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6. 1980년대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예수: 논구자의 상상력에 의해 “제조된 예수”(fabricated Jesus)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산타 로사(Santa Rosa, California)에 있는 “웨스타 연구소”(The Westar Institute)의 지원을 받아 1985년 로버트 펑크(Robert Funk)에 의해 창설되고, 첫 해부터 그와 존 도미니크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 로마 가톨릭 사제)이 공동의장으로 운영해왔다. 첫 해는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를 비롯하여 약 30명의 신약학자들이 모였고 약 200여명에 달하는 연구 모임으로 발전했으며, 성서비평학(biblical criticism)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그룹 중 하나이다. “예수 세미나”의 주요 연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구로 특징된다. 창설자 펑크는 역사적 예수 연구란 후기의 초대 기독교인들이 믿었던 종말론적 선지자로 그려진 신화적 그리스도(mythic Christ)로부터 갈릴리의 현인을 해방시키는 노력이요, 그리고 예수에 관한 종교(the religion about Jesus)로부터 예수의 종교(the religion of Jesus)를 구분시키는 노력이라고 규정한다.

“예수 세미나” 학자들은 예수 말씀의 진실 여부에 대한 연구를 통해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기독교 문헌, 도마 복음서(Gospel of Thomas)가 포함된 새로운 신약성서를 번역하였다. 그 결과는 『5 복음서』(Robert Funk, The Five Gospels: The Search for the Authentic Words of Jesus (1993) Polebridge Press, Macmillan)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후 예수의 행적에 대한 같은 방식의 연구를 통해 『예수의 행적』(Robert Funk, The Acts of Jesus: The Search for the Authentic Deeds of Jesus (1998), Harper San Francisco)을 출간했다.

“예수 세미나”에 참여한 신학자들은 외경인 도마 복음서를 복음서 중 하나로 보았는데, 그 이유는 도마의 복음서와 4복음서(마태, 누가, 요한, 마가 복음서)가 비슷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누가 복음서의 겨자씨 비유설교는 도마 복음서와 Q문서(예수 어록)에도 등장한다. 또한 “예수 세미나” 학자의 대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을 선호하는 하버드, 클래몽, 밴더빌트 대학 출신이라는 점도 비판을 받았다. 젊은 세대 복음주의 신학자 크래이그 에반스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들은 희랍-로마시대의 영지주의 문서에는 많은 지식과 관심을 가지면서도 기독교의 모태인 유대교 전통과 문서에 관하여는 거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들은 구약의 중요성도 인지하지 않고 그들의 상상력에 입각한 연구결과를 주로 미디어, 미국 ABC 방송사의 “예수를 찾아서”(The Search for Jesus) 를 통해서 발표함으로써 엄격한 학문보다는 저널리스트적 측면이 강한 면도 있다(Craig Evans, Fabricating Jesus. How Modern Scholars Distort the Gospels, InterVarsity Press, 2006, 성기문 역, 『만들어진 예수』, 새물결 플러스, 2011, 19-20).

이러한 전제에 의한 “예수 세미나”의 연구 결과는 예수의 처녀 탄생, 메시아 되심, 십자가 대속, 육체적 부활, 재림을 부정하는 등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을 거부하기 때문에 기독교회 신앙의 근간을 흔들었다. “예수 세미나”를 주도하는 학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들은 이러한 비기독교적 확신을 토대로 종교 간의 대화를 권장함으로써, 전통 기독교계와 신학계 안에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예수 세미나”의 창시자인 로버트 펑크(Robert W. Funk, 1926-2005)는 1998년에 쓴 글 「근본적 개혁을 위하여: 21개의 명제」(The Coming Radical Reformation: Twenty-one Theses)에서 전통 기독교를 부정하는 새로운 인본주의 주장을 제시하였다. “예수를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한다. 예수는 더 이상 신이 아니다. 예수를 신격화하는 것은 인격적 신을 떠올리는 구태의연한 유신론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구세주는 고대 신화 속에서 빌어 만든, 그들의 바람이다. 예수가 신의 아들로 세상에 와서 권능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며 하늘로 되돌아갔다는 것, 세상 끝나는 날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온다는 것, 다 사실이 아니다. 좀 더 현실적인 ‘살아있는’ 예수에 대한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http://www.westarinstitute.org/Periodicals/4R_Articles/Funk_Theses/funk_theses.htm). 펑크에 의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교리는 예수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에게 덧붙은 것이며, 예수를 종교시장에 팔기 위한 초대 기독교인들의 마케팅 전략의 결과라고 한다. 예수 상품화의 최종단계는 니케아공의회에서 칼케돈공의회에 이르기까지 발전된 기독론이라고 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종말론적 예언자 예수상은 예수에 기원을 둔 것이 아니라 부활절 이후 몇십 년이 지나서 만들어진, 예수 추종자들의 창작물이며 상품이라고 한다(김진호 편, 『예수 르네상스』, 한국 신학연구서, 1996, 97). 펑크는 성전이나 율법 등 성스러운 전통보다는 예수의 수사학에 집중함으로써, 예수를 상식에 반하여 기존 상징체계에 도전하는 갈릴리의 겸손한 “떠돌이 현인”(vagabond sage)으로 그린다. 펑크는 기독교 이후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유럽 세계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도 끝난 것으로 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서유럽 기독교의 관점으로 개종시키고자 의도했던 선교 시대가 끝났다고 본다. 그러므로 펑크는 이제는 예수를 석가·노자·공자·간디 그밖의 다른 종교 인물들과 나란히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Honest to Jesus: Jesus for a New Millennium (1996), 김준우 역, 『예수에게 솔직히』, 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115).

이처럼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발견한 역사적 예수는, 사회적인 소외자들과 함께한 떠돌이 설교자였고 현자(Sage)였다.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에 의하면 예수는 소작농을 주된 청중으로 하는 한 농민으로, “소작농 유대 견유학자”(The Historical Jesus: The Life of a Mediterranean Jewish Peasant, 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90, 421)였다.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에 의하면 예수는 유대 지배 계층의 이데올로기였던 정결제의(purity system)와 차별적 사회 경계(social boundaries)에 저항한 사회 예언가, 또한 초월적 영과의 접촉 하는 성(聖)의 매개자, 그리고 세상의 통념과 지혜를 깨트리는 “전복적 지혜자”였다. 미국 노트르담대 신약학 교수요 천주교 신부인 마이어(John P. Meier)에 의하면 예수는 의식적으로 선지자 엘리야를 모방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종말론적 선지자였다.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전령으로서 엘리야가 했던 이적을 행하는 카리스마적 선지자의 모습을 지닌 “변두리 유대인”(a marginal Jew)이다. 역사적 예수의 선포와 행위는 그 당시 유대주의의 주류에는 속하지 않았다. 역사적 예수는 그의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고, 사역하고, 죽었다. 마이어는 이 이상한 변두리 유대인이요, 종말론적 선지자요, 이적 행하는 자가 현대 역사적 예수 연구방법의 대상인 예수라고 본다.

“예수 세미나”가 재구성한 이러한 역사적 예수의 다양한 모습은, 4복음서가 한결같이 증언하는, 성부 하나님을 증언하시고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죄인을 대속한 구세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예수는 진정한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논구자의 상상력에 따라서 제조된(fabricated),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 허구적 예수일 뿐이다.

7. 역사적 예수 논구의 바른 방법론: 역사와 신앙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19세기의 독일 괴팅엔대 조직신학자 마르틴 캘러(Martin Kähler, 1835-1912)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적 예수 논구를 배격하였다. 그는 마가복음이 예수의 인격을 찾아보게 되는 전기가 아니라 “긴 서론을 가진 수난 이야기”(a passion-stories with lengthy introduction)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역사적 예수란 바로 케리그마적 예수”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캘러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발견한 “역사적 예수”란 자유주의의 비평적 방법에 의하여 재구성된 모습이며, 이러한 예수는 결코 역사 안에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학자들의 비평적 재구성을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비판하였다. 캘러는 실재적인 예수는 현대 역사비평학의 방법으로 재구성될 수 없는 성경에 묘사된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는 “소위 역사적 예수”(der sogenannte historische Jesus)와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der geschichtlich-biblische Christus)를 구분하였다. “소위 역사적 예수”란 사실적(史實的) 예수를 말하는 것으로 학문적으로 재구성한 예수를 말하며, 역사적–성경적 예수란 신앙고백적으로 실제로 있었던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의 역사란 예수를 기록한 복음서 기자들의 신앙의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것으로 보았다. 캘러는 이러한 “사실적(史實的) 예수와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를 구분”함으로써,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역사적 예수 탐구 운동의 허점을 드러내는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캘러의 입장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캘러는 케리그마적 그리스도(der kerygmatische Christus)만 인정함으로써 케리그마의 근거인 역사적 예수(der historische Jesus)를 케리그마적 그리스도 속으로 융합시켜 버렸다. 그는 4복음서가 지닌 역사적 예수의 전기적 성격을 부인한 것이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회는 역사적 근거 없는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만을 믿을 수는 없다. 어느 인물에 대한 전기에 있어서 그의 업적이나 평가를 떠난 순수한 인물 자체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 예수에 있어서는 복음서 기자들이 쓰고 있듯이 그의 삶과 사역(역사적 예수)과 그에 대한 평가(케리그마적 그리스도)는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삶과 사역(역사)과 신앙과 평가(케리그마)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와 그에 대한 신앙고백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가장 결정적인 해답을 줄 수 있는 자들은 2천년 후의 다양한 종교적인 전제와 시대사적인 이념을 가지고 예수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학자들이 아니라, 그 시대 예수와 더불어 생활했고 그의 가르침을 들었고 그가 겪었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그 시대의 복음서 저자들과 사도들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자료는 그 후대에 있어서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역사적 예수를 신앙 안에서 체험한 각 시대의 교회와 신자들의 간증과 신앙체험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대교회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거부한 영지주의의 문서들이나 예수에 대하여 전혀 신앙적인 관심을 지니지 않는 요세푸스의 기록을, 복음서 기자보다 더 신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역사적 예수에 접근하는 방법적인 핵심이다.

역사적 예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서는 우리가 가진 4복음서와 신약서신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신앙적으로 역사적 인물인 예수에게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자료다. 역사적 예수라는 용어는 오늘날에도 영국의 F. F. 브루스(Bruce), 하워드 마셜(Howard Marshall), 제임스 던(James Dunn), 그리고 독일의 오토 미헬(Otto Michel), 오토 베츠(Otto Betz), 마르틴 헹엘(Martin Hengel), 페터 스툴마허(Peter Stuhlmacher), 라이너 리스너(Rainer Riesner) 등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에모리대 신약학자 누크 존슨(Luke Timothy Johnson)이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추구한 역사적 예수 논구를 비판하면서 제안하는 것은, 역사적 예수라는 용어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 예수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의 타당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가 제기하는 것은 신앙과 역사를 분리시켜 성경과는 분리된 가공적 역사적 예수를 산출해내는 학문적 작업에 대한 회의주의인 것이다. 학자들이 인위적으로 재구성한 역사적 예수는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The Real Jesus, The Misguided Quest for the Historical Jesus and the Truth of the traditional Gospels, 1998, New York: Harper Collins Publisher, 김혜숙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8-9). 크레이그 에반스도 마찬가지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중하고 면밀한 연구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단지 그가 비판하는 것은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복음서 가운데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최근의 설익은 학문과 말도 안되는 이론들”에 대한 것이다(Craig A. Evans,『만들어진 예수』, 새물결 플러스, 2011, 22-23). 그러나 과거의 기록을 확인하는 역사적 방법만으로는 복음서가 증거하는 역사적 예수를 온전히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역사를 초월하는 영역을 지닌다. 이 차원은 역사적 연구에 신앙이 연결될 때만 통찰될 수 있다. 여태까지 예수 세미나 학자들의 역사적 예수 논구의 방법적 제한성은 바로 예수에 대한 신앙 없이 역사적 방법으로만 접근하고자 한 데 있다.

8. 신약성경, 특히 4복음서가 역사적 예수 이해에 결정적이다

영국의 덜햄(Durham)대 신약학자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이 그의 저서 『예수에 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Jesus)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예수 세미나”는 기본적인 전제가 잘못되었다. 이 전제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케리그마적 그리스도)를 분리시킨 것이다. 양자는 분리될 수 없다. 신약성경은 예수가 남겨 놓은 영향(impact)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에 관한 전통과 예수 신앙은 이 영향이 산출한 믿음과 체험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를 분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A New Perspective On Jesus: What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Jesus Missed (Acadia Studies in Bible and Theology). Grand Rapids, Mich: Baker Academic, 2005). 역사적 예수는 신앙이나 교리에 박제되어 있지 않고, 오늘도 살아 있는 인격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믿는 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성경을 읽을 때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열어주시는 분이시다.

결정적인 문제는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규범이나 특별한 방법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경이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에 관한 권위 있는 계시가 아니라, 주관적인 종교경험과 이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모아놓은 문서라고 본다. “예수 세미나”에 참여하는 학자들은 정경 복음서보다 월등한 가치를 정경 외 자료(특히 도마복음서 등 영지주의 문서들)에 두고 있다. 크로산은 마가의 이야기는 무시하고, 로마에 대한 유대의 반란을 반대하고 로마황제의 편에 가담하여 어용적으로 출세한 기회주의적 변절자인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Craig A. Evans, 『만들어진 예수』, 213-216)에 대하여 상당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시도하는 교차문화적 연구(cross cultural study)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존 전통 신앙의 틀에서 벗어나 재구성된 예수는 설득력이 없다. 학문적으로 만들어진 예수는 신자들로 하여금 핍박을 감수하고 순교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확실한 인격적 존재일 수 없다. 필자가 믿고 논구하는 역사적 예수는 교회사를 통해서 기독교 신자들이 역사적인 박해(네로 치하, 스탈린 치하 등) 가운데서도 기꺼이 순교까지 할 수 있었던, 그러한 확실한 인격인 나사렛 예수를 말한다. 이러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앙이 2천년 기독교를 지탱해 온 것이다. 필자가 증언하는 역사적 예수는 오늘날 북한과 세계 각처에서 순교를 각오하고 신앙생활하는 자들의 살아계시는 예수를 말하는 것이다.

맺음말 : 역사적 예수는 기독교 신앙의 근거, 학문적 회의주의에 빠져서는 안 돼

최근의 “예수 세미나”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의 이해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려고 하였으나, 이들의 연구 결과는 19세기 슈바이처의 역사적 예수논구 결과와 같이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들이 재구성한 역사적 예수는 실제의 예수가 아니라 자기들의 학문적 방법에 의하여 주도된, 만들어진 예수(fabricated Jesus)일 뿐이다. 우리는 겸허한 학문적 태도로 진정한 역사적 예수를 찾아야 한다. 진정한 역사적 예수는 오로지 복음서와 신구약성경과 초대교회 문서들을 통한 신앙적 논구 안에서만 접근될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은 역사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이 근거는 우리의 신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념적인 상상물인 예수가 아니라, 참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평화를 가져다 주시는, 진정한 실재적 메시아적 예수요 진정한 신앙의 예수다. 우리는 역사적 예수 인격만이 아니라 이 인격을 지칭하는 용어조차도 오늘날 시대사적 이념을 가지고 예수를 만들어내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 역사적 예수 용어를 폐기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신앙적 역사적 근거를 상실하는 것이요, 인본주의적 신학에 굴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적 회의주의에 빠지는 것이며 동시에 학문적 회의주의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