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불확실성, 현지 리더십 이양 절박감 줘
‘땅끝’은 이제 ‘줌(ZOOM)’… 복음 전파의 혁명
‘국가 이슬람주의’, 난민들에게는 영향 못 미쳐
서양, 중국·인도·일본 집중했지만 한국이 부흥

2위 선교사 파송은 ‘자유민주주의’였기에 가능
세계선교의 마지막 장, 통일한국 들어 쓰실 것

두란노해외선교회(TIM) 한충희 본부장
▲두란노해외선교회(TIM) 한충희 본부장은 “이슬람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고 있다. 바로 난민선교다. 이 주제만 나오면 굉장히 흥분되는데, 난민선교는 소위 ‘대박’”이라고 말했다. ⓒ송경호 기자
온누리교회 故 하용조 목사에 의해 1992년 설립된 두란노해외선교회(TIM)가 최근 30주년 기념대회를 가졌다. 1,450명이라는, 단일교회에서 유례 없는 숫자의 해외 선교사(장기)를 파송한 TIM은 이를 가능케 했던 선교 전략과 미래 비전을 한국교회에 공유했다.

최근 경기도 용인 양지 온누리교회에서 만난 한충희 본부장은 인터뷰 1편에서 지속 가능한 선교의 핵심으로 ‘모달리티(온누리교회)-소달리티(TIM)’의 유기적 관계를 소개하고 현대 선교의 흐름과 방향성을 나눴다. 이번 2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선교계에 미친 영향과 이슬람 선교의 방향성, 세계 선교계에 한국교회의 역할 등을 전한다.

한 본부장에 따르면, 코로나19는 현지 선교에 상당한 긴장감과 긍정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언제든지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적극적으로 현지 지도자를 세우고 리더십을 이양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또 “현지에 가지 못해 사역을 못한다는 핑계를 더 이상 댈 수 없게 됐다. ‘줌(ZOOM)’이 ‘땅끝’이 됐고 이는 복음 전파의 혁명”이라고 했다.

난민선교를 이야기할 때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슬람 선교의 난관은 ‘국가 이슬람주의’였다. 자기네 땅에서는 자국민들을 ‘노 터치하라’는 것이고 선교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며 “(그러나 난민은) 그 나라 땅을 벗어났기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한순간에 흩어버리신 것”이라고 했다.

선교사 파송 세계 2위 국가로서 한국교회의 역할을 전한 그는 “많은 선교사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경제력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국가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동아시아 국가 중) 일본과 중국의 영향력이 커 보이지만, 일본은 과거사에 얽매여 있고 신뢰를 주지 못한다. 중국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며 “통일 이후 한국을 통해 세계선교가 더 역동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본부장은 프랑스대사관 총영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를 역임하는 등 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무 시절 통렬한 회개와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경험하고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었다.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2019년 TIM 본부장에 임명받은 그는 ‘총체적 선교’, ‘융합선교’, ‘국제 협력과 네트워크’, ‘플랫폼 사역’ 등 현대 선교의 비전을 그려나가고 있다. 다음은 한 본부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 선교 현장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긍정적인 면도 있나.

“이동의 제한은 선교를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선교가 총체적인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선교사들이 과거에는 현지에 오래 머물렀지만, 이제는 언제든지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빨리 현지 지도자를 세워 리더십을 이양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생겼다. 이는 긍정적인 부분일 수 있다. 안일함과 나태함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현지에 갈 수 없으니 온라인으로 사역들을 대체하게 됐다. 인간이 창조한 모든 기술은 복음을 전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는데, 이를 일깨운 것이다.

온라인 사역은 생각보다 유용했다. 예배는 물론, 1대 1 제자양육도 진행한다. 오프라인 대비 8, 90%의 효과가 충분히 있음을 검증했다. 어떠한 이유로 현지에 가지 못해 사역을 못한다는 핑계를 더 이상 댈 수 없는 것이다. ‘everyone’ ‘everywhere’, 날짜와 시간을 정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모일 수 있다. 심지어 북극에서라도.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은 없다. 이제 ‘땅끝’은 오히려 ‘줌(ZOOM)’이다.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 혁명이라고 본다.

또한 인간이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가 극치를 이룰 때 한순간에 자신만만한 모든 것을 무너뜨리며, 창조주를 두려워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전 세계인들에게 일깨워 줬다.”

-전 세계에 이슬람의 물결이 거세고, 국내도 점점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무슬림 난민이 급증하는 등 환경도 격변하고 있다. 이슬람 선교 전략은 무엇인가.

“이슬람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고 있다. 바로 난민선교다. 굉장히 흥분될 정도로 난민선교는 소위 ‘대박’이다. 제가 유엔 차석대사를 지내던 2014년 난민 이슈가 크게 발생했다. 시리아 난민이 유럽으로 이동하며 보트 안에서 많은 어린이들도 죽었는데, 금세기 글로벌 이슈 중 가장 중요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기도 했다. 난민 사태는 전혀 계획적이지 않기에, 예측하고 핸들링할 수 있는 국제기구도 없다. 그들의 흩어짐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고 본다.

이슬람 선교의 난관은 ‘국가 이슬람주의’였다. 주권을 강조하며 자기네 땅에서는 자국민들을 ‘노터지’하라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비자를 받기 힘들 뿐더러 추방당하기 일쑤였다. 몇십 년 걸려 단 한 사람 회심시켰는데, 결국 사회로부터 이탈의 두려움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선교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난민은) 그 나라 땅을 벗어났기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순간에 흩어버리신 것이다. 타국에 온 무슬림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이슬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적이 없는데, 더 이상 예배드릴 수 없고 메카에 갈 수도 없고, 자신들이 믿어 온 신앙 체계와 정체성, 세계관에 근본적인 회의감이 스며드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들을 도와 주는 곳은 모두 크리스천 NGO, 교회들로, 먹을 것과 머물 곳을 제공하고 자녀교육까지 시켜 준다.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변하는 것이다.

무슬림들에게는 나의 죄를 위해 누군가가 대속의 피를 흘렸다는 개념이 없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신들을 돕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며, 궁극적으로 구속에 대한 이론을 수용하게 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난민선교다.”

두란노해외선교회(TIM) 한충희 본부장
▲한 본부장은 “19세기 서양은 중국과 인도, 일본, 이 나라에 집중해 선교사와 비용을 엄청나게 쏟아부었다. 그러나 지금 보면 평양대부흥이 유일한 부흥이었다. 당시 서양선교사들은 ‘앞으로 중국과 일본의 선교는 조선 사람이 감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고 했다. ⓒ송경호 기자
-선교사 파송 2위 국가인 대한민국이 세계선교계에서 미치는 영향은. 

“19세기 서양은 동아시아 선교를 매우 중요시하고 중국과 인도, 일본, 이 나라에 집중해 선교사와 비용을 엄청나게 쏟아부었다. 그러나 지금 보면 평양대부흥이 유일한 부흥이었다. 당시 서양선교사들은 ‘앞으로 중국과 일본의 선교는 조선 사람이 감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일본은 한국을 개화시키고자 했지만, 이미 복음을 안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일본이 미개한 나라였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 이후 식민지와 분단을 주셨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하루 속히 먼저 남북이 통일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를 넘어 세계선교의 마지막 챕터를 한민족을 통해 쓰시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 이후 한국을 통해 세계선교가 더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아시아의 교회를 깨우게 되길 소망한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점령한 역사가 없다는 점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유롭다. 또 누군가는 경제력이 뒷받침됐기에 선교사를 많이 보낼 수 있던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보다는 자유민주주의국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유엔 국가들은 대부분 한국을 좋아하고 롤모델로 삼고자 한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의 영향력이 커 보이지만, 일본은 과거사에 얽매여 있고 신뢰를 주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중국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본 가치, 국제 규범 측면에서 상당히 떨어진다. 한국의 강점인 문화, 케이팝 등이 선교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상황이고, 통일이 된다면 시너지가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일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내다가 세계 선교의 비전을 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35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다. 국제 문제에 늘 관심이 있었고 비전이 있었지만, 신앙적으로 회심한 것은 15년쯤 지난 뒤였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근무할 때 한인교회 성령수련회에 참석해 큰 은혜를 받았다.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었다. 2박 3일간 하루가 천 년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모든 회개가 터져 나오고 눈물 콧물이 흘렀다. 주님 앞에 부서지는 것 같은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했다. 하나님이 나를 외교관으로 부르신 이유를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이후 북한에 경수로를 짓는 일로 여러 차례 다녀오고, 평양대부흥의 역사적 장소인 장대현교회 터를 비롯해 봉수교회 등을 방문하며 복음 통일의 필요성을 느꼈다. 북한 동포들의 울음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를 위해 독일 통일을 연구했고, 외교적으로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었다. 예수님이 오시는 것보다 그 날이 더 빨리 올 것이라 기대한다. 많은 이들의 기도가 찼다. 또 프랑스와 나이지리아에 근무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굉장히 어려운 생활을 목격하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고 존엄성이 회복되는 총체적 선교의 필요성을 느꼈다. 외교관으로 은퇴할 무렵 횃불트리니티대학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선교단체를 맡게 됐다. 현지 선교사로 나가진 못했지만, 가능하다면 레바논, 몽골 등 곳곳의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

-본부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소명은.

“앞서 난민 문제를 ‘대박’이라고 표현했는데, 레바논이나 시리아인 중에는 쿠르드족이 많다(세계 최대 유랑 민족인 쿠르드족은 인구만 3, 4천만에 이르며, 이란·이라크·튀르키예(터키)·시리아 등에 흩어져 있다. 종교는 대부분 무슬림이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소망이다. 레바논에 난민선교센터를 세우고 쿠르드족을 위한 교회들을 세워나가고 있다.

다음세대에 대한 관심도 크다. 단기선교를 다녀오고 선교 헌신자가 되겠다는 청년들이 쏟아지고 있다. 세상은 힘이 강하고 복음은 약하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면 더 갈증만 커지고 궁극적인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거기에 자신이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면, 모든 젊은이들이 교회로 올 것이다.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선교와 남북통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성취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현지인 중심의 자생적 선교, 총체적 선교로 나아가는 데 초석을 다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