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세계 달력에는 고유한 사고방식과 세계관 담겨
먹고 사는 문제 따라 제작, 그 핵심인 농업에 맞춰져
메소포타미아, 애굽, 그리고 이스라엘 달력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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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기록했을까? ⓒ픽사베이
1. 들어가는 말

고대 세계의 달력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즉 달력에는 그들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의 주기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이 달력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각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입니다.

고대인들의 먹고 사는 문제의 핵심에는 농업이 있었으며, 이 농업의 주기에 따라 달력이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유목민들도 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체계적이지 못하였고, 필요성도 매우 떨어졌습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었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애굽 문명은 각자 자신들의 환경에 따라 나름대로 독특한 달력을 개발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애굽에서는 나일강의 홍수가 애굽 사람들의 농경 생활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나일강 홍수 주기가 애굽의 달력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애굽에서는 달력이 세 부분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홍수가 발생하는 7-10월이 일년의 시작(홍수기)이며, 11-2월은 농작물이 자라는 기간(성장기)이고, 3-6월은 곡식을 거두는 시기(추수기)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달력 수메르인
▲수메르인들이 사용하던 달력.
반면 고온건조한 날씨로 고통을 받았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쉴 만한 그늘도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으로부터 고통을 받았던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태양이 있는 낮은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이 사라진 밤은 시원함과 휴식을 주는 달콤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낮과 밤의 길이가 달라지는 춘분과 추분이 메소포타미아 달력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라는 두 거대 문명 사이에 끼어 있던 이스라엘은 농업 주기가 비슷한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가나안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달력을 사용하였습니다.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와는 다르게 일년 내내 흐르는 강이 없었던 이스라엘에서는 비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일년이 크게 우기(늦가을부터 초봄까지)와 건기(늦봄부터 초가을까지)로 나뉘어 집니다. 이처럼 매년 반복되는 우기와 건기의 주기는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위하여 비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고 달력 형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달력에는 그 달력 사용자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크게 영향을 주는 자연 환경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런 이해는 그들의 사고 방식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나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용하였던 달력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애굽이나 로마 등 대부분 문명권들은 낮에서 밤으로
더운 날씨 메소포타미아와 이스라엘, 밤에서 낮으로
‘해지기 전, 해 질 무렵’ 성경 표현, 날짜 바뀌는 순간

팔레스타인 게제르 게젤 농경 달력
▲고대 팔레스타인 소도시 게제르(Gezer)에서 발견된 기원전 9세기 농경 달력.
2. 하루(Day)

1) ‘하루’의 의미

달력의 가장 기초적 개념은 ‘하루’라는 시간입니다. 하루는 지구의 자전과 관련이 있지만, 이런 과학적인 지식이 없었던 고대에는 하루라는 개념의 이해도 자신들의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굽이나 로마를 포함한 대부분의 문명에서는 하루라는 주기가 낮에서 시작해 밤으로 끝나는 것(즉 해가 뜨는 것에서 시작하여 다음 해가 뜰 때까지의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낮에 일하고 밤에 휴식을 취하는 일반적인 패턴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하루라는 주기가 밤에서 시작하여 낮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더운 낮을 피하여 시원한 밤에 활동을 많이 하는 생활 스타일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이 지역은 주로 거미줄처럼 파여진 수로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더운 낮을 피하여 시원한 밤에 별빛이나 달빛을 이용하여 밭에 물을 대는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지역은 농업 환경이 애굽보다는 메소포타미아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의 달력에 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대체로 메소포타미아와 비슷한 달력을 사용하였는데 자세한 부분에서는 가나안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7대 절기(유월절-무교절-초실절-칠칠절-나팔절-속죄일-초막절)는 우기와 건기의 반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용되는 ‘하루’라는 개념도 메소포타미아와 매우 비슷한데, 하루는 ‘낮과 밤’이 아니라 ‘밤과 낮’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메소포타미아와 비슷한 개념을 갖게 되었는지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장세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를 어떻게 계산하였는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7일간의 천지창조 이야기가 나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는 6일간의 창조 과정이 설명되면서 하루하루 시간이 계산되는데, 창세기 1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날이니라(창 1:5, 8, 13, 19, 23, 31)”. 즉 각각의 날이 저녁(밤)부터 시작하여 아침(낮)으로 끝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계산법은 밤 12시에 시작하여 다음날 밤 12시에 하루가 끝나는 현대의 달력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모르고 성경을 읽게 되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해지기 전’ 혹은 ‘해 질 무렵’이라는 표현은 바로 날짜가 바뀌기 직전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해가 지게 되면 날짜도 바뀌어 다음 날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방법은 니산월(Nisan, 제1월) 14일 ‘해지기 전’입니다(출 12:6). 즉 유월절 어린 양은 반드시 14일 해지기 전까지 잡아야 합니다. 해가 진 후 잡게 되면 유월절이 지난 다음 어린 양을 잡은 것으로, 하나님의 규례를 어긴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해가 지게 되면 무교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5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메소포타미아 해시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용됐던 해시계.
2) 구약시대 하루의 시간 구분

구약 시대에 ‘밤에서 시작하여 낮으로 끝나는 하루’라는 개념은 매우 분명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절기는 이 하루라는 개념에 따라 정확하게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하루를 일정한 간격으로 더 자세하게 나누는 ‘시간(Hour)’ 구분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농경 생활 속에서 정확한 시간 구분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는 낮 시간을 ‘해 뜰 무렵, 정오, 해 질 무렵’ 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하였고, 밤은 ‘초저녁, 깊은 밤, 닭 울 무렵, 동 틀 무렵’ 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낮과 밤을 더 자세하게 정량적으로 구분하여 쓰지 않은 것에서, 우리는 고대 농경 사회의 느슨한 시간 개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해의 높이나 달의 위치를 보고 대충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여도 생활에 별 지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 ‘시간(Hour)’ 개념이 아주 사용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남유다 아하스 왕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물시계나 해시계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입되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왕하 20:11; 사 38:8).

그러나 이 시계는 왕궁이나 성전 등 특정한 그룹들에 국한되어 사용된 것으로, 주로 농업이나 목축에 종사하는 일반 백성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애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가 뜨는 것으로 시작하여 해가 다시 뜰 때까지를 하루로 본 애굽인들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남과 밤의 시간을 자세히 구분하지 않아도 농경을 주업으로 하는 생활에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이에는 마트(창조 질서, Maat)에 따라 주어진 자연 환경 그대로 순응하려는 애굽인들의 수동적 자세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 문명으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하루라는 시간을 좀 더 세분하여 객관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도시에서 살다 보니, 좀 더 정확한 시간을 구분하여 사용해야 사회가 좀 더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었고, 한 시간을 60분으로 나누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메소포타미아의 1시간은 현대의 2시간에 해당되는 시간이고, 60분은 현대의 120분에 해당되는 시간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이 한 시간을 60분으로 나누어 사용한 것은 이들이 60진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는 메소포타미아의 시간 개념을 받아들여 그리스 제국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하였고, 로마 제국은 낮 시간만을 12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하였습니다.

로마 제국, 밤에는 정량화되지 않은 시간대 구분 사용
낮에는 모든 행정기관 업무, 객관적이고 세분화 표현
낮만 12시간으로 나눠, 신약 시간대 로마 제국이 표준

고대 로마 제국 해시계 시간
▲고대 로마 제국에서 사용된 해시계.
3) 신약 시대 하루라는 시간

신약 시대에 접어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그리스-로마 문명을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스-로마 문화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여러가지 면에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언어도 로마 제국 공용어인 헬라어를 지방 토속어와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달력도 로마 제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을 때 영향을 주는 것은 로마 제국이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구분하여 사용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로마 제국은 하루 중에서 밤은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초저녁, 자정, 닭 울 무렵, 새벽’ 등 정량화되지 않은 시간대로 구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밤 시간대에는 모든 행정기관이 문을 닫고 업무를 중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낮 시간은 거대한 로마 제국이 작동하기 위하여 좀 더 세분화된 객관적인 시간대로 나뉘어 사용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낮 시간을 모두 12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는데, 해가 뜨는 아침 6시를 0시로 하고 또 해가 지는 오후 6시를 12시로 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시간은 모두 로마 제국의 시간 개념에 따라 기록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시간은 ‘제3시’라고 마가복음 15장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3시는 로마 제국의 시간 구분에 따라 기록된 것으로, 현대 시간으로 바꾸면 오전 9시에 해당됩니다.

즉 로마 시간 제0시는 현대 시간으로 오전 6시가 되기 때문에, 로마 시간 제3시는 현대 시간으로 오전 9시(6+3)에 해당됩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시간은 ‘제9시(마 27:46; 막 15:34; 눅 23:44)’였습니다. 제9시도 로마 제국의 시간 구분에 따라 기록된 것으로, 현대 시간으로 바꾸면 오후 3시(6+9)에 해당됩니다.

즉 오전 6시가 로마 시간 제0시에 해당되기 때문에, 오전 6시에 9시간을 더하면 오후 3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제9시는 ‘해지기 전’ 잡아야 하는 어린양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데, 이에 관하여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처럼 낮 시간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모두 12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한 것을 알면, 반대로 현대 시간을 로마 시간대로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 시간 오전 10시는 오전 6시보다 4시간 뒤이기 때문에 로마 시간으로는 ‘제4시’에 해당됩니다. 또 현대 시간 오후 4시는 오전 6시보다 10시간 뒤이기 때문에 로마 시간으로는 ‘제10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성경에 기록된 시간이 로마 제국의 시간 구분에 따라 기록된 것을 안다면, 어떤 시간이 나오더라도 쉽게 현대 시간으로 바꿀 수 있게 됩니다.

즉 로마 제국이 낮 시간을 12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한 것만 알고 있으면 성경에 나오는 시간을 암기하지 않아도 쉽게 현대 시간으로 바꾸어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구약 문화 배경사 류관석
▲류관석 교수는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오역이 나오고 성경의 내용에 공감하는 정도가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