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저 같은 죄인이 이제 진리 안에 자유하게 되어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교회로부터 간증부탁을 받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여러분은 이강희 전도사만을 알고 있기에 저를 장애우와 독거노인들의 친구라는 제게 너무 과분한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 과거를 알고도 저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저도 여러분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었을 때 이미 죽었음을 선포했기에 여러분이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것이 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딸, 이강희임을 확신했기에 저는 용기를 내어 저의 부끄럽고 수치스런 과거를 고백합니다.

죄인 중 괴수의 고백이 어쩌면 많은 과거로부터 괴로워하는 또 다른 저 같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기에 저는 이제부터 저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967년 겨울, 신촌역 근처에서 평범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취미로 그림을 잘 그리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가끔 옥상으로 저를 데리고 가 저녁노을을 배경삼아 앉혀 놓고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아버지는 파이프담배를 즐겨 피우셨고 월급의 반을 영화를 보거나 클래식 레코드판을 사는 데 낭비한다고 엄마와 자주 다투셨지요.

중학교만 마치신 엄마는 대학을 나오신 아버지가 당신을 무시한다고 다투고 돈 때문에 다투었기 때문에 저는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고 대한극장에서 나오시는 걸 목격했습니다. 저는 그날 아프다고 학교를 조퇴 하고 아무도 몰래 비비안 리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러 갔었는데 그만 아버지의 외도현장을 보게 된 것이지요. 설마 하고 숨어 그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자에게 솜사탕을 사주고 그녀의 핸드백을 대신 들고 있었지요. 그 여자가 허리를 젖히고 웃자 아빠는 그녀의 허리를 안고서 함께 아주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엄마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아니, 나에게 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들에 나는 넋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 날 회사를 그만 두시고 사업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죽 가방을 만드는 공장을 차리셨는데 어느 날 엄마가 그 공장의 젊은 여공의 머리채를 다 뜯어냈고 그 여공은 엄마의 팔과 뺨을 물어뜯어 엄마는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젊은 여공이 아버지를 꼬셨다고 엄마는 병원에서도 길길이 거품을 무시고 발작증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사업은 망했고 아버지는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며 집을 떠났는데 양복이나 구두는 다 놔두고 레코드판이랑 화구 박스들을 챙겨 가셨습니다.

나중에 엄마는 아버지가 아주 돈이 많고 세련된 여자와 함께 사는 걸 알게 되어 화병으로 몇 년을 누워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는 걸 알면서도 엄마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전세 집을 월세로 돌려 조그만 술집을 차렸고 저는 엄마가 술을 팔아서 주시는 돈으로 대학까지 마쳤습니다.

저는 절대 결혼 따윈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자에 대한 한 올의 신뢰도 저에게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게 이상한 병이 생겼습니다.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고독 병이란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온기를 느껴야만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묘한 안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 성에 대한 정체성도 확립하지 못한 채 저는 그만 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니면서 그의 품안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어미 닭의 날개 아래 포근하게 품어진 것처럼 남자의 가슴에 안기어 있으면 마음에 온기가 돌고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것 같았지요.

도덕적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혼자 있으면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너무 강했을 뿐입니다. 대학 때 3명의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했는데 마지막 남자는 동아리 선배였습니다. 저는 그가 제 친구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빼앗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는 혼자 있게 되면 정말 죽어 버리겠다고 작정한 날 이었기 때문에 모든 이성이 마비된 채 친구의 애인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저를 범한 죄책감에 저를 계속 만났고, 세월이 흐르면서 저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젠 다른 누구의 온기도 필요치 않고 오직 그의 뜨거운 가슴만 있으면 될 것 같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정말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애인을 빼앗아 만든 나의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우리 하영이를 남겨 놓고 교통사고로 떠났습니다. 엄마도 이미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이미 바람과 함께 사라졌으므로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영이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살아보려고 애썼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세 가지 종류의 보험금을 남겨 놓고 떠났으나 저는 남편의 체취가 사라진 집안에 혼자 있는 것 자체가 다시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학 때 저지른 음란한 죄 때문에 내가 벌을 받는구나 하는 죄의식에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