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목사(듣는마음상담소 대표).

결혼해서 한 번이라도 이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전쟁터에 나갈 때는 기도를 한 번 하고, 바다에 나갈 때는 기도를 두 번 하고, 결혼을 시킬 때는 기도를 세 번 하라”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고 한다. 각기 다른 남녀가 만나 함께 백년해로하며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혼에 대해서 물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이혼을 아주 쉽게 생각했다. 그들은 이혼을 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계속해서 책잡으려고 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이혼과 재혼을 지적하여 죽임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계산된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을 시험에 빠트리도록 유도하려고 들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막 10:2)

유대인의 탈무드를 보면 그들의 이혼 사유를 잡다하게 열거하고 있다. 예컨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경우, 시모에게 나쁜 말을 했을 경우, 다른 남자와 대화를 했을 경우, 밖에서 머리를 풀었을 경우, 음식을 태우거나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할 경우 등이 있다. 당시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자 하면, 필요한 구실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되물어 보셨다.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막 10:3)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4) 그들은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 24장 1절 말씀을 근거로, 자기들의 이혼은 성경적으로도 타당하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모세가 명하는 바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자기 아내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내를 내보낼 때는 그만큼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막 10:5-8).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신명기의 명령을 곡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시고, 창세기 1장과 2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셨다. 예수님은 이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이혼은 단순히 두 사람의 이별로만 끝나지 않는다. 두 사람과 얽혀 있는 인간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관계는 단절되었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상대방에 대한 분노, 슬픔, 원한이 교차한다. 이혼으로 버려졌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존감에 대한 상처로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기 쉽다. 

자녀가 있는 경우는 미래에 자녀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자녀들 역시 부모의 이혼에 불안한 감정으로 격해지며, 자신들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나 하는 죄책감에 싸일 수가 있다. 자녀들은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한 편을 들어야 할 때 심한 갈등을 느끼게 된다.

이혼한 부부는 상대방에게 쌓인 분노를 표출하면서, 자기를 버린 배우자에 대한 원한에 깊이 사로잡혀 있다. 이것이 해소해지 않으면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주변 사람들도 힘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은 분노를 제어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이혼에 반대하셨지만 이혼한 사람을 거부하신 것은 아니다. 이혼하는 경우 교회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오히려 교회의 지체들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인은 이혼의 위기에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도움을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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