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sunrise 파도 바다 출렁
▲파도 치는 일출. ⓒ픽사베이
동짓달 초이레, 고르지 못한 숨결로 태어난 아이는 간헐적으로 쌕쌕 낮은 숨을 삼킨다. 곧 숨이 멎을까 보다. 틀렸어. 해소 기침을 연신 해대던 아버지는 결국 사십 넘은 나이에 피를 쏟듯 출산한 늦둥이를 걸레가 꽁꽁 얼어붙는 윗목으로 밀어냈다. 아침 햇살이 문풍지를 오려낸 쪽 창문 가득 스며든다. 아이는 여전히 낮은 숨을 쉬는가 보다.

병원이라도 가 봐요! 스무 살 된 큰 아들의 역정을 매달고, 아이를 들춰 업은 아버지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피가 모자란다는 의사의 진단 앞에 큰아들은 기꺼이 수혈을 자진했다. 종잇장처럼 파리하던 아이의 혈색이 홍조를 띤다. 초점 없던 늦둥이 막내 공주의 순결한 눈망울이 두리번거린다. 살았다.

막내 공주는 총명하고 영특했다. 미군 부대에서 통역 일을 하던 아버지는 막내 공주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천자문을 다 뗀 어느 날,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버지의 해소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곧 동네 사람들과 일가친척들이 몰려와 머리를 쓰다듬고 용돈을 준다.

두 살 터울 언니와 가게 문이 달도록 사탕 과자를 사 먹어도 용돈은 줄지 않았다. 낯설다. 처음 대하는 풍경이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술잔을 기울이던 어른들의 술안주는 아버지의 죽음이다. 아버지가 죽었나 보다. 목말은 누가 태워주지? 다섯 살부터 배우던 한문을 누가 가르쳐주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 공주는 언니들이 주는 용돈을 모아 초등학교 졸업장을 겨우 받았다. 목숨을 구해 준 오라비는 욕심꾸러기다. 집을 팔아 막내 공주를 가르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저버리고 제 자식들만 가르쳤다.

막내 공주의 삶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친구들은 모두 중학교를 진학했지만, 집과 재산을 차지한 오라비는 막내 공주의 중학교 진학을 포기시켰다. 습하고 좁은 다락방에서 강물이 바닷물처럼 짜질 만큼 울었다.

육남매 중 가장 영특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아버지의 가르침도 끝났다. 막내 공주는 닥치는 대로 신문, 잡지, 소설, 일반상식, 전문 서적 가리지 않고 탐독하며 자성적으로 지성인의 면모를 갖춰야 했다.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주변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쓴웃음을 삼켰다. 안정적인 직장의 특별 채용 제안이 들어와도 이력서를 낼 수 없다.

원치 않은 출산과 혼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생업 전선을 억척으로 이겨내며 집도 사고 땅도 사는, 소위 중산층이라는 안정적 환경으로 도약했다.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지난 삼십 년은 결국 신경정신과 처방 약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억울한 환경의 스트레스가 결집된 가슴앓이를 품고 살아가야 하는 고질병이 되었다.

오십 줄에 들어선 어느 날, 장성한 아들의 추진으로 검정고시 학원을 등록했다. 일 년 단기간 학업으로 고입 자격 검정고시 합격, 또 일 년만에 대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폭언과 외도를 일삼던 남편과 이혼했다.

힘겨울 때마다 찾아가던 오산리기도원. 쏟아지는 잠을 참아내며 부르짖던 기도와 찬송은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억울함과 분함을 이겨낼 수 있는 피안의 안식처다.

딸아, 세상만사 언제나 피할 길이 열려 있는, 감당할 시험뿐이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창조주 하나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변함없이 눈물을 닦아주신다.

이제 대학 진학이다. 언제나 만남의 축복을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로, 신학교 교수인 목사님의 권면과 도움으로 대학 학사 과정을 등록했다.

사회복지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의 환경이 구축됐다. 멘토 역할을 부탁드린 목사님께서 흔쾌히 승낙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사회복지 전공 학사 자격을 동시에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안내했다.

두 해를 지나 전문학사가 되었고, 연이어 평생교육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학업을 이어갔다. 마침내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평생교육사 자격증, 사회복지 전공 학사 자격을 동시에 취득했다. 기쁨과 서러움, 만감이 교차한다. 육남매 중 유일하게 막내 공주만이 취득한 학사 자격이다.

너희 년놈들이 조금만 신경 섰어도 중·고등학교는 졸업시켰지! 너희 새끼들은 다 대학 교육 시키고, 아버지 재산 다 부둥켜안고, 오빠 언니 다섯 명이 동생 하나, 가르치지 못했냐! 이혼하고 돌아선 길에 오십 년을 가슴에 묻어 둔 서러움이 복받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포악을 떨었다. 형제들과 단절한 지 오랜 세월이다.

맏언니 별세 소식과 더불어 큰 조카 딸마저 암 투병 중 생을 마감했다는 풍문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맏언니 거처는 도시화된 지역이지만, 여전히 전통시장 주변으로 오일장이 서는 곳이다.

장터 마당은 사흘 간격을 두고 생을 마감한 부녀의 죽음을 입소문 내기 좋은 장소다. 헛되고 헛되도다. 헛된 인생의 결국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할 일뿐이라는 전도서 기자의 말씀이 사무치게 가슴을 파고드는 시간이다.

그래, 주의 종의 길을 걷자. 그리스도 예수께서 분부한 사역을 감당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사십 년 전에 오산리 기도원에서 서원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리라.

햇살 가득 부서진다.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이다. 인생의 여정 또한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봄의 길목에 서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신 그대로 속히 오시리라. 아멘.

하민국 목사.
하민국 목사
웨민신학교 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