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 유대인들,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지 않아
유럽 수백만 유대인들, 유대교로 개종한 현지인 후손
‘유대교인들 자신의 역사 회피한다’ 도발적 주장 나서
유대인 팔레스타인 다시 차지해야 할 권리 없다는 것

만들어진 유대인
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 김승완 역 | 사월의책 | 670쪽 | 34,000원

원래 히브리어로 출판된 이 저작은 무려 19주 동안 이스라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 책은 엄청난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흔치 않은 책이다.

“2008년 초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다소 뜻밖이었다. 방송매체들이 상당한 호기심을 보였고, 나는 많은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받았다. 언론인들 역시 대체로 호의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위 ‘권위 있는’ 역사학자들은 학문적 분노를 표출하며 이 책에 달려들었고, 흥분 잘하는 블로거들은 나를 이스라엘인의 적으로 묘사했다(11-12쪽).”

이스라엘을 넘어 세계의 거대 유대인 권력에 도전한 이 책은 출간 이후 24개국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마존에 올리온 리뷰를 살펴보면, 별 다섯 개의 평점부터 별 하나까지 그 평가가 다양하다.

한 독자는 ‘현대 중동의 이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할 책’으로 추천했다. 다른 독자는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역작’이라고 평가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그 역사를 인류의 일반적인 이야기에 설득력 있게 통합시켰다’는 리뷰도 있다.

<만들어진 유대인>(원제: 유대 민족의 발명, The Invention of the Jewish People)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왜 논란의 중심에 섰는가?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정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국적 유대인인 저자(슐로모 산드, Shlomo Sand)가 ‘이스라엘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점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저자는 성역이 된 ‘민족 서사’에 도전장을 내밀어, ‘유대인 역사는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민족 또는 민족주의’의 개념부터 살핀 후, “19세기 이래 반유대주의자들이 상상하고 설득하려 했던 것처럼, 유대인들은 과연 한 묶음의 특이한 ‘민족 종족(nation-race)’인가(58쪽)?”라고 묻는다.

이스라엘 법에 담겨 있는 정신에 의하면,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이스라엘국의 목적은 이스라엘인들이 아닌 유대인들을 섬기는 것이며, 이 나라 안에 거주하고 이 나라 말을 쓰는 모든 국민이 아닌 유대인이라는 ‘에트노스(ethnos, 종족)’의 후손이라 여겨지는 이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12쪽).

이 책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근대화라는 사회문화적 과정에서 탄생한 세계 보편의 관념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의 미궁 안으로 떠밀려간 무수한 인간 대중의 심리적, 정치적 요구에 대한 선도적 해답으로 복무했다. … 민족주의 그리고 그것이 가진 정치적이고 지적인 도구들이 없었다면 민족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민족국가도 틀림없이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102쪽).”

이스라엘국은 건국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오니즘 특유의 민족 관념에 사로잡힌 채, 이 나라를 국민 모두에게 복무하는 공화국으로 여기기를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 4분의 1이 비유대계임에도, 국가 법령은 이스라엘이 이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며 이들에게는 나라가 없다고 암시한다.

또 이스라엘은 현지 주민들을 국가가 창출한 상위 문화(superculture)에 통합시키기를 회피함으로써, 의도적으로 그들을 배제해 왔다.

저자에 의하면 “20세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민족 정체성이라는 환상들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역사 서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왔던 위대한 민족 이야기들, 특히 공통의 기원에 관한 신화들을 해부 검토하는 학자들이 점점 늘어났다(60쪽).”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Wikipedia
둘째, 저자는 ‘땅을 빼앗긴 민족이라는 장엄한 역사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유대 민족주의의 대서사를 근본부터 흔드는 도발이다.

사실 저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유대 민중, 선조의 땅, 유배, 디아스포라, 알리야, 에레츠 이스라엘, 대속의 땅’ 등은 이스라엘 내에서 민족 역사를 재구축할 때 결코 빠지는 일 없이 등장해야 하는 핵심 용어들이며, 이 용어들의 채택을 거부하는 것은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14쪽).”

하지만 ‘포스트시오니즘(post-Zionism)’이라고 알려진 지적 조류가 이제 미미하게나마 여러 다양한 학술기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리하여 과거에 대한 익숙지 않은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학자들, 고고학자들, 지리학자들, 정치학자들, 문헌학자들, 심지어 영화인들까지도 지배적인 민족주의가 설정해놓은 기본 약관들에 도전하고 있다(13쪽).”

이스라엘 독립선언서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 고국에서 추방당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기 땅에서 강제로 추방된 이후에도 유대 민중은 디아스포라 시절 내내 신앙을 기대고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기도와 희망을 멈추지 않았다. 그곳으로 돌아가 정치적 자유를 회복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이스라엘 국가수립선언문, 1948년).”

유대인과 이스라엘 역사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와 금기를 파괴하는 역사적 여행인 <만들어진 유대인>은 질문을 던진다.

1세기에 정말 로마의 손에 의한 강제 추방이 있었을까? 우리는 2천년 동안 유대인들을 구별되는 민족이자 추정 국가인 성경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여겨야 하는가? 저자는 고대부터 이스라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역사를 둘러싼 공식적인 이야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도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서 시대 유대인들은 로마의 팔레스타인 속주에서 대량으로 추방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의 후손들 중 많은 수가 아마 오늘날 팔레스타인 주민일 것이다. 또 유럽에 살았던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현지인의 후손들이었다.

첫 번째 물결은 기원전 100년에서 200년 사이 지중해에서 일어났고, 두 번째 물결은 8세기에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하자르 왕국에서 일어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사실 중동과 동유럽에 멀리 흩어져 있던 그들의 고향 땅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유대 종교가 개종자들을 얻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역사학자이자 ‘포스트 시온주의자’ 운동의 일원인 저자 슐로모 산드는 이 책에서 유대교가 자신의 역사를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는 ‘성경의 국유화와 신뢰할 수 있는 역사책으로의 전환’과 ‘성서-민족-이스라엘의 신성한 삼위일체’의 기반에 도전한다.

저자는 현재의 세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과 어떤 의미든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을 재검토한다. 그는 현재 세계 유대인들이 여러 종족에서 비롯되었으며, 주로 개종의 결과라고 말한다.

한 독자는 리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행동(점령, 가자 전쟁, 레바논 전쟁,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정착촌 등)의 본질에 대한 현재의 인식과 그 정책에 대한 거의 보편적인 비난으로 볼 때, 이 책의 영향은 장기적으로 혁명적인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독자가 만일 유대인의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이 매우 재미있을 것이다. 분명 이 책은 가장 독창적이고 흥미로우며 생각을 자극하는 책 중 하나다. 유대인의 정체성이 역사적 사실보다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시오니즘의 역사 조작’은 논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산드 박사는 독자들에게 현대 민족주의 이념 프로젝트와 특히 시온주의 민족주의 프로젝트의 일반적 지적 토대에 대한 많은 통찰력을 준다. 시오니즘 민족주의 프로젝트는 유대인들이 오랜 망명 생활로부터 ‘에레츠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저자는 시오니즘이 자신의 목표와 의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유대인의 일관된 서사를 만들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선택하고 거부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유대교는 대부분의 역사를 통해 종교적 민족 집단이자 문화였으며, 최근에 와서야 주로 ‘혈통 정체성’ 민족 집단으로 개조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점에서 극도로 도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의 역사는 없었다’는 의미로 책을 오해하고 있다.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의 전제는 2,000년 전 유대인들이 중동의 땅에서 추방당한 것이 아니었기에, 현대에 그 땅을 다시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권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20세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민족 정체성이라는 환상들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역사 서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왔던 위대한 민족 이야기들, 특히 공통의 기원에 관한 신화들을 해부 검토하는 학자들이 점점 늘어났다(60쪽).”

저자의 생각은 국민들 중 많은 수를 달갑지 않은 이방인으로 배제하고 격리시키고 차별하는 정치 조직체로 이 나라(이스라엘)를 내버려두지 말자는 것이다.

그의 대안은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이스라엘의 건설’이라는 해결책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일부 사람들은 산드를 ‘그의 백성에 대한 배신자’ 또는 ‘자기혐오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 ‘하아레츠’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민주주의가 더 자유로워지고 굳건해질 방법을 묻는 산드의 질문은 생각해볼 점이 많으며, 진지하게 논의할 가치가 있다.”

모든 사람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중동의 위기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