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의 제네바, 목회자 선발에 분명한 기준과 방식
한국교회 목회자들 영성, 인성, 지성 검증 가능한가
덩치는 크고 파편화돼, 세상 향한 사명 감당 역부족

한장총 한국장로교 정체성 세미나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한영훈 목사) 2022년 한국장로교 정체성 세미나가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과 예배회복’이라는 주제로 2월 22일 오후 2시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개최됐다.

인사를 전한 대표회장 한영훈 목사는 “한국 기독교인 70%가 장로교인이라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나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돼 있고, 개혁자들의 정신과 전통에서 멀어진 우리 한국장로교회의 실상을 살펴보면 한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한영훈 목사는 “우리 한장총은 개혁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계승하여 장로교 정체성을 확고히 지키고, 한국장로교 연합과 일치를 통한 공동사역을 연구하고 협의하며 시행하고 있다”며 “오늘 세미나는 그 동안 한장총이 지속해온 장로교 정체성 회복운동의 전통을 따라, ‘장로교 정체성이 회복돼야 장로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이룰 수 있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실천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 목사는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과 3년째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엄격한 방역수칙 준수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세미나를 통해 장로교회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한국 장로교회가 회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박경수 교수(장신대)가 ‘21세기 한국교회 목회자 위기 극복을 위한 고찰: 16세기 제네바 교회의 목회자 선발과 훈련에서 배우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한장총 한국장로교 정체성 세미나
▲한영훈 대표회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박경수 교수는 “한국교회 위기 원인을 다양하게 꼽을 수 있겠지만, 근원을 깊이 성찰하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제도나 신학이나 예전의 문제라기보다 사람의 문제, 특히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목회자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서 한 사람의 목회자가 교회 내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위협하고 해치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목회자에게 모든 권한이나 의사결정이 집중되는 것이 잘못이지만, 동시에 교회에서 목회자가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맡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며 “따라서 목회자의 수준은 곧 그 교회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누가 어떤 자격을 지닌 사람을, 어떤 절차와 방법을 통해 목회자로 선발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 교육과 훈련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지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종교개혁 당시인 16세기 개혁주의 전통의 요람이던 제네바에서의 목회자 선발 과정을 살폈다. 이에 대해 “올바른 목회자상을 정립함으로써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겪고 있는 자기 정체성 위기를 극복해, 참된 교회로 회복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취지를 밝혔다.

박경수 교수에 따르면 칼뱅이 1541년 교회법령(Ecclesiastical Ordinances)을 통해 제네바 의회에 제시한 목회자의 자격 조건은 ‘건전한 교리를 믿는 것과 거룩한 생활’이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2가지 시험도 ‘교리와 생활’이라고 했다. 성경에 대한 올바르고 건전한 지식이 있는지,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그 지식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적합한 능력을 갖췄는지 검증할 뿐 아니라, 좋은 습관을 갖고 있는지, 책망받을 일 없이 행동하는지 검증하면서 가르침과 생활이 일치해야 함을 강조했다.

야망과 탐욕도 경계해야 한다. 목사들의 목표는 회중들의 박수갈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생활이 야망과 탐욕으로 얼룩진다면 메시지 또한 힘을 얻지 못하고, 목회 사역 자체가 불신임을 받게 되며, 결국 교회가 모욕을 당하고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시게 된다. 따라서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입으로만이 아니라, 생활로 설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목회자를 세우는 일은 대단시 엄숙한 것이기에, 무엇보다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지혜와 분별의 영을 간구했다. 칼뱅은 목회자 선발에 있어서도 한 사람이 무제한적 권위를 갖기보다, 모든 사람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이 이뤄지길 바랐다. 그래서 교리와 생활을 검증한 후 적절한 사람을 선택해, 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승인이 이뤄지면 설교를 통해 시민들에게 소개한다. 이때 시민들은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견이 없으면 승인으로 간주하고, 의회 앞에서 목회자로서 선서를 함으로써 선발 절차가 마무리된다.

한장총 한국장로교 정체성 세미나
▲박경수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칼뱅은 목회자 양성을 위해 ‘제네바 아카데미’를 운영했는데, 박 교수는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훈련의 장을 제공했던 ‘성경 연구모임(congrégation)’에 주목했다. 제네바 목회자들은 매주 금요일 아침예배 후 모여서 성경을 읽고 주석하고 연구하는 모임을 가졌다. 모든 목회자들이 돌아가면서 성경을 설명하고 토론했지만, 칼뱅은 보다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연구 모임은 칼뱅 주석의 모태 역할을 했고, 목회자들의 설교 훈련의 장뿐 아니라 평신도 교육을 위한 기회를 제공했으며, 목회자들 간 잘못을 교정하고 충고하는 역할도 했다. 성경 연구모임은 개혁교회의 공통된 신앙을 촉진시키고 계승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논의를 정리하면서 박경수 교수는 “왜 21세기 한국에서, 16세기 제네바에 관심을 가지는가? 그것은 16세기 제네바가 개신교의 목회자 상(像)에 대한 하나의 원형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라며 “당대 개신교의 중심지였던 제네바에서는 어떻게 목사를 선발하고, 무슨 훈련을 시켰는지 연구함으로써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 선발과 훈련을 위한 통찰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했다.

박경수 교수는 “칼뱅의 제네바는 목회자를 선발하는 분명한 기준과 방식과 절차를 가지고 있었다”며 “제네바의 목회자 선발 기준과 방식에 현재 우리 실상을 비춰볼 때, 한국교회에서 목회자가 되는 길이 너무 쉽고 넓고 편안한 길은 아닌지, 목회자 후보생의 영성, 인성, 지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닌지, 목회자를 안수하는 예식이 너무 형식적이거나 무미건조한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의 고질병인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네바의 성경 연구모임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자들도 한 개인일 뿐이다. 목회자 개인에 따라 능력도, 수준도, 생각도 제각각이고, 목회자에 따라 교회의 방향이나 목회 계획도 제각각”이라며 “한국교회가 덩치는 크지만 개인으로, 개교회로 파편화돼 있기에,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들의 매주 모임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제네바에서처럼 목회자들이 규칙적으로 자주 만나 함께 성경을 연구하고 목양에 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 유익은 대단할 것”이라며 “이 같은 모임은 목회자들이 계속 성경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재교육의 훈련장이 되고, 목회자의 외로움과 고립을 막아 탈선을 예방하는 방지책이 되며, 서로 격려하고 기도함으로써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한 목회를 해가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장총 한국장로교 정체성 세미나
▲발제자들과 패널토의 모습.

그는 “한국 장로교회의 경우 시찰회 모임을 성경 연구, 기도, 독서, 상호 권면 기능을 하는 모임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찰회는 지역 단위로 구성되기에, 교회들이 해당 지역사회를 위해 연대해 활동할 수 있는 계기도 자연스레 마련될 것”이라며 “총회와 신학교도 연대해 현장 목회자들이 일정 시간 목회한 후 반드시 재충전과 재교육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예를 들면 목회자가 6년 목회한 후 자신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가까운 지역 신학교에서 1학기 동안 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다른 목회자들과 목회 경험을 나누면서 자신의 목회 방향을 재설정할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박경수 교수는 “지금의 한국교회와 사회는 정체성이 분명하고 철저한 목회자를 요구하고 있다”며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목회자를 양성할 때, 비로소 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참되고 신실한, 그리고 건강한 목회자는 교회 갱신에 필수적이고 본질적”이라고 역설했다.

이후 박용규 박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소장)가 ‘한국 장로교 신앙의 정체성 1884-1934: 초기 한국 장로교 선교사, 교회, 목회자 그들의 신앙은 무엇인가?’, 이승구 교수(합동신대)가 ‘공예배의 방향: 칼빈과 개혁신학의 성경적 입장에서 본 한국 교회 예배 개혁의 과제’를 각각 발표했다. 이승구 교수는 방역수칙으로 참석치 못해 영상을 통해 발표했다. 패널토의 시간에는 박재필 목사(한장총 신학위원장) 사회로 발표자들과 더불어 김지훈 목사(신반포중앙교회) 등이 함께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