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제국주의 선교’, 부정적인 면만 있었을까?”

이대웅 기자 입력 : 2017.06.14 09:28

2017 봄 홍성강좌 ‘18-19세기,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 마무리

홍성강좌 윤영휘
▲마지막 강의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18-19세기 서양 기독교와 세속사의 상호 관계를 탐색했던 2017 봄 홍성강좌 '서양 근대교회사: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가 12주 일정을 마무리했다.

13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서 열린 마지막 강좌에서, 윤영휘 박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는 '20세기를 향하여: 선교와 제국'이라는 제목으로 19세기 선교의 수식어 중 하나인 '제국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윤 박사는 "지난 시간 '서양에서 동양으로'라는 일반적 선교의 명제가 전체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을 논의했지만, 그렇다 해서 서양 선교사들의 활동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며 "18-19세기는 분명 기독교인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증가했던 시기로, 그것이 19세기의 어떤 구조적 특징 때문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19세기는 3C, 즉 기독교(Christianity)와 상업(Commerce), 문명(Civilisation)이 '삼겹줄'처럼 얽혀 함께 발전하던 시기였다. 유럽 여러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진출하면서 기독교도 함께 전파됐던 것. 이는 후세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당대 사람들도 인정했던 사실이다.

윤 박사는 "부정적 뉘앙스가 담긴 '선교 제국주의'라는 말은 서양 사학계에서 정설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고 자세히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하지만 당대의 제국과 상업은 분명 선교의 도구 역할을 했고 선교도 제국과 상업에 일정 부분 긍정적 기여를 한 만큼,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당대 유행했던 구호 '우리 세대에 전 세계를 복음화하자(World Evangelization in Our Generation)'처럼, 선교사들의 이상과 목표는 훌륭했다. 그러나 그 방법까지 이상적이진 않을 수 있다"며 "그렇다 해서 19세기 선교 전체에 오명을 씌우거나 이 때의 선교 자체를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기독교는 제국의 정복 정책과 상업·무역에 있어 '정당성'을 제공했다. 당시 서구 열강들은 자신들에 비해 덜 '문명화'된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를 정복하면서 일종의 '선민의식'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는 정복지에 자연스럽게 시작됐던 기독교(개신교) 선교 때문이었다. 특히 영국은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정복을 문명화에 대한 '사명감'으로까지 여겼다.

윤 박사는 "로마 제국 없이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선교가 가능했을까"며 "직접적 도움이 없었더라도 로마가 만들었던 '길', 그리고 통일화된 언어만으로도 그들의 선교에 큰 도움을 줬다"고 풀이했다.

그는 "바울은 이러한 로마제국의 문명을 이용했지만 제국 자체를 긍정하진 않은 반면, 19세기 선교사들은 제국주의를 기독교 전파를 위해 활용했을 뿐 아니라 이를 적극 옹호했다"며 "당대 선교사들처럼 식민지 주민들의 비인간성 등을 공격한 사람들도 없었지만, 제국주의와 정복을 적극 옹호한 사람들도 그들"이라고 했다.

선교와 제국의 관계는 복합적이다. 제국주의로 인한 상업의 팽창은 선교 자금 확충 통로이기도 했다. 동인도회사 등 현지에 진출한 상업회사들은 선교사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식민지의 위험한 치안 상황은 선교에 큰 어려움을 주기도 했는데, 제국이 정복한 곳은 비교적 치안통제가 가능해 복음 전파가 좀 더 수월해졌다.

또 미국과 유럽 각국이 중국 등에 진출하면서 맺은 조약에는 대부분 '포교의 자유, 선교의 자유, 선교사 보호'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돼 선교사들의 진출을 도왔다. 영국·프랑스·독일 등의 아프리카 분할 정책은 곧 그 나라 주요 교파의 선교 한계선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독교는 제국의 체제 안정에 기여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는 이러한 '3C'의 관계에 균열이 발생한다. 제국은 기독교 전파에 중립을 지키려 했고, 회사들이 진출하기 전 선교가 먼저 이뤄지는 곳도 생기기 시작했다. 선교사들도 대거 늘면서 본국 선교협회의 지원만으로 자금이 부족해져, 현지인 중심의 '자립(self-financing)·자치(self-governing)·자전(self-propagation)' 교회 설립과 현지인 중심의 선교를 지향하기에 이른다. 이는 곧 서구(제국·문명)와 기독교의 분리를 의미했다. 이 시기 선교지에 의료·교육 선교가 행해졌고, 여성의 역할도 증대했다.

윤영휘 박사는 "19세기 선교는 '제국주의'와 연관이 있었지만, 이 시기 기독교는 탈서구·탈문명화돼 20세기 초 거의 모든 나라에 현지인 교회와 사역자들이 존재하게 됐다"며 "열악한 환경의 선교지에서 교파와 관계없이 선교사들이 뭉치게 되면서 에큐메니칼(ecumenical)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는 20세기 초 에든버러 선교대회(The First World Missionary Conference, 1910년)에 이어 세계교회협의회 창립(WCC, 1948년)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윤 박사는 "그러나 선교지에서 인종간 구별은 지속됐고, 인종간 우열의식도 여전했다. 그리고 현지인 중심 교회는 적어도 19세기까지는 현실화되지 못했다"며 "'서양 문명=기독교' 등식이 깨지고 비서구 선교지와의 접촉이 늘면서, 토착 종교나 문화의 수용 범위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 것도 이 시기"라고 전했다.

12주 간의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윤영휘 박사는 "시작 때 말씀드렸듯, 탈기독교화된 현 시대에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기가 최초로 탈기독교화되기 시작한 18-19세기"라며 "비기독교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와 우리가 사는 실생활 영역 가운데 하나님 자녀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될 때, 역사가 주는 교훈을 거울 삼아 200년 전 신앙의 선배들이 따라간 행적을 보고 느끼고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18-19세기 세속사·교회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첫 시간 '혁명(정치), 세속화의 도전(세계관·철학), 부흥·선교(종교)' 등 3가지를 제시했었다. 또 기독교가 계속 외부 상황의 '도전'자신을 변화시켜 가며 '응전'해 온 역사를 12주 동안 쉽고 충실하게 설명했다.

홍성강좌 윤영휘
▲배덕만 박사가 인사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2017 가을학기에는 20세기 미국 교회사를 전공한 배덕만 박사(느헤미야)가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 성령, 해방 그리고 하나님나라'라는 주제로 20세기를 다룰 계획이다.

이날 인사를 위해 참석한 배덕만 박사는 "20세기는 교회 역사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고,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세계 교회와 관계를 맺은 기간"이라며 "이 시기 기독교는 끊임없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급변했고, 본격적으로 성령 운동이 시작돼 '성령 시대'로 불릴 만큼 오순절 운동부터 은사주의 운동, 최근의 신사도 운동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배 박사는 "20세기는 미국 교회가 중심이 됐고, 미국 교회의 변화는 곧바로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며 "결국 모든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 한국교회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라고 소개했다.

홍성강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진행중인 '3년 프로젝트'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역사에서 묻고 찾기 위해 기획됐다. 교회사 발전 과정을 장기적 맥락에서 되짚고, 역사 속에서 이뤄졌던 개혁의 성과들뿐 아니라 개혁 운동들이 특정 시점에 길을 잃게 된 과정까지 살펴봄으로써 현재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시사점을 찾고 있다. 특히 세속사 전공 역사가들과 교회사가들이 협력하면서, 교회사와 세속사를 분리하지 않고 그리스도교적 안목으로 적극 통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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