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봉독>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요한복음 20장 19절로 23절 말씀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

우리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는 한 평생 은혜로 삽니다.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한 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해야 됩니다. 나의 나 된 것이 주님의 은혜라! 우리가 그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요. 하나님의 치료가 은혜요. 하나님의 용서가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생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주여! 날마다 우리에게 충만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은혜로 살게하여 주옵소서! 내 힘의 노력으로 내 자신의 자랑으로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가 임할 때 모든 것이 다 주 앞에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그러한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 이 은혜를 깨닫고 늘 감사하는 사람들. 할렐루야! 여러분!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 평안, 감사가 넘쳐나는 그러한 은혜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저들에게 전해주신 축복의 말씀이요. 이 말씀 가운데 4가지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1. 평강의 은혜

첫 번째 은혜가 평강의 은혜입니다. 제자들이 낙심하고 절망하여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떨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예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제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붙잡혀서 죽게 될까봐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저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 차례나 강조하여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보니까,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을 전하셨습니다. 21절에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할렐루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 고통, 괴로움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여 우리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더 이상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며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 주신 평안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서 명상을 하기도 하고 산 속에 들어가서 혼자 조용한 공간에 앉아서 묵상을 하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오는 평안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찰라적인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이 참된 평안이요, 영원한 평안이요, 세상이 주지도 못하고 빼앗아 갈 수도 없는 놀라운 평안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여, 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평안이 내게 임하여서 내 마음에 염려도 근심도 걱정도 다 떠나가게 하여 주옵시고, 주님의 기쁨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이 평화가 임해야 됩니다. 절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불안과 근심걱정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평화가 넘쳐야 됩니다. 지금 네팔에서는 큰 지진이 나서 많은 피해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 평화가 임해야 됩니다. 주여, 주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할렐루야. 이 평화가 우리 마음 가운데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우리 대한민국 북녘 땅에 있는 2,500만 우리 동포들에게도 이 평화가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평화가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에 보니까,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주여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기쁨이 임하고 주님의 평안함이 임해서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난 다음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2. 보내심의 은혜

둘째로, 보내심의 은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릴 통해 주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21절에,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주님이 우리를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이 가득한 일상으로 우리를 보내십니다. 주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 주님, 제가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가겠습니다. 어디든지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겠습니다. 절망이 슬픔이 고통이 가득한 그곳에 문제가 많은 그곳에 제가 가겠습니다. 주님 저를 통하여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우리가 사명 받아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때 주님께서 그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일생 다 가도록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들이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절망의 자리에, 슬픔의 자리에, 문제와 고통이 있는 자리에 주님이 함께 가셔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삶 가운데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라 하시면 우리는 가야합니다. 어디로 부르시던지 간에 가라 하는 곳에 우리는 가야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부모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되는 소년소녀 가장들, 또 날씨가 추워지면 걱정이 앞서는 홀로 사는 독고노인 어르신들, 추운 겨울에도 난방을 할 수 없어서 전기담요 하나 덮고 떨면서 지내셔야 되는 어르신들, 마땅히 거할 집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녀야하는 노숙인들, 낯설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우리 대한민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많은 다문화 가족들.

지금 170만 다문화가족 시대가 되었는데 아직도 그들은 고통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 그 사이에서 태어난 버려진 아이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절망 가운데에서 태어나서 지역아동센터나 입양기관에 맡겨집니다.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장애가 와서 평생 장애를 앓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주님 우리를 그들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가라, 가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담임목사가 된 후에 지금도 내 마음속에 늘 한편의 죄송한 마음이 있고 아픈 마음이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성도님 중 할머니 한 분이 기도원 성령대망회를 가셨다가 예배 끝나고 조금 늦게 나오셨는지 버스를 못 찾았어요. 그래서 이리저리 버스를 찾다가 그만 큰 버스가 뒤로 후진하는 것을 못보고 발이 깔렸습니다. 저한테 보고가 올라왔는데 일산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발가락 네 개가 잘렸다는 겁니다.

놀래서, 너무나 안타깝고 또 죄송하고 해서 급히 병원에 심방을 갔는데 그 할머님이 저를 보고 너무나 반가워하는 거예요. “어이고, 내가 병원에 누웠더니 이렇게 목사님을 뵙네.”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니 기도원 가서 사고가 났으니까 교회에 대해서 원망도 하고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할 수 있을 텐데 병원에서 그렇게 반가워하시고, 기뻐하시고 그래서 기도를 해드리고 나오는데 제가 그 담당 교구장 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들었어요.

“목사님, 할머니 성도님이요. 병원에 입원하신 것을 너무도 행복하게 생각을 하신답니다. 왜냐하면 독거노인이신데 늘 겨울에 추운 방에 혼자서 찬밥 먹고 지내다가 병원에 입원하니까 따뜻한 방에, 침대에서 하루 세끼 따뜻한 국밥을 대접해주니 여기가 천국 같다는 거예요.” 한 번도 그렇게 누가 따뜻한 국밥을 대접해 준 적이 없는데 병원에 누워있으니 아침 가져다주고, 점심 가져다주고, 저녁 가져다주는데 따뜻한 국밥을 먹어본 지가 참으로 오랜만인데 너무 음식이 맛있더라는 거예요.

원래 병원 밥이 맛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행복하다고 그러고, 그렇게 간호사들이 수시로 와서 돌봐주고, 의사 선생님들이 자주 와서 찾아보고, 교회에서 구역 식구들이 찾아오고, 목사님 얼굴도 뵙고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퇴원하기가 싫대요. 저는 그 말 들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굉장히 아팠습니다. “아 우리 교회 성도님들, 사랑으로 돌봐드려야 할 성도님들이 너무나 많구나.” 우리 자신이 자기 일에 너무 바쁘고 그냥 자기를 위한 일에 힘쓰다 보니까 우리 주변에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웃을 돌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받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고 나누어야 합니다. 고개를 돌려보기만 하면 여러분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의 손을 붙잡고 기도해드리고 집에 있는 먹을 것 좀 같이 나누고. 그것이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에요. 쌀 한 포대를 가져다 줘도, 라면 한 박스를 가져다 줘도 그것에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서 그들의 삶 속에 큰 기쁨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이제 사랑의 섬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으로 섬기고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성도님들이 부족한 종 사랑해주시고 한 마음이 되어주셔서 우리 장로님들께서 다 같이 뜻을 모아서 교회 예산의 3분의 1을 구제하고 선교하는 일에 쓸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또 저출산 시대에 출산장려를 위해서, 또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아이를 낳기만 하면 출산 장려금도 드리고, 구제비도 드리고. 그래서 요즘 우리 교회에 아이를 낳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우리가 다 보살펴야할 우리의 가족들입니다. 여러분 참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지만 여러분 주변에 고개만 돌려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미국의 일상 영웅 50인에 선정된 유진 조 목사님. 시애틀의 다문화 교회를 섬기고 계신 목사님이신데요.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하루치 임금을 기부하자’는 ‘원 데이스 웨이지스’라고 하는 NGO를 설립해서 섬기고 있는데요. 그 동기가 이렇습니다.

2007년 미얀마를 방문했는데 정글에서 팔다리가 잘리고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지뢰를 묻어놨는데 아이들이 모르고 들어가다 밟아서 다리가 다 잘라지고 팔이 날라가고 이런 끔찍한 참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한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을 돌봐줄 교사, 그 교사를 구해오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구한대요. 1년 교사 급여가 40달러, 4만원이에요. 미국에서는 하루치 급여밖에 안 되는 그런 금액인데 교사를 못 구하고 있어서 그가 미국에 돌아가서 하루치 임금을 우리가 기부하자.

본인은 세 자녀를 두고 있는데 본인은 일 년치를 내놨어요. “여러분, 하루치만 모아서 우리가 가난한 나라, 어렵고 힘든 나라를 도웁시다.” 그래서 3년 동안 캠페인을 벌이면서 본인이 일 년치를 내야하니까 본인의 모든 것을 줄여야 됐어요. 애 셋이 짐을 꾸려서 조그만 집으로 옮겨야 하고, 또 여기저기로 옮겨 다녀야 하고. 정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마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주었습니다.

연봉의 반을 기부한 젊은 목사, 기부를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 대대로 전해오는 가보를 판 부부, 또 삭발까지 하며 모금운동에 앞장서는 네 아이의 엄마, 5천km 자전거 횡단을 해서 모금을 한 고등학교 학생, 지역 내 저소득층 학생들을 돕기 위해서 교회들이 연합한 일들. 그로 인해 2009년부터 지금까지 약 240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26억 원이 모여서 세계 곳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뉴욕 타임즈, 시애틀 타임즈 등 여러 신문을 통해서 소개되었고 미국 일상 영웅 50인에 선정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말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라>는 책에서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길 원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만을 사랑하게 될까봐 두렵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에 매료되어 정작 ‘우리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귀를 막게 될까 두렵다. 우리는 많이 받았다. 전 세계 인구의 약 ‘80%’가 하루에 ‘10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간다. 만 원 정도 밖에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간다는 거예요. 그들과 비교한다면 우리 대부분은 세상에서 ‘상위 1% 안’에 든다. 어느 누구도 ‘온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세상에서는 ‘당신’으로 인해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할렐루야.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셋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가 성령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안함이 임하고, 그 다음에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사명을 깨닫고 난 다음,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은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할렐루야. 성령이 없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없이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고, 성령이 없이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고, 성령이 없이 죄와 싸워 승리할 수가 없고, 성령이 없이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에, 모든 동물들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우리 인간만은 흙으로 빚으시고 ''후''하고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처럼,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주여,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사도행전 1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여,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주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에베소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은 우리를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을까? 거룩함의 길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시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 중심의 영’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령’이다. 우리는 날마다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그때에만 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하시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실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수님의 성품을 우리의 삶 가운데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로 23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우리 마음에 있는 미움, 아픔, 상처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평안함이 임하고 사명을 깨닫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진해 나가려고 할 때, 우리를 붙잡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저들에게 용서의 은혜를 전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3절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용서는 사랑의 결정체요, 부활 메시지의 완성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긍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함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게 하시고 그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고 용서해 주셔서 우리가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갚을래야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셨는데, 이유 없이, 조건 없이, 그냥 용서하셨는데, 우리는 용서 못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상처 입힌 사람들, 힘들게 한 사람들, 고통을 준 사람을 마음에 확 담아두고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절대 용서 못해.”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자기가 죽을 때까지 용서 못한다는 얘긴데, 예수님은 우리 모든 죄를 그렇게 조건 없이, 다 용서해 주셨는데, 갚을래야 갚을 수 없는 그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우리 이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기 부모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조금 무시를 당했다고, 내게 고통을 주었다고, 받은 그 상처를 끌어안고 평생 마음에 복수의 칼을 갈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여, 우리 마음에서 이 복수의 칼을 다 뽑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의 싸움은 때려눕혀야 이기는 거지만,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용서해야 이기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미움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모든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미움의 장애물을 걷어내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상처를 예수의 사랑으로, 예수의 보혈의 능력으로 치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 저들에게 용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그런데요. 참, 사람들이 너무나 용서하지 않고 살아요. 마음을 닫아두고 삽니다. 너무 너무나 마음이 아파요. 아주 부유한 집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따님이 잘 자랐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청년을 만나서 결혼한다고 왔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눈으로 볼 때,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요. 고아지요, 가진 재산도 없지요, 또 여러 가지 문제도 있었지요.

“절대 결혼 못한다.”, “아니, 내가 왜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을 못해?”, “그래도 안 된다. 결혼은 사랑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저 결혼 하겠어요.” 심한 논쟁과 다툼이 있은 다음, 딸은 부모를 떠났습니다. 여러분, 죽고 못 산다고 하면 결혼시켜요. 왜. 그래서 결혼식을 할 때, 부모님이 오지 않았어요, “너는 이제 내 딸이 아니다.”

그때부터 모든 연락을 끊고 평생 딸과 대화 없이 지냅니다. 그러다가 사위가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어요. 그러면, 그 딸의 마음이 평생동안 얼마나 부모에 대한 섭섭함, 미움, 아픔이 있었겠습니까? 또 그렇게 매몰차게 딸을 내친 부모의 마음은 편했겠습니까? 그래도 자기 딸인데. “못된 것”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참 내가 못할 짓을 했다”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늦지 않았으니까 이런 아픔의 고리가 있는 분들은 빨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한번 뿐인 인생인데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고 마음에 분노와 원한을 품고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이제는 다 내려놓고 지나간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벤허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을 기억합니다. 그 마음속에 그 친구 멧살라가 원수가 되어서, 가슴에 품고 있었던 복수의 칼을 십자가 밑에서 주님의 용서의 말씀을 듣고 내려놓은 벤허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난 저 남자를 알아요. 저분이 제게 물과 살아갈 마음을 주셨어요. 나는 저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분의 목소리가 제 손에서 ‘칼’을 뺏어갔습니다!”

그가 그 마음속에서 미움과 원한과 분노를 내려놓고, 원수를 이겼던 친구를 용서한 그 순간, 자기 어머니와 여동생이 한센 병에서 고침 받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했던 것입니다. 용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치료가 임합니다. 기적이 임합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 앞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직까지도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내 마음에 섭섭함을 가지고 상처를 품고 살고 있는 그런 모습이 있다고 하면,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다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하든지 상관이 없어요.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위해서,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 같이 지금부터 나는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나의 일생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주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마음에 평안함이 임하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 사명도 깨달아 알았는데, 또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았는데, 용서하지 못해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손에 들었던 모든 돌들을 내려놓고, 복수의 칼들을 내려놓고, 이제부터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5. 4. 26.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