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초록 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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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朝夕)으로 이는 선선함은 여지없는 가을 바람이다. 광폭한 태양의 위세에 아랑곳 없이 나그네길 그늘이 되어준 진초록 숲이 거대한 장삼을 벗으려고 옷매무새를 추스린다. 여름 내내 유난히 뜨겁던 햇살들의 일렁거림을 냉소하듯 묵묵히 견디어낸 진초록 숲의 용사들이 조금은 여유로운 호흡으로 가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곧 중추절(仲秋節)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는 넉넉한 절기이다. 그러나 나그네길 걷고 있는 우리들의 가을 여로는 지금 고행(苦行) 중이다.

국가의 명운이 위급할 수 있는 각종 악재들이 먹구름 가득한 하늘과 같다. 최악의 실업률과 출산율,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도산이 속출하는 가운데, 적반하장 격으로 부동산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고, 북한 핵무기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은 제자리 걸음만 되풀이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두 명이나 교도소에 수감 중이고, 전직 고위 공무원들 역시 연이은 적폐 청산으로 구속을 면치못하고 있다. 현정부가 출현한 지 두 해를 걷고 있는 지금까지도 적폐 청산은 지속되고 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헌법 아래 이토록 많은 적폐들과 공존했는가 어안이 벙벙하다.

대한민국의 영토인 연평도에 폭탄을 터뜨린 원흉들과 손을 맞잡고 미래를 논의하는 마당에, 자국민들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손은 왜 못 내밀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정치 현실이다.
어떤 대통령이든, 누군가는 대인의 기상으로 과거를 용서하고 포용해야 한다. 그래야 청와대에서 교도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더는 대통령이 임기 후에 교도소로 향하는 일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창피스럽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어떤 일에 종사하든 우리의 인생살이는 죽음을 향한 진혼곡이다. 누구든지 쓰러지는 날이 머지 않았다. 삶을 위한 삶, 존립을 위한 존립보다 죽음을 향한 삶, 죽음 후의 평가에 대한 존립을 생각한다면 용서와 관용이 가장 위대한 도덕률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부합되는 상대방일지라도 포용할 수 있는 공유점은, 우리 모두의 삶이 죽음을 향한 여로라는 사실이다. 짧은 세월 살다 가면서 서로 잡아먹듯 멱살 잡고 눈알 부라릴 일이 아니다.

숲은 고요하다. 유난히 뜨거운 햇살이든, 메마른 가뭄이든 숲은 여전히 숲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숲은 나무들의 일심으로 숲을 유지한다. 나를 따르라고 큰소리 치지 말고, 저를 따를 수 밖에 없는 대의명분을 실행할 때 정치판의 나무들은 초록 숲을 이룰 수 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듯 휘몰아치는 권력은 결코 존중받을 수 없다.

가을 문턱, 참으로 좋은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세상 일상 내려놓고 숲길을 걸어보자. 숲을 걷다보면 고목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더러는 초록옷을 입은 채 쓰러져 있는 나무들도 보게 된다.

현직 실세들은 진초록 숲과 같다. 국민들에게 안위의 숲을 제공하기 위하여 다른 숲을 훼손한다면 거대한 숲 그늘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초록 옷을 입은 채 누워있는, 불행한 나무가 될 수 있다.

웨민총회신학 인천신학장 하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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