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힘들지 않은 때는 별로 없었다… 마광수, 교통사고, 안타까운 사연들

입력 : 2017.09.11 15:25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인생을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허전함과 상실감, 예상치 못한 실패로 초라하게 추락했던 순간, 그렇게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당한 아픈 기억,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느닷없는 사고로 인한 혼란, 자녀들이 엉뚱한 길을 걸어서 입맛이 사라지던 순간, 지루하리만치 오래되는 질병.... 얼마나 고민스러웠는지. 얼마나 힘겹고 아팠는지. 즐거운 일을 열거하기보다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을 열거하라면 밤을 지새워 쏟아놓겠지?

살아오는 동안 문제 없었던 때가 어디 있었는지. 힘들지 않은 때가 어디 있었는지. 수없는 날, 수많은 고민과 염려에 쌓여 마음이 무너지는 걸 경험했다. 그때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달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만두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얼마나 아팠는지. 희망의 빛줄기를 내다볼 수 없는 절망감에 얼마나 마음이 시렸는지. 믿음이 아니었으면, 하나님의 눈이 아니었으면 조용히 눈을 감고 싶은 생각도 불쑥 튀어나오는 답답한 현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여기까지 달려오지 않았는가?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시인 윤동주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8세에 홍익대 조교수로, 33세에 연세대 교수로 봉직했다. 시인으로, 작가로, 교수로, 그때만 해도 잘 나갔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천재 교수라고 칭했단다.

그가 쓴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지만, 외설 논란에 휩싸였다. 그로 인해 법정 구속을 당하는가 하면, 교수들 세계에서 왕따 인생을 보내야 했고, 교수자리도 흔들렸다. 결혼을 했지만, 자식을 두지 않았다. 그리곤 급기야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몰려왔고, 함께 살던 노모까지 세상을 떠났다. 급기야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66세에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났다. 바로 마광수교수의 인생이다. 화려함과 초라함의 시소게임에서 불행에게 밀리고 말았다.

싫든 좋든, 우리는 인생의 교차점을 인정해야 한다.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불행한 순간도 있다는 사실을. 인생은 행복과 불행의 시소게임과 같다. 물론 무게 중심은 불행 쪽이 더 무거운 것 같다. 그래도 시소가 불행 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도록 균형점을 잘 잡아야 한다.

인생에 문제가 없기를 기대하는가? 그런 인생은 없다. 히브리 민족은 한때 행복한 애굽 생활을 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등장하여 히브리 민족의 운명은 기울기 시작했다. 번성하는 히브리 민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애굽 왕은 산아제한 정책을 강구했다. 국고성을 짓는데 히브리민족의 노동력을 동원했다. 숱한 고역과 압제를 받았다.

그런데도 히브리 민족은 더 번성해갔다. 산아제한에 실패한 애굽 왕은 남아 살해 정책을 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산파들을 시켜서 현장에서 죽이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또 다시 실패했다. 악한 자들의 특징은 그래도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집요하게 죽음의 길로 치닫는 게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버리도록 명령했다.

히브리 민족으로서는 엄청난 고통이었고, 민족 멸절이라는 심각한 위기를 당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때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여전히 일하고 계셨다. 언약 백성을 돌보시고 책임져 주셨다. 인간이 아무리 악한 계책을 세워 도전한다 할지라도,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꺾을 수는 없다. 이걸 확신해야 한다.

회고해 보면, 힘들지 않은 때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걸어오지 않았던가?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의 손을 꽉 붙잡아야 한다. 답답하고 속상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어려운 순간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도 잘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순간순간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9월 3일. 수원에 있는 어느 병원 장례식장이다. 16살 난 한 소년이 검은 상복 차림으로 부모님 영정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서 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옆에는 12살 난 초등학생 소녀가 하염없이 울고 있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48살인 아버지와 39살인 엄마가 어제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고속버스 추돌사고로 숨진 게다. 천안논산고속도로 논산 방향 정안휴게소 부근에서 처참한 광경이 벌어졌다. 서울을 떠나 전남 고흥으로 가던 고속버스가 앞서 서행하던 싼타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차량 8대가 연쇄 충돌하고 말았다.

싼타페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이들 부부가 숨지고 말았다. 고속버스 및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과 진술을 토대로 볼 때 고속버스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한 게다. 피해 차량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다. 한 사람의 졸음운전이 나들이 부부의 행복을 무참히 짓밟고, 한 가정의 웃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사연을 들어보면 더 눈물겹다. 숨진 이들 부부는 2000년 결혼했다. 남편은 건설현장에서 전기설비담당 근로자로 일했고, 아내는 7년째 피자가게 직원으로 일했다. 고달픈 인생을 살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기에.

지난 3월에 남편은 그동안 지병을 앓아오던 아버지를 먼저 보냈다. 아내는 수년간 시아버지를 정성스럽게 보살피고 간호해 주었다. 남편은 아내의 정성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고생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오랜만에 어렵사리 둘만의 나들이를 약속했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이날 낮까지 일했다. 그리고 아들과 딸에게 "날이 좋아 여수에 바다 보러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여수 바다를 향한 발걸음이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결국 이들 부부는 아버지를 모셨던 바로 그 빈소에서 사랑하는 아들, 딸과 가족들에게 영정사진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사고 나던 날은 아들이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는 날이었다. 물론 엄마는 아들이 아르바이트하겠다는 것을 '공부하라'고 말렸다. 하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아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금이라도 부모님에게 보탬이 되길 원했다.

아들은 아르바이트 면접에 합격했다. 기쁜 마음으로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엄마가 아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만 들렸다. 오랜만에 나들이 간 부모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2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때까지도 아들은 사고의 피해자가 자신의 부모인 줄 몰랐다. 그러나 날벼락이 자신에게 몰아치고 말았다.

16살 된 소년과 12살 된 소녀가 앞으로 휘몰아칠 험난한 세상 파도를 어떻게 싸워나갈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앞으로 더한 절망의 순간들이 몰아칠텐데. 이들이 주님을 믿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기도해 본다. 이들이 주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이들에게 복음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게 해 달라고. 이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자유를 경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이게 이들에게만 다가올 현실이라고 말할 순 없다. 나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현실이다. 언제, 어느 때 느닷없이 이런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현재가 그렇게 소중하다. 하루 하루를 결코 헛되이 보낼 수 없다.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오늘 하루를 지금 마감 지어야 해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천국 소망을 견고히 해야겠다. 그리고 매일 갈망하며 준비해야겠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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