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Olivia Snow
지난 여름 한 교회에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한 후 교회 부목사님과 점심 식사를 할 때, 그 목사님이 제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개척을 할 때 무엇을 준비했냐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개척을 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개척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사실 용감했고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개척을 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목사 때 사역을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래도 맡았던 부서마다 열매가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개척할 무렵 함께했던 사역자들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다 긍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기에 자신만만하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 달랐습니다. 교회에 재정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있는 것은 예배당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부목사 때 그렇게 울리던 전화는 일주일이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잠잠했습니다. 교회 성도들에게 오는 연락은 없었습니다. 심방을 할 곳도 없었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들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절망이 찾아왔고, 무기력함이 제게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기는 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개척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기에,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를 1년이 넘었습니다. 사람도 늘지 않았고, 재정 상황도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개척교회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열악하고 힘들고 어려운 목회 현장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온전한 목회자로 만들기 위한 훈련장과 같았습니다.

악기를 배우거나 운동을 할 때, 선생님이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이 “힘을 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초보자일수록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능숙한 사람일수록 힘을 빼고 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목회자는 다 초짜들입니다.

교회 교인들이 목사의 마음도 몰라주는 것 같고, 기도를 아무리 해도 응답이 없고,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힘을 빼는 일입니다.

힘을 빼는 일이란 결국 신실하신 하나님, 변함없으신 하나님 앞에 내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내려놓고,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 힘을 빼는 일이었습니다.

개척을 해 보니,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사실을 매일 매일 느끼게 됩니다. 개척을 위한 공부, 신학에 대한 준비들, 목회 철학, 교회의 방향성, 사역에 대한 계획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면, 그런 것 별로 소용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힘 빼고 나아가는 것,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심 없이 바라보며 버티는 것, 그것만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됩니다.

서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래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