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과 안식일 이해>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3. 구약과 유대교에서의 오순절 의미

다른 명절과 마찬가지로 오순절의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첫째는 가나안 땅에서의 농사와 관련된 의미이고, 두 번째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역사 곧 출애굽 구원과 관련된 역사적 의미이다.

(1) 농사와 관련된 의미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오순절은 농사와 관련성이 있었다. 곡식의 첫 추수는 유월절을 계기로 시작되며, 이때에 추수한 보리의 첫 단을 요제로 드리는 것이 오순절 날짜 계산의 첫날이다. 이로부터 50일째인 오순절에는 보리 추수가 끝나며 밀 추수가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새로 추수한 밀로 만든 빵 두 덩어리를 제물로 드린다.

오순절은 땅의 소산에 의존하여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밀 추수를 거두어들인 후 감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즐기는 절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사의 의식이라 의미를 넘어 훨씬 더 깊은 신앙적 배경을 갖고 있다. 즉 농사를 짓는 땅 그 자체는 각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은 땅의 참 주인이 되시며 이스라엘은 그 땅을 위임받은 청지기들이다. 그것과 함께 기억해야 할 또 다른 것은 성공적 추수는 인간의 노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비와 바람과 적당한 빛을 공급하여주심으로 땅의 비옥함을 보장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같은 자연조건 속에서는 전적으로 하늘의 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하나님의 권고하심(주권자로서의 돌보심)이라고 이해하였다(신 11:11-13). 따라서 처음 얻은 추수의 첫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단순한 감사의 예물이라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소유권 곧 하나님이 삶의 근원이 되신다는 신앙고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역사적 의미

오순절의 역사적 의미는 출애굽 구원을 받아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이 시내광야에 이른 시기가 '제3월'이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출 19:10. 즉 유월절에서 시작되어 50일째가 되는 오순절과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내산 도착 시기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 율법의 세부적 조항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랍비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사실로 부각되었다.

시내산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공식적으로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십계명으로 요약되는 율법(토라)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여기에서 오순절에 관한 역사적이고 신앙적 의미는 '나탄 토라'(토라를 주심)라는 명칭으로 요약된다. 오순절의 의미가 '나탄 토라'와 연결된 가장 오래된 문헌적 증거는 '희년서(The Book of Jubilees)'에서 처음으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과 노아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언약이 매년 갱신되는 상징으로 오순절이 지켜지고 있다.

율법을 받은 기념일로서의 오순절에 대한 첫 언급은 주후 2세기경에 활동하였던 랍비 엘라아젤에 의해서이다. 그는 오순절에 토라가 주어졌기 때문에 포도주와 음식으로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이 주어졌음을 강조하는 오순절은 곧 하나님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탄생을 기념하는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탄생이 오순절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신학적으로 주목할 내용이다. 시내산에서 오순절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백성으로 탄생했듯이, 교회 역시 오순절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하나님백성으로 탄생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