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여리고성 가나안 기적 예수 맹인 시각장애인
▲그리스 출신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예수께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시다(Christ Healing the Blind, 1570년대)’.
본문: 요한복음 9:39

주님이 심판을 천명하시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맹인이었던 사람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님을 믿도록 도왔습니다. 눈을 뜨게 만든 사건에서 주님은 중요한 진리를 설파하십니다. 심판에 대한 천명입니다. 이제 주님은 심판자라는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세상에 심판을 하려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메시아의 위치에서 갑자기 심판자의 권세로 돌변합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역설적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보는 것에 대해 심판한다
보는 것인가, 보지 못하는 것인가의 심판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 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39절)”.

심판은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기준입니다. 여기에는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적 눈을 더 의미합니다. 다만 영적 눈이 감겨 있는 것을 심판한다면, 참으로 황당할 것입니다. 아무나 영적 눈을 뜰 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3가지의 눈이 필요합니다. 사물을 볼 수 있는 육신의 눈, 글자를 읽고 문장을 해독하는 정신적 눈, 그리고 온 세상의 주인을 알아보는 영적 눈입니다.

영적 눈은 믿음으로 본다 해서 ‘믿음의 눈’이라고 말합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주님을 만나 육신의 눈뿐 아니라 영적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사물을 보게 되고, 주님을 알아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육체적 실명 상태에서 벗어나 시각 능력을 회복한 결과입니다.

더불어 그는 영적 소경 상태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나타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눈 뜨기 전에는 “주님, 그 사람이 누구이기에 나로 믿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던 사람입니다. 이제 육적 눈과 영적 눈이 함께 뜬 상황에서 그런 의문이 사라졌습니다.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심판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2.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한다
눈 감긴 사람을 뜨게 한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감긴 사람은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감긴 맹인에게는 주님이 믿으려 하면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눈을 뜨게 해주신다는 암시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눈 뜨는 노력을 하라는 말입니다.

육체적인 눈은 육체적인 것만 보게 됩니다. 눈이 좋아하는 것에 끌리고, 눈에 끌리는 것만 추구합니다. 눈이 보기에 좋은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것뿐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드러나는 권세, 사람이 알아주는 명예의 자리 등입니다. 세상적 욕심에 따라서 사는 사람은 보기 좋은 세상적인 유혹과 시각적 유혹을 따라 살아갑니다.

더구나 요즈음은 바야흐로 ‘비디오 시대’라고 합니다. 눈의 만족을 추구하고 눈의 욕망을 따라 살기 쉬운 시대입니다. 반면 고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을 거부하면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한다는 이유입니다.

3. 보는 사람을 보지 못하게 한다
본다고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육신적인 눈만 고집하는 사람에게 철퇴를 가하는 장면입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잘난 체 하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눈도 좋고, 정신적인 눈도 좋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본다면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을 많이 배워 똑똑하다고 폼을 잡고 살아가는 지도층 인사들입니다. 그들은 눈이 밝은 눈을 가진 사람으로 자초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영적인 까막눈입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영적으로 눈이 감겨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리새인들도 무리에 끼어 주님을 따르기는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거의 모든 곳에서 주님을 고발할 내용을 잡기 위해 따라갔습니다.

육체적인 시력과 함께 영적인 눈을 뜬 맹인이었던 사람과 대조됩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세상의 참된 메시아요, 구원자이심을 인정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은 영적 까막눈입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정도를 넘어, 오히려 해를 끼치려 합니다. 주님을 처단하려고 악의를 품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무서운 심판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보는 사람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세상에는 눈이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글을 배워 정신적인 눈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영적 눈이 감겨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을 확실하게 믿어 영생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알아보고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심판을 면하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