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은 부부 사이에서만 가능
동성 간 혼인, 법 체계상 불가능
민주주의 근간 삼권분립 유린해
사회상규 준거해 법률 해석해야

동성 결합 커플 피보험자 부양
▲지난 2월 24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크투 DB
1.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호랑이를 속인 여우의 이야기이며,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린다는 의미이다.

2.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자유로우며 평등하다. 누군가 보통 사람에게 없는 공적 권력을 가졌다면, 이는 단 두 가지의 경우이다.
첫째, 보통 사람의 전체를 의미하는 국민에게 있던 주권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위임한 경우이다. 어떤 종류의 권력이든지 이를 행사하는 자들은 선거를 통하여 국민이 선택해야 한다.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1조 2항 내용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둘째, 시험을 통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여 권력을 맡기는 것이다. 공무원의 경우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공적 권력을 가지는 이유는,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장이 되어 공무원들을 철저하게 통제한다는 전제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에게는 정치적 중립의 의무와 복종의 의무가 부과된다.

최근 민주당 위원들이 교육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였는데, 그러려면 교육공무원을 4년마다 선거를 통해 뽑고 교체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헌법 1조 2항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판사라는 직책은 매우 독특한 예외의 경우이다. 공명정대한 판결을 위해서는 사법부를 독립시켜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판사들은 선거 없이 시험을 통해 선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기관의 통제 없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다 해서 판사에게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선출된 권력자의 명령을 듣지 않을 뿐이다. 대신 판사들은 자신의 양심과 사회상규 및 경험칙, 그리고 헌법 및 법률에 입각하여 판결하여야 한다. 만일 판사가 이러한 기준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결한다면 이는 호가호위의 전형이 된다.

3.

판사들의 호가호위는 최근 너무도 자주 관찰된다. 2020년 4월 15일 총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품은 다수의 낙선자가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하자,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을 어겨가면서까지 1년 넘게 시간을 끌다 마지못해 재검표를 실시하였고, 현장에서는 배춧잎 투표지, 일장기 투표지, 화살표 투표지 등 부정선거의 명백한 증거가 되는 투표용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투표소 관리관의 직인이 뭉개져 버린 일장기 투표지의 경우, 도장을 찍은 관리관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신은 그런 이상한 직인을 찍은 적이 없으며, 당일 투표장에서 그런 투표지를 본 적도 없고, 그런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다’고 증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사들은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유치원생 같은 황당한 논리로 소를 기각하였다.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살인범을 특정하지 않으면 무죄가 된다는 희한한 논리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첫 판결 직후 19개 선거구의 낙선자들이 제기한 선거무효소송을 재검표는 물론 단 한 번의 변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일괄적으로 기각시켰다는 것이다. 살인자를 재판도 없이 무죄 판결한 셈이다.

이뿐 아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한 쌍의 동성애자들이 제기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된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판사들은 인용판결을 내렸다.

사실혼 배우자에게 건보 혜택을 제공하는 것 역시 법적 근거는 없지만 공단의 내부 준칙에 의해 지급해온 것이므로, 동성 동거자도 사실혼 배우자가 가지는 의무를 행사하는 한 건보료를 지급하는 것이 내부 준칙의 평등한 적용이라는 논리였다.

이제부터 누구든지 사실혼 배우자가 갖는 동거, 부양, 협조, 정조 의무를 행사하기만 하면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민법에 규정된 정조의 의무는 ‘부부 간 성적 순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동성 동거인을 민법상 정의된 ‘부부’라고 인정하지 않는 한, 동성 동거인은 정조의 의무를 지킬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해당 판결이 동성 간 동거를 사실혼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술 먹고 운전은 했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 역시 부정선거 기각 판결에 버금갈 정도로 해괴한 판결이다.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동성 간 사실혼을 인정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판사 자신의 양심이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므로 논외로 치자. 첫째, 동성애자 한 쌍을 사실혼 관계로 보는 것이 우리의 사회상규인가? 사회상규(社會常規)라 함은 ‘국민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또는 공정하게 사유하는 일반인의 건전한 윤리 감정’을 말한다. 해당 판사가 고려한 ‘국민 일반’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일부의 도당을 의미한단 말인가?

둘째, 과연 헌법 및 법률에 입각한 판결인가? 사실혼이라 함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혼인 관계와 다름없는 내연 관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민법에서 혼인은 남녀의 결합을 의미한다. 동성은 혼인할 수 없다. 끝(period).

이는 2004년 기각된 김조광수와 그의 동성애 파트너가 제기한 재산분할 청구 소송이 기각된 것과 2014년 동일인들이 제출한 혼인신고가 반려된 것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또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은 36조에서 혼인은 남성과 여성을 의미하는 ‘양성’ 간 결합임을 명시하고 있다.

혼인이 남성과 여성의 결합인 이상, 사실혼 역시 남성과 여성의 결합임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대체 해당 판사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결을 한 것인가?

김조광수외 1인이 제기한 소송이 기각된 2014년 이후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이러한 판결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법률안이 통과된 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판사들 몇 명이 이러한 판결을 내린 것은, 입법부의 고유권한을 사법부가 행사한 명백한 월권행위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의 원칙을 유린한 판결이라는 점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4.

판사들이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나, 실상 한 인간으로서의 그들은 동네에서 흔히 보는 아저씨, 아줌마와 전혀 다를 바 없다. 그것이 바로 모든 사람을 평등한 존재로 보는 민주주의 원리이다. 사람들은 판사라는 직위를 맡은 자들을 존경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이 앉아 있는 법정을 존중하며, 그들의 판결이 기반하고 있는 헌법과 법률을 존중할 뿐이다.

헌법과 법률은 이론상 국민 다수가 옳다고 믿는 사회상규를 반영한 것이므로, 판사 역시 사회상규에 준거하여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여야 한다. 판사의 판결은 국민 다수가 납득할 만한 경험칙에 준거한 것이기 때문에 국민은 이를 존중한다.

결국 판사에 대한 존중 역시 국민 다수의 결정을 존중하여 따르는 민주주의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시 한번 판사들에게 묻고 싶다. 동성애자 2명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인정하는 것이 이 사회의 ‘상규’인가?

현재 대한민국 판사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명심해야 하고, 국민들이 당신들이 내리는 판결을 왜 존중하고 왜 두려워하는지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각이 없다면, 당신들은 호가호위하는 여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는 자신을 속인 여우를 결코 살려 두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라.

이형우
교수·행정학 박사
Professor/Ph.D. in Public Management
한남대학교 행정학과
Department of Public Administration, Hannam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