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전전긍긍하는 제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급기야 주변의 외교관 인사들이 “입학하려는 대학에 전 재산을 사후에 기부하기로 한 재벌(財閥)의 추천장을 받아서 제출하면 혹시 붙여줄지도 모르겠다”는 귀띔을 했습니다. 저는 수소문 끝에 평소 친분이 있던 하버드대학 출신의 한 재미교포 박사를 통해 조지타운대에 재산을 기증하기로 약속한 재벌을 알게 됐습니다. 시간을 쪼개 당장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꼭 로스쿨에 입학해서 공부하고 싶으니 추천장을 써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 분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잘 만들어 융숭한 대접도 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이 재벌은 마침내 제게 추천장을 써 주었습니다.


추천장의 내용은 “나는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모교에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송하성을 입학시켜 달라는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우리 모교 명예를 드높일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였습니다. 추천서 밑에는 자기재산 헌납 고유번호와 사인을 부기(附記)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추천장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 여부를 알려주는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이 14명 정도 응시했는데 4명이 붙고 9명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합격인지 불합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대사관에서 일이 끝나면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 편지통에 손을 넣어 보았지만 무슨 전기세 납부고지서, 피자 선전하는 광고편지들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이 흘렀습니다. 초조한 마음은 그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편지통에 손을 넣어보니 조지타운대 로고가 찍힌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고시도 합격할 수 있고 박사도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지 귀신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로스쿨 합격은 미국법이 금지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불가능에 저는 믿음 하나로 도전한 것입니다. 고시 합격 발표보다, 박사학위 논문 통과보다 몇 배는 더 긴장됐습니다. 심장에서 피를 격하게 뿜어내어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편지를 뜯어보니 편지 맨 위에 ‘합격을 축하한다’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파리 소르본느 입학에 이어 저는 미국 로스쿨에 또 한번 ‘예외적’으로 합격해 공부를 할 수 있는 혜택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사의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신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를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마치 해병대 유격 생활과도 같은 학업 전쟁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촌각을 다투는 외교관 생활을 하며 틈틈이 숙제를 했고, 1주일에 2번 있는 야간 수업을 위해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저녁에 꽉 짜여진 수업을 강행하는 고된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송하성 박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