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
▲여유롭고 허영스러운 생활양식에 가려진 인격의 빈곤을 다룬 영화, <완벽한 타인>.
지난 호에 이어 박욱주 교수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평론에서는 관객 450만명을 돌파한 이재규 감독의 영화 <완벽한 타인>에 대해 파헤쳐 봅니다. 이 영화에는 유해진(태수)과 염정아(수현), 조진웅(석호)과 김지수(예진), 이서진(준모)과 송하윤(세경) 등 3쌍의 부부와 윤경호(영배)와 지우(소영) 등이 출연해 각자의 휴대전화(스마트폰)을 모두 공유하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반전이 담겨 있습니다. 본 칼럼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편집자 주

◈외모의 번듯함: 인격의 실신함이 결여된 부요와 여유의 아이러니

영화 <완벽한 타인>의 등장인물 7인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변변한 직업도 없는 데다 미혼에 동성애자인 영배(윤경호 분)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교적 그럴듯한 사회적 지위와 배경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들로 확인된다.

집들이 주인인 석호(조진웅 분)와 그 아내 예진(김지수 분)은 의사 부부, 친구 태수(유해진 분)는 안정적 지위를 누리는 변호사이며 아내 수현(염정아 분)은 시이머니를 모시고 집안을 알뜰하게 돌보는 전업주부, 친구 준모(이서진 분)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요식업체를 운영하며, 아내 세경(송하윤 분)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한다.

친구 영배와 다른 등장인물 6인의 이런 경제적-사회적 격차는 영화 전체에서 이들의 화기애애해 보이는 관계를 무너뜨리는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작동한다.

여기서 지목하려 하는 바는 영화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삶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변호사-성공한 사업체 오너 내외의 모임, 새로 이사한 집의 우아해 보이는(그래서 당연하게도 비용이 많이 드는) 인테리어, 고급스러운 저녁식사까지. 영화 초반까지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서민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삶의 조건들이 장면 장면마다 펼쳐진다.

그런데 영화가 도입부를 지나 갈등 전개 시점에 도달하면서부터, 즉 예진이 각자의 휴대폰으로 전해져 오는 모든 통화, 메시지, 이메일을 공개해 보자는 진실게임 혹은 사회적 실험을 제안한 시점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급반전을 이룬다.

이 시점부터는 관객의 눈에 소위 ‘럭셔리한’ 삶의 면면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속내, 인격과 이를 겉으로 치장하는 표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완벽한 타인
▲물질적 풍요와 가식적 관계 속에 감춰진 진실을 폭로하는 계기를 만든 예진(김지수 분)..
고상해 보였던 이들의 삶의 모습은 점차 그 허술하고 유치하며 수치스러운 진면목을 드러낸다. 부부관계가 소원해져 정신과 치료를 받는 석호(아내가 정신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역시 소원해진 부부관계로 인해 가슴성형을 알아보는 예진(남편이 가슴성형 전문 의사임에도 불구하고)의 모습은 부부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서글픈 아이러니다.

게다가 석호는 섣불리 부동산에 투자했다 사기를 당해 거의 전 재산을 날린 상태다. 이들 부부의 친밀해 보이는 관계, 그리고 집들이 장면의 화려함은 실상 현실과 심각한 부조화를 보이는 겉치레에 불과했던 것이다.

변호사 태수는 친해진 연상의 여성이 매일 촬영해 전송하는 누드사진을 보고 성욕을 해결하고, 아내 수현은 이 사실을 모른 채 부부관계가 소원해진 일로 고민한다. 반면 수현은 남편 태수 몰래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마음을 품고, 자주 참여하는 문학 모임에서 친구인 예진의 허영스러운 취향을 흉본다.

요식업체 오너인 준모는 친구의 아내인 예진과 불륜 관계를 이어온 데다, 자기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의 매니저와도 불륜 관계를 맺어 임신까지 시킨 상태다. 준모의 아내 세경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크게 흠잡을 바 없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혼인 영배는 실은 동성애 때문에 이혼을 당한데다 교사 직업도 관두어야 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동성애 관계에 집착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친구가 자기만 빼 놓고 골프모임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들에게 상당한 배신감을 느낀다.

모든 상황을 살펴보건대, 심히 기만적인 관계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의 외양은 그들의 내면에 걸맞지 않게 비교적 화려하고 허영스럽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화려하고 허영스러운 외면만을 바라본다.

이런 사실은 작중 세경이 모든 사실을 알고, 절망과 배신감 끝에 반지를 내던져 이 반지가 반동으로 무한히 회전하는 장면, 영화 <인셉션>(Inception, 2010)의 팽이 토템을 오마주한 장면을 기점으로 확인된다.

모든 사실이 폭로된 상황은 실은 상상 혹은 꿈에 불과했으며, 현실에서는 등장인물 모두가 예진의 휴대폰 공개 제안에 응하지 않은 것이라는 반전 장면부터, 영화는 다시 등장인물들이 누리는 겉으로 고상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삶의 모습을 내보이는 데 주력한다.

거리낄 것 없는 세경을 제외한 등장인물 모두는 각자의 비밀을 속으로 감춘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부부관계, 친구관계,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영화 도입부와 결말부의 카메라 시선은 바로 우리 사회 대중의 시선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실상 대중들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겉모습은 미화된 성공, 위장된 화목, 포장된 인격들로 가득 차 있고, 이런 거짓된 우월함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의해 반복적으로 확고한 사실처럼 소개된다. 그리고 <완전한 타인>은 이런 것이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위하는 일상임을 폭로하고 있다.

완벽한 타인
▲세경(송하윤 분)과 준모(이서진 분). 감춰져 있던 속마음과 행위들이 드러나면서 긴장과 갈등에 의해 점차 속마음이 얼굴 표정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얼굴과 외모: ‘프로소폰’과 ‘프로소폴립시아’

성서에서는 이런 행태가 하나님의 눈 앞에 잘못된 것임을 자주 지적한다. 통상 “사람을 외모로 보는 것”에 대한 경고들(요 7:24, 약 2:1 등 다수)이 여기에 속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말 성서에 “사람을 외모로 봄”으로 해석된 그리스어 원어가 원래 ‘얼굴, 인격,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어 ‘프로소폰’에서 유래된 용어 ‘프로소폴립시아(προσωποληψια, prosopolipsia)’로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전편의 글에서 강조한 대로 ‘프로소폰’은 좋은 의미와 악한 의미를 모두 담아내고 있는 중의적 용어다. 성서에서는 내면의 인격과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 및 행동이 일치하는 얼굴을 의미하는 용어로 채택되어 하나님의 ‘얼굴’과 참 그리스도인의 얼굴을 지시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성서와 기독교 문헌 이외의 텍스트들에서 이 용어는 자주 겉과 속이 다른 얼굴, 어두운 속내를 감춘 음흉한 얼굴과 위장된 인격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사람을 외모로 봄”을 의미하는 용어 ‘프로소폴립시아’는 바로 후자의 악한 의미, 즉 가면을 쓴 위장된 인격, 가식적∙위선적 인격을 나타내는 얼굴(혹은 외모)과 관련된 용어다. 이 용어는 영어로 번역될 때 ‘편견에 지배된 호감’(favoritism)으로 표시된다.

이처럼 ‘프로소폰’이라는 용어, 그리고 ‘favoritism’의 의미를 종합해 생각해 보면, ‘프로소폴립시아(사람을 외모로 봄)’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가식적 얼굴(혹은 외모)을 편애함’이라는 의미다.

완벽한 타인
▲성서가 말하는 ‘외모’란 단지 용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무관하게 자기 이익과 욕망을 좇는 마음을 고상하게 포장하기 위해 동원되는 모든 수단을 포괄적으로 지목한다.
이로 보건대 성서 번역자들은 ‘프로소폴립시아’가 가진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던 듯하다. ‘프로소폴립시아’라는 용어에서 이제 ‘프로소폰’이라는 용어의 부정적 의미는 확장의 단계에 이른다.

‘프로소폰’은 외식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얼굴’이라는 의미 하나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죄성으로 뒤엉키고 오염된 마음을 감추고 고상함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양태의 수단들, 예를 들어 사회적 지위와 명성(갈 2:6), 그리고 부유함(약 2:1-9)까지 표명한다.

그러므로 어원상 성서의 ‘외모’란 용어는 신앙의 심령과 무관하게 자기를 고상하게 포장하고 과시하려는 모든 외적 수단, 물질적 수단, 기능적 수단을 포괄한다 말할 수 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주인공 6인(세경 제외)의 삶의 모습에는 이 ‘외모’의 전형이 드러난다. 사람들이 선망할 만한 생활양식, 적정한 물질적 부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식과 능력, 그리고 겉으로 화려하고 풍성해 보이는 인간관계. 이 모든 것들이 신앙과 무관하게, 오직 개개인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까닭에 ‘외모’, 즉 ‘프로소폰’의 확장된 의미 가운데 포함되고 만다.

전편에서 이 영화가 갖는 기독교적 의미, 신앙적 의미는 타산지석의 가르침이라 진술한 바 있다. 이제 “외모를 봄”, 즉 ‘프로소폴립시아’라는 용어와 관련해 이 타산지석의 가르침은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장된다.

신실한 기독교 신앙인은 ‘외모’를 통해 타인에게 호감을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하고, 바로 이 ‘외모’를 통해 자고하거나 우월의식을 갖지도 말아야 한다. <완벽한 타인>은 이런 교훈을 전해주는 반면교사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결말은 블랙코미디의 전형을 보인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거짓을 감춘 채 자신들이 형성해 놓은 ‘외모들’ 속에 갇혀 삶을 이어간다. 거기에는 어떠한 돌이킴과 회심을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씁쓸한 감정을 전달하는 결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은 이런 결말이 선사하는 부정적인 느낌을 통해 자기 속내를 들여다 보고 반성하는 기회, 화려하게 채색된 세상의 허름한 진면목을 새롭게 인지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데서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