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몇 독 읽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성경대로 사는 방법 생각지 않아
교회, 읽고 이해하는 법 가르쳐야
궁금하면 질문 품고 생각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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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 Applegate/ Unsplash.com
필자가 교회학교 고등부 다닐 때 이야기다. 당시에는 교회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며 일주일 동안 성경을 몇 장 읽었는지 확인했다. 필자가 “70장 읽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반 친구들이 “시편?” 하며 놀리곤 했다. 대부분 하루 한장 읽어 오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께 잘했다고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필자는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목회자나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느냐보다, 얼마나 읽었냐에만 관심이 있었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필자가 속도에 집중했던 이유다.

안타깝지만 요즘도 별다르지 않다. 성경 읽기의 가치를 1년 몇 독(讀)을 했냐에 둔다. 물론 성경 말씀을 1년 내내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거기서 그치는 게 문제다.

그 성경 읽기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작 삶에서 문제를 맞닥뜨릴 때, 하나님 말씀이 이정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왜 그런 걸까? 성도들이 성경읽기를 해야 하는 ‘의무’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이라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의무 복무같은 것처럼 말이다.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따라 살기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성경 읽기도 속도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세상에 살면서 속도 경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속도가 성공이라 여긴다. 너도나도 속도에만 집착하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방향이 올바른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속도로 세상에서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AI 시대로 접어든 요즘은 더 심해지고 있다. 성도들은 점점 ‘어떻게 말씀대로 사는 것인지’,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책 <공부머리 독서법>에서 저자 최승필은 “독서는 읽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부를 잘 못하게 되는 것은 읽기보다는 듣고 이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보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알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교회에서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성경을 읽은 분량만큼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칭찬해줄 뿐이었다.

하지만 성경대로 사는 방법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문제에 맞닥뜨릴 때마다 헤메게 된다. 오히려 세상의 욕망에 빠져 들어간다.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신세다. 오늘날 성도들을 떠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욕망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씀대로 일상에서 살아드릴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는 데는 성도들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막상 성경을 펼치면 어려워서 덮거나, 뜻도 모른 채 읽어내려가는 것이 우리들이다.

그렇게 무작정 읽는 것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 교회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 대부분이 교회를 떠난 이유다. 주일에만 겨우 얼굴을 비추던 아이들만 없어진 게 아니다. 필요하면 평일까지 나와서 함께 열심히 봉사했던 친구들도 이제 교회에서는 볼 수 없다.

왜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을까? 하나님 말씀을 읽으라고 하고는, 속도만 따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도,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묵상의 여정> 저자 박대영 목사는 말한다. 묵상은 하나님이 주인공 되시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서사의 여정이요, 속도보다는 방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정이자, 천천히 걷고 천천히 읽고 생각하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묵상은 생각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니까 성경을 펼쳐놓고 멍 때려도 괜찮다. 궁금하면 질문을 품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헤매도 좋다. 다만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자세만 잊지 않으면 된다. 우리의 살 길은 하나님 말씀을 붙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묵상의 여정을 시작하자. 복잡한 배낭을 꾸릴 필요 없이, 신발끈만 다시 매고 길을 가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동행하시기에 맡기고 물 흐르듯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말하면 ‘묵상이 너무 뜬구름 잡기 아닙니까?’ 하실 분이 계실 테다. 마치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산에 올라 ‘하산하라!’는 스승의 허락이 떨어지기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 묵상의 방법들을 하나씩 다루려 한다. ‘질문’으로 묵상을 하는 방법부터 살펴보자.

이석현 읽고 쓴다
▲이석현 목사.
이석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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