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너는 무엇을 남기겠느냐?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의 경우

입력 : 2018.07.09 14:57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한 해를 시작하던 새해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반년의 세월이 지나고 따가운 햇살과 무더운 장마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불모지 같았던 낯설은 타국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이 땅에서 순교했던 토머스 목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은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이고, 한국에서는 토마스 목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웨일스의 개신교 선교사였던 그는 27세의 꽃다운 젊은 나이에 대동강 쑥섬에서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를 했습니다.

토머스 목사는 아버지 토머스, 어머니 메리 사이에 출생해 런던대학을 졸업하고 아내와 같이 런던선교회 목사로 상해에 왔습니다. 그는 상해에서 부인과 사별하고, 런던에서 상해까지 같이 배를 타고 같이 지냈던 상해 지부 있는 스코트랜드 장로교 선교사 윌리암스를 찾아가, 여기에 온 가톨릭 신자인 조선인 2명과 친해져 한국어를 익혔다고 합니다.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1865년 4개월 동안 약 2천마일 되는 거리를 지나 연안을 예비 순방했습니다. 그는 김자평 우문태의 안내로 9월 13일 한국에 있는 소래 해변에 도착했다가, 배가 파선되어 다시 중국 북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북경에서 조선 사신들을 만나 성경책을 나누어줬고, 1866년 병인양요 당시, 로즈 함대를 타고 한국으로 오려다 영국인 선원 호가스의 알선으로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하여 대동강까지 왔습니다.

대원군 집권 3년차였던 1866년 병인년은, 우리나라 교회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나라 안에 천주교 신자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곧 이어 병인양요까지 치르면서, 외세에 대한 조선의 쇄국정책은 극에 치달았습니다.

같은 해 8월 평양 대동강에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 셔면호가 나타났는데, 이 배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은 토마스라는 선교사가 통역관으로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한국 개신교 사상 첫 순교의 피를 흘린 주인공입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그야말로 굉장했다는 것은 학교 교과서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토마스 선교사님이 함께했다니, 얼마나 처절한 피비린내의 참상 속에서 고통이 심했을까요? 이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무겁기만 합니다.

누가 이 나라에 복음의 씨앗을 어떻게 뿌리셨는지, 누구의 순교로 오늘날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게 되고, 나아가 오지의 나라에 선교의 씨앗까지 열매를 맺게 됐는지, 토머스 선교사님의 순교를 생각하면 내가 믿고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나도 토머스 목사와 같은 선교사를 꿈꾸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는 각오와 더불어,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보며 믿음을 점검해 보는 귀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일찍이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낯설은 이국 땅, 언어도 통하지 않는 오지의 나라에서 그는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요? 문화적·교육적으로, 삶의 질이 훨씬 좋은 자신의 나라를 뒤로 한 채, 복음을 전하기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오지의 나라에까지 와서 복음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순수한 선교사님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는 첫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믿음의 초심은 점점 옅어져 갑니다. 더불어 서서히 타락해 가는 모습이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교회마다 성도들이 하나둘 모이면 기도와 찬양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끼리끼리 모이는 계모임 같아 심히 마음이 아픕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지켜야 할 약속은 지키질 않고, 그 약속을 깨면서까지 죄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정말 교회가 아니라 '빌딩'으로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합니다.

자신들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서 교회 안에 재판국을 열어놓고 당사자인 담임목사가 재판국장이 되어 재판하는 어이없는 현실을 보면서, 순교자의 끓는 피가 용암처럼 솟아오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신들 뜻에 맞지 않는 성도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교회 문을 쇠사슬로 묶어놓질 않나, 심지어 1층 화장실까지 쇠사슬로 문을 잠근 채 교회 출입구에 건장한 집사들을 문지기로 세워 신자들을 선별 출입시키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밤무대에 캬바레 앞을 지키는 조폭들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들은 각서를 쓰면 들여 보내준다고 합니다. 핵심 주동자는 각서를 써도 안 들여보내준다고 합니다. 참으로 황당하고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교회를 마치 개인 소유물처럼 또는 자신의 재산처럼 행사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저들이 주님의 종인지 아니면 사탄의 종인지 상상할 수 없게 합니다. 이러한 도를 넘은 잣대를 보면, 여기가 곧 지옥이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마스 목사를 비롯해 이 땅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 없이는 지금 우리가 믿고 알고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분들의 아낌 없는 사랑의 희생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평온하게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고 아름답게 친교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무슨 속셈과 무슨 마음으로 이러한 기독교 정신과 예수님의 사랑의 방법과 동떨어진, 희한한 방법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는 개인이 좌지우지 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뭉친 공동체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믿음으로 친교하며,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게 진실하게 드리는 예배입니다.

어떤 지도자들은 교회 안에서 권력을 오래 맛보다 보니, 하나님의 뜻은 온데간데없이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자리를 꿰차 모든 행사를 하고 있으니, 교회가 매일같이 분쟁 속에서 헤어날 줄 모릅니다. 교회로서의 가치와 사명을 잃어버린 채 사탄의 소굴로 만들고 있으니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개혁을 늘 외치면서 실천이 없는 신앙의 지도자들을 볼 때,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잇속을 챙기는 분들이 아닐까 싶어 답답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뭘 남기시렵니까? 토마스 목사가 남긴 한 권의 성경책이,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 땅에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을 위해 헛된 수고를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내가 무엇을 남기고 갈까라는 생각을 잠시만이라도 해보시기를 간구합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고 고뇌하며 깊은 가슴으로 생각을 나눌 때,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 것입니다. 단 5분만이라도 진솔한 생각을 해보기를 권면합니다.

우리는 늘 명예와 돈궤,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며, 그들이 나에게 주는 조금의 이익을 위해 믿음의 본질을 상실하고, 주님께서 남기셨던 참 사랑을 잊어버린 채 오늘도 신앙인이라 자처하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혈안이 되지 말고, 주님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고, 나도 이 세상을 살면서 뭔가 남겨야 되겠다는 믿음으로 돌아오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그리할 때 나의 교만과 자랑이 사라지며, 내가 누리려 했던 권력과 좋아했던 명예를 서서히 내려지고,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다음에는 가난한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는 순교의 마음이 용솟음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과연 이 세상에 살 동안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무엇을 남기고 갈까 하는 뜨거운 가슴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셨던 그 주님을 우리가 십자가에 매달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배신한 우리들을 용서하시며 참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피와 눈물과 땀방울을 아낌 없이 다 쏟으시기까지, 완전한 사랑을 선물로 주신 그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너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남기겠느냐"?

이 주님의 고요한 음성을 듣고, 주님께서 바라고 원하시는 것을 남기려 애쓰며,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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