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교회 성도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는 김덕수 목사. ⓒ류재광 기자

14일 호주 샬롬교회의 수요기도회. 한 풍채 좋은 목회자가 강단에 들어서더니 배에 힘을 꽉 주고 “할렐루야”를 외쳤다. 그러자 성도들 역시 밝고 힘찬 목소리로 “아멘”하며 화답했다.


이날 샬롬교회 담임인 김호남 목사 대신 강단에 선 사람은 한국에서 아내 최영신 사모와 함께 방문한 김덕수 목사. 그는 보통 시드니를 찾는 많은 목회자들처럼 유명한 부흥강사도 돈 많은 교회의 담임도 아닌, 오히려 가난한 시골 교회의 목회자다. 그러나 그는 이번 방문 기간 동안 샬롬교회 교인들에게 그 누구보다 많은 은혜를 선사했다.

사례비조차 변변히 못 받고 사명감만으로 19년 목회

한국에서 김덕수 목사와 최영신 사모의 목회 인생은 말할 수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1988년 오직 열정만으로 전라남도 순천의 한 작은 마을에서 복다교회를 개척한 그들은, 사례비는커녕 유지비조차 보장할 수 없는 환경에서 20년 가까운 시간 목회를 해왔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버린 그 마을에서 부흥이란 너무나 멀기만 한 꿈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사명감을 느낀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김 목사 부부는 10여 년 전 또 하나의 도전을 했다. 바로 성전 건축. 기존 성전이 주민들의 집과 너무 붙어있어 어려움이 많았던 데다가 너무 허름했기 때문이다. 그 마을은 이미 1백여 년 전 서양 선교사가 전도를 시작했고 이후에도 여러 교회들이 개척을 했지만 지금은 모두 문을 닫고 터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었다. 때문에 김 목사 부부는 “주님 오실 때까지 무너지지 않을 성전을 지으리라”고 다짐하며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지게차를 끌고 곡괭이와 망치를 잡고 돈을 모으고, 재정도 인력도 없는 가운데 두 사람의 건축 역사는 계속됐다. 돈이 부족해서 기초만 만들어놓은 뒤 몇 달을 쉬기도 하고, 기둥을 올려놓고 지붕을 씌우지 못해 자재들이 다 썩어버리는 일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다시, 또 다시 도전했지만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궂은 일을 도맡아 했던 김 목사는 기관지 천식 때문에 땀이 뻘뻘 나는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당뇨에 합병증이 와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건축만큼은 쉬지 않았지만 몸이 고된 것은 둘째 치고 성전을 완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야학 교사로 섬기던 딸 통해 샬롬교회와 만남 시작

그런데 2006년 말, 갑작스레 전혀 알지 못했던 호주 시드니의 샬롬교회 김호남 목사와 연결이 됐다. 교단도 다르고(샬롬교회는 예장 고신측, 복다교회는 예장 대신측이다) 만난 적도 없는 그들이 연결된 것은 김 목사 부부의 큰딸 덕이었고, 또 하나님의 섭리였다. 김 목사 부부의 큰딸은 고등학교조차 갈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미션스쿨인 순천 매산여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고, 또 서울대까지 진학했다.

어려운 개척교회에서 심성만큼은 누구보다도 곱게 자라난 큰딸은, 큰 교회에 나가면 학비 보조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조차 마다하고 아버지의 교회와 같은 개척교회를 다니며 반주와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다. 또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신림동 지역에서 야학 교사로도 활동했다. 그러던 중 한국가정사역연구소 추부길 소장의 눈에 띄게 됐고, 추 소장이 평소 알고 지내던 김호남 목사에게 그들을 소개시켜 준 것이었다.

때마침 한국의 교회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3년간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던 김호남 목사는 그 소식을 듣고 복다교회를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김덕수 목사 부부를 초청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냥 재정 지원만 하는 것이 오히려 돈도 덜 들고 수고도 덜 수 있었지만, 김호남 목사는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김호남 목사 “교인들이 부흥회 때보다 더 은혜받아”

“성도들에게 섬김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섬김의 즐거움도 깨닫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얼마나 큰 축복 가운데 살고 있는지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천국과 같은 환경에서 있으면서도 지옥처럼 사는 이들에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사시는 분들을 통해 보고 배울 기회를 준 거지요. 저희도 교회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라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교인들이 모두 흔쾌히 찬성하고 도와줬어요.”(김호남 목사)

▲김덕수 목사(가운데)는 이번 호주 방문을 통해 자신감과 믿음을 회복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왼쪽은 최영신 사모, 오른쪽은 샬롬교회 김호남 목사. ⓒ류재광 기자
김덕수 목사 부부는 13일 시드니에 도착해 22일까지의 일정으로 매일같이 관광과 예배 등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쉴 틈이 조금도 없는 스케줄이지만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해 한국에 가서 몸져 눕더라도 이곳에서 조금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싶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한국에 있는 교회를 둘러메고 오고 싶을 정도”라고.

김호남 목사가 목표한 대로 교인들도 김덕수 목사 부부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또 행복해하고 있다. 교인들은 ‘우리도 그리 큰 교회는 아니지만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기쁨에 앞다퉈 섬김의 본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품들을 일일이 챙겨서 싸온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이들도 줄을 섰고, 어떻게든 짬을 내서 김 목사 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김덕수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타 교회 교인까지 감동해 수백 불을 헌금하기도 했고, 앞으로 한국에서 개척교회 목회자를 초청할 때는 함께 힘을 모아서 하자고 요청해온 교회도 있었다.

김호남 목사도 “교인들이 어지간한 부흥회를 열었을 때보다 더 은혜를 받고 있다”며 “앞으로는 부흥회를 할 비용을 아껴서 이런 일들을 더 많이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몰라준다 했는데 “하나님은 날 아셨구나”

무엇보다도 김덕수 목사 부부가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얻고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큰 수확이다.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누구보다 뜨겁게 일해왔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 지쳐 있던 그들은, 이번 기간 동안 마음의 치유를 얻고 새롭게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의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게다가 이런 작은 마을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역해 와서 아무도 우릴 몰라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초청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아셨구나’라는 생각에 어찌나 감사한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이곳 교인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세심히 배려해주고 있어요.”(최영신 사모)

“제가 그동안 많이 위축돼 있었는데 이제 자신감을 되찾았어요. 말을 해도 절망의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요. ‘그동안 어렵게만 사역해왔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세계로 보내주시는구나. 하나님의 때가 차서 나를 들어 쓰실 때가 되었구나. 우리 복다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려 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제가 인간적으로는 초라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믿음을 가지고 당당하게 다시 목회에 매달리려 합니다.”(김덕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