는 "우리의 일상적 삶을 새롭게 하려는 우리의 새 생활운동은 한국 근현대사 전체를 통틀어 매우 독특하고 특수한 것"이라며 "그 때까지 대정부 및 이데올로기 지향적 학생운동이 많았으나, 순수하게 일상적인 삶의 개선을 절규하는 학생운동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그 신학적 의미에 대해 "새 생활운동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 속에서 구현돼야 할 기독교의 역사적 사명들 가운데 하나로 보려는 것"이라며 "바울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는 가운데, 그 나라의 앞당겨진 현존을 경험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그와 같은 종말론적인 비전에 걸맞는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롬 13:11~14). 즉, 당시의 새 생활운동은 이와 같은 신앙에 근거한 종말론적인 비전을 향한 순례의 삶이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미리 맛봄'이요 성령의 '선지급금'인 이신칭의를 통해 우리는 개인 윤리를 넘어서 사회의 구조와 원리를 바꿈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깝게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은 신앙이고 그것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이다. 이는 예수님과 바울이 공유하는 진리"라고 역설했다.

"한국 기독교, 민주화에 상당한 공헌"

손봉호 교수는 "새 생활운동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독교가 대신했던 것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며 "또 그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는 새 생활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런 점에서 상당히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한 손 교수는 "사회의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이런 문제들을 고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는데도 교회는 오직 성장에만 몰두한 채 중요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며 "요즘 교회 조차도 이데올로기나 이념에 편향되어 이런 것을 성경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두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참된 민주주의의 힘 처음 체험한 학생운동"

끝으로 김상복 목사는 "4.19를 끝낸 서울대 문리대생들은 교정으로 돌아가 4.19의 의미를 토론했다. 과거보다 더 혼란해 지는 사회상을 보며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나'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며 "결론은 아무리 정권과 장관이 바뀌어도 국민이 바닥에서부터 의식과 생활의 변화를 일으키는, 생활혁명이 일어나지 않고는 그 희생은 헛것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4.19 혁명은 국민의 혁명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새 생활운동의 슬로건도 누가 만들어 전달하지 않았다. 팀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서 창의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완전한 민주적 운영체제였다. 그 열의와 자원하는 힘은 대단했다"며 "참된 민주주의의 강력한 힘을 처음 체험한 학생운동이었다. 새 생활운동 없이 4.19는 그저 정치인들을 위한 학생들의 희생에 불과하다고 모두 느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